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만 내쉬는 출판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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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년여 동안 한미간에 심각한 줄다리기를 벌여 왔던 저작권법 개정안이 그동안 문화계가 우려했던 많은 문제점들을 해소하지 못한 채 지난주 국회문공위를 통과했다. 따라서 이 개정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국회 본회의에서도 그대로 통과될 것이다.
57년에 제정된 후 30년만에 처음 개정되는 이 법안을 놓고 응당 기뻐해야 할 출판계가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것은 그 속에 포함된 외국인의 저작권 보호문제에 있어 국내 문학발전에 장애가 되는 문제조항이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법의 시행 일을 87년7월1일로 규정(부칙 제1조)한 것은 국내 여건으로 미루어 너무 촉박하다. 출판계 자체도 그렇지만 정부측도 이 법에 따른 시행령, 시행 규칙을 만들려면 반년이란 기간은 무리다. 더구나 외국의 출판물은 발행일자를 1년 단위로 표시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87년 1월부터 소급 적용 될 소지도 없지 않다. 따라서 시행 일을 적어도88년으로 미루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일이라 생각된다.
또 개정안은 내년 하반기에 가입키로 된 세계저작권조약(UCC)의 개발도상국을 위한 특례조항 적용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UCC는 선진국의 입장과 개도국의 고충을 절충하는 선에서 연구목적에 한해 개도국을 상대로 번역권 강제 허락조항을 마련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이것을 충분히 명시하지 않고 있다.
개정안은 또 외국인의 저작물조항(제3조)에서 「맨 처음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외국인의 저작물」에 「외국에서 발행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저작물」까지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이것은 보호하지 않아도 될 외국인의 저작권까지 보호해야 하는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또 한가지, 개정안은 저작권 위탁 관리업(제78조)을 문공부장관의 허가제로 하고 있는데 이것도 문제다. 전제를 신고제로 하는 것이 마땅하나, 여의치 못할 경우 신탁부분만 허가제로 하고 대리부분은 자유롭게 놔둬야 저작물 이용에 지장을 주지 않고 국내 문화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더구나 「보고를 의무화하고 명령할 수 있다」는 구절은 삭제하거나 법률로써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의해야할 점은 개정안의 모든 처벌기준이 보다 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해석이 까다롭고 또 소송이 생활화되어 있는 서구인들에게 자칫하면 우리 출판계가 말려들어 소송사건으로 영일이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함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국내 출판계의 보호육성책을 별도로 마련하라는 것이다. 우선 거대한 외국 출판자본의 국내 진출을 막고, 외국인의 출판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시켜야 한다. 나아가서 양서의 출판보급을 위한 강력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어쨌든 미국은 저작권법을 한번 개정하는데 22년이 걸렸고 하원의 소위원회만 51번이 열렸다고 한다.
우리 정신문화의 기본법이라고 할이 법안을 제발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에서만은 한번쯤 심사숙고하여 처리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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