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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남양주 생가로 ‘하피첩’ 보러 오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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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7대 종손인 정호영(58·EBS 사업위원)씨는 어린 시절 들었던 할아버지의 한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내가 죽으면 조상님을 어떻게 뵙나. 모든 게 내 잘못이야”라며 애통해했다. “가보(家寶)로 내려온 ‘하피첩(霞?帖)’을 6·25 당시 잃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이셨죠. 피난을 가려고 싼 짐 사이에 들어 있었는데 수원역에서 인파에 밀려 분실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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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자식사랑을 보여주는 ‘하피첩’. ‘하피’는 ‘붉은 치마’를 뜻한다. 다산은 아내가 보내온 치마를 잘라 모두 네 첩(帖)을 만들었으나 현재 세 첩만 전한다. [사진 실학박물관]

‘하피첩’(보물 1683-2호)만큼 기구한 문화재도 드물다. 다산의 후손들은 “집안 최고의 보물”로 간직해왔다. 1925년 경기도 남양주군 마재마을(현재 조안면) 다산 생가에 대홍수가 나서 마을이 휩쓸려갔을 때도 다산 4대손 정규영(1872~1927)씨는 이를 다산의 다른 저작과 함께 밧줄로 맨 고리짝에 넣어 살려냈다. 그런 ‘하피첩’을 잃어버렸으니 상실감이 극심했다.

아내의 붉은 치마에 쓴 다산 편지
가보로 간직하다 6·25 때 분실
66년 만에 돌아온 고향서 특별전

‘하피첩’이 탄생한 사연도 각별하다. 다산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1806년, 부인 풍산 홍씨가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색 비단치마를 보내왔다. 다산은 4년 뒤 빛 바랜 치마를 마름질해서 마재에 있던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경계의 글이다. 또 딸에게는 매화와 새를 그린 그림을 보냈다. 각각 ‘하피첩’과 ‘매화병제도(梅花倂題圖)’다. 다산의 가없는 자식 사랑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영영 사라진 줄 알았던 ‘하피첩’은 2006년 KBS ‘진품명품’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나왔고 2010년 보물로 지정됐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전 대표의 파산으로 국가에 압류됐고, 지난해 경매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이 7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파란만장 ‘하피첩’이다.

그 ‘하피첩’이 17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산 생가 맞은 편에 2009년 건립된 실학박물관에서 ‘하피첩의 귀향’ 특별전(내년 3월 26일까지)이 열린다. ‘하피첩’의 남매 격인 ‘매화병제도’도 나온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지난 5월 특별전이 열렸으나 이번에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다산 서거 180주년을 맞아 ‘하피첩’을 비롯한 관련 유물 20여 점이 전시된다. 실학박물관 정성희 학예사는 “시대를 고민했던 대학자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다산의 가족애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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