ADVERTISEMENT

[현장 속으로] 미시령 단풍 언제 절정일까? 타임랩스 카메라는 알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설악산·지리산 생태 관찰 카메라

기사 이미지

설악산에서도 울산바위와 미시령 사이의 경관이 1년 365일 하루 네 차례 자동촬영된다. ‘생물계절’ 연구 차원에서다. 사진은 실시간으로 무선 전송된다. [사진 성시윤 기자]

26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에서 고성군 토성면으로 넘어가는 미시령 옛길. 왕복 2차로의 이 고갯길은 한때 설악산을 왕래하는 자동차로 붐볐다. 하지만 2006년 미시령터널이 뚫린 이후 한산해졌다. 고개마루 휴게소도 철거된 지 5년 됐다. 설악산 명물 중 하나인 울산바위를 보러 이 길에 오르는 이들을 빼면 인적이 드물다.

하루 네 차례 1년 365일 촬영
적·녹·청 비율 RGB 프로그램 분석
싹 트고 꽃피는 시기 등 생태 연구

객관적인 데이터로 단풍 조사
육안으로 관찰 민간업체보다 정확
“기후변화 감지하는 중요 정보 될 것”

7개 국립공원서 48대 가동 중
내장산엔 노랑붓꽃만 찍는 카메라
홍도에선 괭이갈매기 움직임 포착

옛길에서 고성군에 속하는 해발 356m 지점의 가드레일 바깥엔 카메라가 하나 있다. 설악산 북사면, 정확히는 울산바위와 미시령 마루 사이를 향해 고정돼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공단)에서 2014년 11월 설치했다.

카메라는 1년 365일 매일 네 차례(오전 8시·10시, 낮 12시, 오후 2시) 작동된다. 미리 설정한 주기에 맞춰 자동촬영이 이뤄지는 ‘타임랩스(timelapse)’ 카메라다. 해발 1100m대의 산 능선부터 400m대의 기슭까지 넓은 범위를 한 프레임에 담는다.

기사 이미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설치한 자동영상촬영 카메라에 찍힌 지리산 노고단의 모습이다. 1년 365일 하루 네 차례 정해진 시각에 촬영이 이뤄진다. 단풍이 들었다 시들고, 눈이 쌓였다 녹으며, 봄이 돼 새 잎이 돋고, 녹음이 우거지는 지리산의 사계가 기록된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카메라를 설치한 목적은 설악산의 ‘생물계절’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생물계절은 식물이 싹 트고 꽃 피며 열매 맺고 단풍 들며 낙엽 지는 등의 변화를 일컫는다. 생물계절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공단은 생물계절을 모니터링해 기후변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이 용도로만 전국 22개 국립공원 중 7곳에 48대의 카메라가 가동 중이다. 카메라와 함께 장착된 온·습도 계측기로 기상 조건도 조사한다.

미시령 카메라엔 무선송신 기능도 있다. 공단 관계자가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방금 찍힌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미시령에 카메라를 놓은 것은 단풍 시기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구할 수 없는 자료가 쌓인다. 미시령의 해발 700m 이상 지대에선 올해 단풍이 지난 10일 시작됐다. 지난해보다 이레 늦었다. 그보다 낮은 고도에선 지난 15일 단풍이 시작됐다. 지난해보다 하루가 늦다.

기사 이미지

이런 데이터는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공단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분석해 얻는다. 적색(red)·녹색(green)·청색(blue) 비율을 분석하는 RGB 분석 프로그램을 활용하는데, 단풍의 변화를 사진에 담긴 적색·녹색 간의 상대적 비율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단풍 들기 전의 사진에선 녹색 비율이 더 높다. 그러다 단풍철이 오면 적색 비율이 녹색을 앞선다. ‘단풍 시작일’이다. 이후 적색 비율이 계속 높아져 최고조에 이른 날이 ‘단풍 절정일’이다. 단풍이 시들기 시작하면 적색 비율이 다시 줄어든다. 지난해 미시령에선 단풍 시작에서 절정까지 36일이 걸렸다.

