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기관차, 마주 달릴 셈인가-합의개헌은 국민 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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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와 김영삼 고문, 그리고 김대중 민추협공동의장은 29일 「실세대화」를 촉구하면서 야당의 개헌특위활동을 중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동안의 우여곡절을 돌아보면 뜻밖의 일은 아니다.
야권 3자는 6월말 회동에서 헌특의 제1차 활동시한을 9월말로 정하고 그때까지 권력구조문제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중대결단」을 내리기로 합의한바 있었다.
신민당의 이 같은 결정은 헌특의 공전을 둘러싸고 빚어진 당내의 이해대림을 정리하고 직선제개헌 관철을 위한 대여 투쟁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키 위한 전략인 것 같다.
어쨌거나 야당의 강경선회는 여당의 강경대응을 불러서 개헌정국은 물론이고 정기국회의 정상적 운영도 어려워질 것은 틀림없다.
과연 『마주보고 달리는 두개의 기관차』가 정면 충돌을 하고 말 것인지, 위기정국이 마침내 벼랑까지 가면 어떤 극적인 합의점을 찾게 될 것인지,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실로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물론 야당이 내세우는 「실세대화」에 내포된 의미는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김대중씨의 사면·복권과 함께 구속자 석방이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걸려 있다.
이른바 「동교동」쪽으로서는 사면·복권이 전제되지 않은 헌특에서의 안 결은 결국 자신을 소외시킨 가운데 이룩되는 함의이므로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상도동」측으로서도 이를 무릅쓰고 타협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반면 민정당으로서는 권력구조에 대한 양보가 전제되지 않는 한 사면·복권은 어림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실세」라고 하지만 신민당 내에서의 실세일수는 있어도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보세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태우 대표와 이민우총재 또는 김영삼 고문간의 대화라면 몰라도 이 밖의 다른 「실세대화」에 응할 기미는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정국은 어찌 될 것인가. 야당은 재야단체·운동권학생·근로자 등을 모아 장외투쟁으로 나서게 될 것이며, 정부여당은 어떠한 포력도 불용 한다는 강경 대응책을 펼 것은 뻔한 일이다.
야권의 군중집회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함께 여쪽이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책은 일부 이탈을 무릅쓰고라도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합법적으로 성립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헌특 중단발표에 접한 민정당 쪽에서 『국민과 국민당, 그리고 신민당 내에서도 직선제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합의개헌 달성에 최선을 다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앞으로의 정국 전망에 중요한 시사를 던진다.
신민당의 강경선회가 과연 일사 불란한 당론인지, 당내 헤게모니를 에워 싼 이해상충의 책략적 산물인지는 제쳐두고라도 극단적인 대치상황은 자칫 전면적인 파국을 부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어느 형태건 일단 파국이 닥치면 그때 가서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지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최선을 다해도 안될 때 차선책을 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보지 않고 자기 나름의 독단에 따라 국민을 오도하려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선 여쪽은 야당이 요구하는 대화요구에 고식적인 대응보다는 고차원적인 적극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국민들마저 위태위태한 벼랑에 섰는데 또 무엇을 주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선 노태우-김영삼 회담 등 가능한 대화만이라도 성사시켜 야당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야당 또한 헌특이란 공식적인 대화채널은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야당이 자기네 뜻대로 안 된다고 헌특을 외면하면 명분에서 설득력이 없으며, 정치인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지탄을 면하기 어렵다.
TV생중계 문제로 아옹다옹하던 정국의 흐름은 이제 막바지 벼랑까지 온 느낌이다. 여기서 정치력 부족으로 또 한번 천추의 한을 기록할 것인지, 참으로 대국적인 시각에서 이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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