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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물기둥, 조석력 때문에 얼음 덩어리 깨져 분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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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27면

1 목성 위성 유로파에서 수증기가 분출하는 가상 그림. (sputniknews.com)

지구는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궤도에 있었더라면 지구 표면의 물은 모두 수증기가 돼 날아가 버리거나, 혹은 얼어붙어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 됐을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잘 받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도 있다. 태양계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지역에 놓인 행성은 지구와 화성밖에는 없다. 화성은 물이 존재할 수 있고, 적도를 기준으로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0년대 초중반에 미생물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 생명의 흔적이 없다면 태양계 내에서 외계 생명을 찾는 일을 포기해야 할까?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존재할 조건을 갖추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극한 조건에서도 생명 생존 증거 발견]외계의 생명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극한 조건에서도 생명이 생존할 수 있다는 증거가 지구에서 발견됐다. 1977년 티에르트 헨드릭 반 안델은 잭 코널리 그리고 잭 코얼리스와 함께 갈라파고스 해협을 탐사하고 있었다. 그는 해저 토양층의 성분을 분석해서 환경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에콰도르 서쪽 1000㎞ 지점에는 화산활동이 빈번한 갈라파고스 해저산맥이 길게 분포하고 있다. 이곳은 수심이 깊어 전문가가 아니면 탐사하기 쉽지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깊은 해저에는 열수가 분출하는 구멍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반 안델은 수면 아래 5㎞ 정도까지 이 열수 분출공을 찾아 탐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찾은 한 분출공에서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수면 아래로 5km정도 내려가게 되면, 태양의 빛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물이 내리누르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된다. 지상에서 진화한 인간에게는 이런 곳에 생명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반 알덴은 열수가 분출되어 나오는 이 깊은 곳에 셀 수 없이 많은 달팽이들과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 발견이 외계 생명 탐사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비교적 생명친화적인 환경에서 진화했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하기 어려운 극한 조건이라고 해서 반드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에너지가 공급된다면, 그곳에 생명이 존재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열수 분출공 주변의 생물들은 태양 빛을 이용한 광합성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황성분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는 방법으로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 이외에도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태양의 빛에 의해서 생존할 수 있는 좁은 지역을 벗어나 좀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숨어있는 생명을 찾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태양의 빛 이외에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허블이 직접 관측한 목성 위성 유로파의 수증기 기둥. 7시 방향에 수증기 기둥으로 예측되는 현상이 보인다.

[위성 이오를 달구는 에너지는 목성의 중력]목성을 돌고 있는 위성 이오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목성은 태양 다음으로 질량이 큰 태양계 내부의 천체이지만, 태양처럼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오는 뚜렷한 화산 활동이 관측되는 아주 뜨거운 목성의 위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오를 뜨겁게 달구는 에너지는 목성에서 공급되는 빛이 아니고, 목성의 중력이다. 바다의 물이 빠졌다가 다시 밀려드는 현상은 달의 중력에 의한 조석력에 의해서 발생한다. 만일 작은 달이 아닌 목성처럼 거대한 천체에 의해서 생기는 조석력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용히 밀려드는 낭만적인 바닷가의 밀물이 아니고,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다.


목성의 중력에 의해서 생기는 조석력은 이오에서는 아주 크게 작용한다. 단순하게 바닷물을 해변으로 밀어 버리는 힘이 아닌 이오의 내부를 짓이기고 찢어 버릴 만큼의 가공할 만한 힘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조석력을 받은 이오의 내부는 갈라지고, 이 갈라진 표면이 서로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마찰력은 암석도 녹이게 되는 것이다. 이 녹아버린 암석들이 압력을 받게 되면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화산 활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태양에서 발생하는 복사에너지를 받을 수 없더라도 목성과 같은 거대 행성에 의한 조석력은 생물의 생존을 위한 대체 에너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26일 허블망원경은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서 분출하는 거대한 물기둥을 발견했다는 발표를 했다. 유로파는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너무 멀어 물이 존재할 수 없는 위성이다. 이 정도 거리에서 받는 태양의 복사에너지로는 차가운 얼음을 녹일 수가 없다. 하지만 유로파의 에너지는 다른 곳에서 나온다. 유로파는 이오보다 조금 더 목성에서 떨어진 궤도에서 돌고 있다. 이오만큼의 거대한 조석력은 아니지만, 유로파에 있는 얼음을 깨고 녹여버릴 수 있을 정도의 마찰력은 만들어 낼 수 있다. 유로파의 내부에 다량의 얼음을 포함하고 있다면 조석력이 공급하는 에너지를 받아 녹은 물로 가득 찬 바다가 있을 수 있다.

