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식객의 맛집] 나도 에르메스 그릇에 달라고 해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 요리연구가 류지연의 ‘룸바캉스’

입맛은 정말 제각각인데 남들이 어디서 뭘 먹는지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맛 자체보다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가 궁금해서일지도 모른다. 10월 5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맛집 소개 시리즈다.
각 분야에서 나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멋스런 삶을 사는 8인의 명사들이 각각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 번 본인이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

친구들과 한 파티에 아르데코풍 식기 내줘
꽃다발 가득 로맨틱한 공간, 프러포즈에 딱
오징어먹물로 만든 트러플오일 크로켓 추천

기사 이미지

교육열에 불타는 엄마 덕분에 초등학교 내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녔던 이태원은 지금도 내게 참 만만한 곳이다. 그중 ‘룸 바캉스’는 내 집 같은 퓨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20년 넘게 패션무역업을 해온 지은혜 사장은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껴야 했던 직업의 특성상, 혼자 여유롭게 바캉스를 떠나는 장면을 늘 상상했단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고. 그래서 꼭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내 집, 내 방처럼 휴식과 충전이 가능한 곳 ‘룸 바캉스’를 오픈했단다.

기사 이미지

지중해풍 카바나와 크고 작은 화분들로 꾸며진 테라스 테이블.

이태원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들만큼 100평(330㎡) 남짓한 넓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실내 구석구석을 채운 꽃다발들이다. “작은 거라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손님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게 지 사장의 생각이다. 호텔 빼고 요즘 이렇게 생화로 실내를 장식하는 레스토랑이 몇이나 될까. 딱 4명만 앉을 수 있는 테라스 테이블에도 지중해풍 카바나를 세우고 주변엔 크고 작은 식물로 꽉 채웠다.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로맨틱한 분위기라 프러포즈에 안성맞춤일 듯.

테이블마다 있는 종이 매트도 내가 좋아하는 소품이다. 지인이 그려준 건데 매트 가운데 클래식한 디자인의 포크·나이프·스푼 등이 가지런히 그려져 있다. 사이즈도 실물이랑 비슷해서 테이블에 앉으면 그림에 맞춰 식기를 정돈해야할 것 같은 강박증에 빠진다.

모던한 실내에는 예쁜 그릇과 찻잔이 전시된 장식장이 있다. 지 사장의 개인 컬렉션인데 미리 이벤트를 예약하면 콘셉트에 따라 이 그릇들을 사용한다. 지난해 지인들과 함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주제로 파티를 연 적이 있다. 영화 속 여주인공 데이지와 뉴욕 사교계 여인들처럼 화려한 모자와 긴 장갑, 목걸이 등으로 한껏 치장하고 나오는 게 그날의 드레스 코드였다. 워낙에 친한 사이들이라 서로의 차림을 보며 즐거웠는데, 그날 우리를 놀라게 한 또 하나의 주인공은 지 사장이 준비해준 아르데코풍 에르메스 식기들이었다. 친구들끼리 장난처럼 정한 주제였는데 호사스러운 식기들로 ‘장단’을 맞춰준 거다. 그 다음 크리스마스 파티 때는 빨간색 장식이 들어간 접시와 식기를 내주었는데 역시 에르메스였다!

음식은 정통 이탈리안을 고집하기보다 적당히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퓨전 메뉴들이다. TV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처음 배운 엄마가 나름 솜씨를 부려 만든 소박하면서도 특별한 음식 같다.

연어아보카도케이크는 와인을 부르는 메뉴다. 바삭한 바게트 빵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연어아보카도를 올려먹으면 술이 술술 들어간다. 저녁에 마트에서 사간 회를 적당히 먹고 남겼다가 잘게 잘라서 소금·후추와 질 좋은 오일을 살짝 뿌려 바게트 빵에 올려 먹으면 멋진 가정식 브런치 메뉴가 될 수 있다.

기사 이미지

트러플오일 크로켓

트러플오일 크로켓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다. 삶아서 으깬 감자에 트러플 오일, 오징어먹물, 볶은 양파, 모짜렐라 치즈로 속을 채운 다음 바삭하게 튀겼다. 3조각이 기본인데, 전채요리임에도 언제나 1인당 2조각 이상을 먹게 된다. 그렇게 욕심 부리고 나면 오징어먹물 때문에 입술이 마녀들처럼 검게 변한다. 친한 사이가 아니면 너무 많이 먹지 말 것.

대체적으로 가격도 착하다. 쇠고기 비스테카(쇠고기 등심 샐러드)가 2만원 정도인데 청담동의 반값이다.

한 달에 두 세 번은 이곳을 찾지만 그중 한 번은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이태원에 온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티셔츠·양말 같은 소품들을 쇼핑하고, 식당에 한 시간쯤 일찍 도착해 노트에 낙서를 하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이 내게는 ‘바캉스’다.

룸바캉스

●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1동 56-10 (녹사평대로32길 21)
● 전화 : 02-797-7333 영업시간: 11시~21시30분(라스트오더 20시30분). 명절휴무
● 주차 : 불가, 용산구청 유료주차 이용 메뉴: 해산물 국물 떡볶이(1만8000원), 연어아보카도케이크(1만8000원), 트러플오일크로켓(1만6000원)
● 드링크 : 하우스 와인(잔 7000원, 병 3만5000원). 레드 12종(4만3000원~21만8000원), 화이트 8종(4만4000원~12만원), 스파클링 6종(3만8000원~12만원)

이주의 식객

기사 이미지
류지연
요리연구가. 취미로 제빵과 요리는 물론 테이블·플라워 데커레이션, 도예까지 섭렵했다. 패션업계 지인들 사이에서 ‘송파동 사는 솜씨좋은 류’라고 소문나면서 쿠킹 스튜디오 ‘송파류’ 운영을 시작했다. 요즘 전지현·송중기·송혜교같은 톱스타 촬영장엔 ‘송파류 케이터링’이 공식이라고.

관련 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