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을 증명해준 진짜 맥점 백5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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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1국
[제4보 (50~64)]
白.李昌鎬 9단 | 黑.曺薰鉉 9단

상변에서 曺9단은 위기에 몰렸으나 기기절묘한 맥점을 동원한 끝에 벗어났다. 曺9단뿐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50 한 수가 슬그머니 떨어졌다. 李9단은 언제나 그렇듯 돌을 쓰다듬듯 가만히 갖다 놓았을 뿐이지만 이 한 수에 구경꾼의 가슴마저 철렁해진다.

고약한 수다.曺9단의 얼굴도 쓸개를 씹은 듯 일그러지고 있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새어나온다.

51은 선수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다. 우선 '참고도1' 흑1은 백2로 안된다. 그래서 53 잡자 54로 타고 넘는 수가 등장했다.

초반에 1선을 기어넘는 것은 금기에 해당하지만 지금은 이 수가 曺9단의 의표를 통렬하게 찌르고 있다.

54에 '참고도2' 흑1로 나가는 것은 백2, 4를 당해 더 나빠진다. 한가하게 A에 따낼 수도 없으려니와 B의 끝내기를 거저 당하는 게 보통 손해가 아니다.

그래서 꼼짝없이 55 따낼 수밖에 없었고 백은 56으로 깨끗하게 연결했다.

"망한 것 같습니다." 거침없는 표현으로 유명한 김성룡7단이 대뜸 한마디 한다. 다른 프로들의 중론도 흑이 당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었다.

'참고도3'을 보자. 이것은 실전을 그대로 옮겨온 것인데 흑과 백이 두점씩 때려낸 것은 같다.

그러나 백 모양은 군살이 하나도 없이 늘씬한 모습인 데 반해 흑 모양은 흑▲ 두점이 완전 중복의 형태다. 소위 '포도송이'에 가까운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전보에서 흑이 구사했던 온갖 맥점들은 화려했지만 허상이었다. 50의 진짜 맥점이 그걸 뒤집어 보여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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