지리산 노고단을 바라보는 곳에도 이 카메라가 있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 해발 687m 지점이다. 해발 1300m대의 노고단 정상에서 훨씬 밑 400m대까지가 한 앵글에 잡힌다. RGB 분석을 거치면 해발 1000m 이상의 정상부, 700∼1000m 중간부, 그 아래 지대의 단풍 시기를 각각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노고단 정상부에선 지난 14일, 중간부는 19일, 저지대는 20일에 각각 단풍이 시작됐다. 지난해에 비해 각각 6일, 7일, 4일 늦었다. 단풍철 직전의 기온이 지난해보다 높았던 영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RGB 분석의 강점은 객관적 자료라는 데 있다. 지난해까지 기상청, 올해부터 민간업체가 맡은 단풍 시기 예측은 육안 관찰을 토대로 한다. 국립공원연구원 조사연구부 이진홍 계장은 “단풍 예보는 우리와 해발고도나 관측 장소가 다르고 분석 방법도 달라 단순 비교를 할 순 없다. 하지만 RGB 분석에선 객관적 데이터가 나오기 때문에 매해 일관성 있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생물계절을 관찰하는 카메라는 미시령의 카메라처럼 늘 똑같은 대상을 찍는다. 가장 중점적으로 찍는 것은 신갈나무다. 한국 전역에 분포하는 대표 수종이라서 여러 지역에서 비교 관찰하기 좋다. 신갈나무를 찍는 카메라는 설악산·지리산·소백산·월출산에 36대가 있다. 이들 카메라는 3∼6월에 1시간 간격으로 하루 24차례 신갈나무를 찍는다. 위도나 고도, 그리고 사면에 따라 신갈나무의 생물계절이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공단 카메라 중엔 특정 식물의 개화 과정만 찍는 카메라도 있다. 지리산의 히어리·진달래, 내장산의 노랑붓꽃이 관찰 대상이다. 3월부터 6월에 이르기까지 석 달에 걸쳐 역시 하루 24차례 꽃이 피고 지는 경이로운 과정을 기록한다.

또 다른 4대의 카메라는 무인도인 경남 통영시 홍도와 전남 신안군 칠발도에 있다. 사전에 설정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새를 촬영한다. 홍도에선 괭이갈매기를, 칠발도에선 다양한 철새를 관찰한다. 단풍이나 나무·꽃 촬영과 마찬가지로 매일 일정한 시각에 촬영이 이뤄진다. 어떤 종류의 새가 언제 와서 언제 떠나는지를 알 수 있다.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 김미란 박사는 “타임랩스 카메라가 활용되기 전엔 철새 번식이나 도래 시기를 추정할 뿐 정확한 날짜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에 타임랩스 카메라가 도입된 것은 2010년부터다. 이런 기능의 카메라는 서구에서 정원 촬영 용도로 개발됐다. 국내에선 수요가 많지 않아 2010년엔 취급 업체가 없었다. 공단은 해외 사이트에서 카메라를 ‘직구’했다.

촬영이 쉽지만은 않다. 우선 전력 공급이 어렵다. 정원과 달리 국립공원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대거나 배터리에 의존해야 한다. 햇빛이 부족하거나 배터리 성능이 약하면 장기간 촬영이 힘들다. 비 또는 안개로 인한 습기 때문에, 겨울철엔 영하 20도의 강추위로 카메라가 고장 나기 쉽다. 국립공원연구원 이호 과장은 “이런 고장에 대비해 카메라를 두 대씩 설치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무선송신 장비를 추가로 넣으면 카메라 작동 여부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여기엔 태양광발전 시설이 필수적인데 적합한 입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미시령 카메라도 처음엔 권금성 일대에 설치했다. 하지만 일사량이 부족해 배터리 충전이 안 됐다. 인근으로 옮겼으나 마찬가지였다. 두 번의 실패 뒤에 현재 자리를 찾았다.

공단은 타임랩스 카메라 촬영 사진이 장기간 쌓이면 기후변화 연구에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용석 국립공원연구원장은 “생물계절 간의 지역적 차이를 장기간 관찰하면 계절 변화 추이를 파악하고 기후변화를 감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악산=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