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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6)하원에서 발해까지…동양사 5천년의 베일을 벗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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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쾌한 음악과 함께 적색·청색·분홍색등 가지각색의 깃발을 선두로 출장선수들이 대회장으로 들어온다. 요란한 환성과 박수가 터진다. 깃발을 든 기수는 민족중학 여학생들. 그 뒤에 억세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따르며 독수리춤을 추고 있다.
색채가 선명한 민족복장의 기마대가 나타나며 더욱 요란한 박수가 울려 퍼졌다.
「칭기즈칸」 후예들의 나담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몽고족의 전통적제전 나담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오르도스 목축민의 도시 우신기의 탑착진에 들어간 것은 저녁때였다. 우신기는 오르도스 남부에 있어 섬서생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오르도스 전체의 인구는 약8백만명, 몽고족은 그 10%도 안된다. 그러나 우신기는 인구 약1만5천명중에 70%가 몽고족이라니 실로 목축민의 천지다. 나담대회를 하루 앞둔 그날,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들떠 있었다.

<매년 씨름·경마대회>
나담이란 원래 몽고어로 <오락>의 뜻. 매년 1회씩 기(행정구역) 단위로 제전이 열려 씨름과 경마등 몽고족의 전통적 기량을 겨룬다.
몽고씨름은 13세기「칭기즈칸」시대에 이미 성행하고 있었다. 전통있는 경기인만큼 장사들의 의상이나 경기진행 방법에서도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장사들은 양쪽에서 용맹스럽게 뛰어나가서 심판의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함께 달라붙는다.
무릎부터 그의 목이 먼저 땅에 닿은 목이 진다. 씨름판의 경계는 없다. 시간도 무제한. 민족·나이·체중·거주지역의 제한도 없다. 초원에서 몸 하나로 살아온 사나이들이 사력을 다하는 승부다.
이튿날 밤에는 가요대회를 보러 농구경기장으로 갔다. 경기장으로 통하는 큰 거리에는 저녁7시인데 양쪽에 노점이 줄지어 늘어서고 많은 사람들이 산책삼아 기웃거리고 있다. 나담대회기간중엔 군중을 상대로 다른 도시에서도 많은 상인들이 몰려와서 노점을 연다.
반수가 음식점이고 나머지는 옷가게, 선글라스만 파는 곳, 브로마이드나 액세서리를 파는 점포, 몽고칼등 토산품점도 낀 잡다한 것이다.
회장에 도착하자 가요대회는 이미 고비에 이르러 우라무치라 불리는 연예단이 민족악기 연주, 민요등을 잇달아 들려주고 있었다. 스탠드를 꽉메운 관객은 술을 들고 와서 마시면서 듣고 있다.
오르도스에는 옛민요·무용이 많이 남아있고 지금도 민족악기 한두개씩은 가정에도 있어 이웃끼리 모여 즐긴다고 한다. 술기운탓인지 우라무치의 노래에 맞추어 관객도 큰소리로 따라 불렀다.
『술이라도 거나하면 즉흥으로도 노래를 잘 지어 불러요. 모두 천성의 시인들이라서…』안내원의 말.
나담 기간엔 타지방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도 돌아온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들이 어울려 모여든다. 그리하여 1년에 한번씩 모두 몽고민요를 맘껏 노래할수 있는 기쁨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밤이 이슥해지자 주역은 무대외의 연주자들 대신 관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취기에 들뜬 노파가 노래를 시작한다. 그 노래가 점차 주위에 확산되어 나간다. 가수 뺨칠 정도로 관중들의 노래수준은 상당하다. 이쪽에서 노래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반대편에서 다른 노래소리가 울려나온다.
「테무진」을 「칭기즈깐」으로 추대한 크릴타이(대집회)의 밤도 분명히 이런 큰 잔치가 벌어졌으리라. 올려다보니 맑은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난다. 언제 끝날지모를 노래소리는 끊일줄 모른다.

