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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한국이 ‘도난차 수출국’ 오명 벗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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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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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우
한남대 무역학과 교수

얼마 전 도난차량을 해외로 밀수출하던 일당이 검거된 사건이 밝혀졌다. 밀수출된 도난차는 품질과 정상적인 애프터서비스가 보장되지 않는다. 자연히 국내 자동차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민 재산권을 침해해 국내 자동차 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밀수출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밀수업자는 외국으로 보낼 도난차량과 폐차 직전의 정상 차량을 준비한다. 수출 신고서에는 정상차량의 차대번호(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차량별 고유번호)를 기재하므로, 세관은 일단 수출신고를 받아준다. 신고를 마친 밀수업자는 외국으로 나갈 컨테이너에 정상차량이 아닌 도난차량을 적재해 화물선에 싣는다. 연간 22만 대의 중고차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어, 일단 컨테이너에 들어간 차량은 일일이 검사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대체 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 수출물품의 적재과정에서 물품 바꿔치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수출 통관 절차에 있어서 대부분의 규제를 풀었다. 수출관련 전반적 규제완화를 통한 신속한 통관 지원은 수출입국(輸出立國)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해왔다. 그러나 부작용도 생겼다. 수출물품에 대한 관리가 어려워졌다. 물품의 반출입과 보관을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보세구역(통관 편의를 제공하는 대신 세관의 감시·단속을 집중하는 구역)에 수출물품을 보관하는 제도를 폐지한 게 대표적이다. 수출 물품을 보세구역에 반입하지 않고 수출자가 원하는 곳에서 수출물품에 대해 신고를 하고 배나 비행기에 실어서 바로 외국으로 반출할 수 있다. 이를 악용해 도난물품을 신속하게 해외로 밀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신속한 물류 흐름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밀수출을 막는 근본적 해결책은 과연 없을까? 답은 자동차와 같은 우범 물품을 통관단계부터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우범성이 높은 품목을 지정하고 세관의 관리감독이 가능한 장소 내에서만 수출 절차를 진행한다면 물품 바꿔치기도 막을 수 있고, 물류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자국 자동차 브랜드를 가진 선진국에서는 불법차량 밀수출이 자동차 산업에 끼치는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중고자동차에 대해 출항 72시간 전에 보세구역에 반입한 후 수출 신고하도록 하고, 선적 작업도 세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 역시 중고자동차를 보세구역에 반입한 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말 관세법을 개정해 자동차와 같은 우범물품이 보세구역에 반입된 후 수출 신고하는 제도적 개선의 첫걸음을 뗐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시행을 위한 대통령령이 마련되지 않아 현재까지 답보 상태에 있다.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아쉬운 상황이다. 정부가 자동차 밀수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해 신속하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도난차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게 되길 바란다.

최 장 우
한남대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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