2 미 항공우주국(NASA) 탐사선 카시니 하위헌스호가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분출되는 수증기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가스에 섞여 있던 수증기가 우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위성은 지름이 500㎞에 불과해 중력이 약하지만 내부엔 물과 얼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NASA]

[점토 광물 성분, 소행성과 충돌로 생겼을 수도]하지만 이 바다가 지표에서 물결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표의 온도는 영하 150도 이하의 극한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유로파의 표면은 얼음으로 덮여 있다. 1989년에 목성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된 갈릴레오호는 유로파의 표면이 갈라져 있는 것을 관측했다. 시간을 두고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렇게 갈라져 있는 조각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유로파는 얼음 위성이 아니고, 북극에 떠 있는 빙산처럼 지표의 얼음이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물이 존재하는 위성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이 얼음 덩어리의 두께는 대략 5㎞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얼음 덩어리 아래에는 깊이 100㎞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유로파의 바다는 목성과 주변의 위성들이 가하는 조석력에 의해서 압력을 받고 있다. 이 압력이 임계점을 넘게 되면, 지표의 얼음조각 사이 틈새에서 분출해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NASA가 발표한 물기둥 관측은 이런 원리에 의해서 설명이 된다.


지구 해저 열수 분출공 주변의 생물은 황성분을 산화시킨 에너지로 생존한다. 유로파에 생물이 있다면 이 생물은 유로파 바다의 과산화수소수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유로파의 표면 얼음 위에는 점토 광물 성분이 검출되는데, 이것은 내부의 암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소행성과의 충돌에 의해서 생겼을 것이다. 지구의 생명이 외부에서 배달됐다고 설명하는 생명기원설이 있다. 이런 설명을 믿는다면, 유로파에서 생명의 씨앗이 외부에서 전달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저 수천 ㎞에서도 생명이 생존하듯이 유로파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생명은 적응하고 진화했을 수도 있다.


 [토성 위성 타이탄과 엔셀라두스도 후보]그렇다면 태양계에 유로파와 같은 조건을 갖춘 곳이 또 있을까? 목성에는 크고 작은 위성들이 모두 80여 개 정도 존재한다. 이중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발견한 4개의 위성은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다. 칼리스토는 이오나 유로파처럼 강렬한 조석력은 없지만, 물이 존재할 것으로 기대가 되는 위성이다. 토성의 주위를 돌고 있는 60여 개의 위성들 중에서 타이탄과 엔셀라두스도 바다가 존재할 수 있는 후보들이다. 이 두 위성의 얼음을 녹일 수 있는 에너지는 유로파의 경우처럼 조석력에 의해서 주어진다. 유로파의 경우처럼 확증은 없지만,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것과 같은 현상도 관측되었다. 이런 식으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보면, 화성에서 멈추어 버린 인간의 희망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2013년에 개봉된 영화 ‘유로파 리포트’를 보면, NASA가 아닌 기업이 후원하는 우주선이 유로파를 향해서 떠난다. 얼음 표면에 착륙한 우주선은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지표면 아래에 있는 바다의 미생물을 채취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거대한 수중 괴물과 만나게 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다. 난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설정이 아주 허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닐까? 그곳에는 반 안델이 발견한 해저생물들보다 더 상상을 초월한 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송용선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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