<"말은 신발과 같다">
인기프로인 경마는 시가지에서 차로 10분쯤 걸리는 초원에서 벌어졌다. 8㎞의 장거리 레이스인데 출정마는 20마리. 푸른기를 든 역원에 선도되어 경마에 출장하는 일단이 달려왔다. 뜻밖에도 어른들 사이에 머리띠를 매고 끼어든 소년이 6명이다. 기껏해야 12∼13세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와 함께 타고 등에 달라붙어 있는 아이, 아버지에게 말고삐를 잡혀가지고 나오는 아이등,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레이스를 앞두고 긴장한 탓인지 표정은 굳어있다.
아버지쪽도 걱정스러운듯 쉴새없이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경마의 종류는 두 가지. 하나는 장거리고, 또 하나는 압주마라고 하는 것이다. 통역은<보마>라고 번역해 주었는데 측대보의 레이스다. 측대보란 보통으로 달리는 방법과 다르게 전후의 오른쪽 다리와 전후의 왼쪽 다리를 각각 한쌍으로 하여 엇갈리게 움직이면서 달리는 것으로 상하의 움직임이 거의없이 말 그대로 인마일체가 되어 미끄러지듯이 달러간다.
이 방법으로 가면 하루종일 달리게 해도 말과 사람이 지치지 않고 숙련된 말의 경우는 보통말이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고 한다.
『몽고사람에겐 말은 신발같은 것이어서 못타는 사람이라곤 없음니다. 하지만 이 주법은 아무나 흉내내진 못하지요』안내자의 설명이다.
장거리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말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않는다.
『봐요, 저 멀리 모래언덕과 모래언덕 사이를-』
몽고 사람에겐 보이는 모양이다. 가리키는 방향으로 망원렌즈를 돌려댔더니 이윽고 검은 깨알같은 점이 차츰 나타났다. 놀랍게도 선두는 흰셔츠에 핑크빛 머리띠를 두른 소년은 몽고의 아이들은 3세가 되면 아버지에게서 안장을 얻어 본격적으로 승마연습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일에, 놀이에, 외출에 자기의 말과 일체가 된 생활을 하며 그것은 나이를 먹어 말을 탈수 없을 때까지 계속된다.
에린 골반 나담-. 초원의 생활속에서 생긴 전통의 기술은 지금도 살아 있다. 나담대회에서는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약동하고 있었다.

<「파오」집은 손님용>
취재반은 후호호트의 숙소를 나와 북쪽 사자왕기로 향했다. 사자왕기는 우란차푸 초원안에 있다. 이곳에 파오(포)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파오란 나무로 반구형의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백색 펠트(천)를 둘러친 유목민의 주거다. 방목지를 바꾸어 이동할때는 뜯어서 챙겨가지고 가면 된다.
취재반은 「호스고」씨의 파오를 방문했다. 「호스고」씨는 53세. 1백마리 가까운 양과 소 10여마리, 말4마리를 치고 있다. 이전에는 방목을 위해 물과 풀과 소금을 찾아 계절마다 이동하곤 했지만 목초의 인공재배 성과도 올려 방목지가 고정됨에 따라 이동범위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호스고」씨는 생활을 주로 흙담집에서 하며 파오는 아침 점심식사와 방문객의 접대용으로 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호스고」씨네 파오에 우라무치가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우라무치는 순회공연연예단. 우라무치 공연을 구경할수 있는것은 1년에 한두번이라 한다. 「호스고」씨의 집에는 이미 30명쫌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붉은 빛깔, 자주 빛깔, 노란빛깔등 갖가지 빛깔의 몽고복장으로 화사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우라무치는 초원을 마이크로버스로 달려왔다. 버스에서 내린 대원은 운전사를 포함하여 모두9명.
여성 2명, 남성 1명으로 가수는 3명, 마두금연주자 1명, 젊은 여성무용수가 4명.

<인기가수 「아라탄」>
최초의 우라무치는 1957년 편성되었다. 대원은 12명뿐이었다. 현재는 내몽고에서만도 80대, 2천여명의 대원을 헤아린다. 대원은 노래와 춤을 피로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의 정책과 중요한 시사문제를 선전하는 임무도 띠고있다.
이날의 공연은 마두금의 독주로 시작됐다. 두 채의 파오 앞이 즉석무대. 관객은 반달모양으로 땅바닥에 둘러앉는다.
곡목은 <사향곡>. 몽고족의 옛민요를 소재로 만들어진 곡으로 멀리 시집간 딸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노래하다.
마두금은 호궁의 일종으로 줄(현)윗부분이 말머리 모양을 하고있어서 이 이름이 붙은 것이다. 섬세하고 애상조를 띤 음색이 초원을 흘러간다.
마두금 연주에 이어서 젊은 여성 4명의 군무가 시작되었다. 분위기는 일전하여 화려해진다. 적색·청색의 화사한 민족의상에는 금빛깔 자수의 테를 둘렀고 머리에는 산호와 호박등을 이어붙인 장식. 이러한 의상은 몽고족여성이 신년맞이때나 춘연때에 착용해온 것이다. 춤은 풍요한 초원에의 찬미를 표현하는 것이라한다.
이날의 최고인기는 여성가수「아라탄체체구」양. 몽고어로 <황금의 꽃>이라는 이름인 그녀는 그 이름에 어울릴만큼 내몽고 제일의 소문난 미성을 자랑한다.
낭랑한 알토의 노래소리가 흘러나온다. 정말 풍부한 성량이다. 노래는 몽고민요<소황마>. 조그만 황색털의 사랑하는 말을 타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갈 때, 몸이 흔들림에 따라 그 그리움이 한층 고조되어 간다는 사랑의 노래. 처음 듣는 노래지만 곡조가 정겹다.
그녀는 『내게는 초원이 무대, 푸른하늘이 막 입니다. 노래는 모두 어렸을때 유목생활을 하면서 배운 겁니다. 크고 화려한 장소에서 노래하는 것보다 이렇게 초원에서 노래할때 더 진심이 쏠립니다』이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거의 두 시간의 공연인데도 삽시간에 끝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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