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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이왕표, 스승 김일 10주기 국제레슬링대회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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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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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태산(泰山)이 앉아있는 느낌이었어요. 눈도 마주치기 힘들 정도였죠.”

내일 고흥군, 28일 보성군서 펼쳐
스승이 준 호랑이 가운 가장 아껴

이왕표(62)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는 41년 전 스승인 ‘박치기왕’ 김일(사진)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 대표는 26일 전남 고흥군 김일기념체육관과 28일 보성군 다향체육관에서 열리는 국제프로레슬링대회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2006년 10월 26일 세상을 떠난 스승의 10주기를 추모하는 대회다. 노지심·홍상진·조경호와 제임스 라이딘(뉴질랜드)·붓마(미국) 등 국내외 프로레슬러 13명이 출전한다.

지난 18일 서울 등촌동 자택에서 만난 이 대표는 많이 야윈 모습이었다. 한때 ‘나는 표범’으로 불렸던 그는 2013년 담도암 수술을 받고, 지난해 5월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이 대표는 “김일 선생님의 10주기를 계기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분의 고향에서 프로레슬링대회를 열게 됐다”며 “해외 유명 선수들을 직접 섭외하고 대회 스폰서를 구하느라 두 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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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표 대표가 스승인 김일로부터 물려받은 레슬링 가운을 입고 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이 대표는 1975년 김일체육관 1기생으로 레슬링에 입문하면서 스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일은 세계적 프로레슬러인 역도산으로부터 레슬링을 배운 뒤 덩치가 훨씬 큰 외국 선수들을 박치기로 쓰러뜨리면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훈련 당시 참을 인(忍)자를 쓰고 ‘참지 못하면 레슬러가 될 수 없다’며 항상 인내심을 강조했어요. ”

이 대표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라며 호랑이가 수놓아진 가운을 몸에 걸쳤다. 스승이 2000년 은퇴식에서 그를 정식 후계자로 인정하면서 선물한 레슬링 가운이다. “선수 시절에 직접 입었던 가운을 주시는데, 비로소 스승한테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어요.”

이 대표는 종합격투기의 인기 등에 밀려 내리막길을 걸어온 프로레슬링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요즘은 프로레슬링 시합을 여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김일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지만 레슬링을 다시 반석에 올려놓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는 세 번의 암수술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프로레슬링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스승과의 약속 때문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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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조만간 레슬링 도장을 다시 열고 후배 프로레슬러를 양성하는 등 김일 선생님의 10주기를 프로레슬링 부활의 신호탄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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