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들 치료거절…'교통사고 중상' 두살배기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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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두살배기 남아가 종합병원 10여 곳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미루는 바람에 뒤늦게 수술을 받았지만 목숨을 잃었다.

7일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5시쯤 전북 전주시 반월동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모(2)군과 김군의 외할머니 김모(72)씨가 후진하던 대형 견인차에 치여 다리가 부러지는 등 크게 다쳤다. 함께 있던 김군의 누나(4)는 손톱 등에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김군 남매는 어린이집을 마치고 외할머니와 함께 귀가하던 중이었다.

김군 남매와 외할머니는 사고를 당한 지 약 15분 만에 서로 다른 119구급차에 실려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병원에 각각 오후 5시33분과 5시45분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 병원 응급센터 수술실 2곳 모두 수술 중이어서 김군과 외할머니는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응급의료팀은 오후 6시쯤 상태가 더 위중한 외할머니는 수술실이 비는 대로 수술을 하기로 하고 김군은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후 전북대병원 의료진은 오후 6시1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전국의 종합병원 13곳에 김군을 수술할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거부당했다. "소아 수술 전문의가 없다" "미세 수술은 불가능하다" "중증 외상을 치료할 의사가 없다" "입원 환자가 많다" 등 거절 이유는 다양했다. 이들 병원 중에는 보건복지부가 전국에 권역별로 설치한 중증외상센터 6곳도 포함됐다. 교통사고·추락·총상 등으로 치명적인 외상을 입은 응급환자를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치료하도록 한 시설조차 김군을 외면했다.

익산에 있는 원광대병원은 전북대병원과 가장 가깝고 전북에서 유일하게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병원이지만 치료를 거부했다. 최두영 원광대병원장은 "지난해 12월 외상중증센터로 지정은 받았지만 전문 의료진 등 인적 인프라와 시설을 구축 중이고 소아정형외과도 없다"며 "환자 상태가 중증이고 고난도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인력과 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가는 게 낫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응급의료센터의 도움으로 아주대병원에서 김군을 받아주기로 했지만 이번엔 구급 헬기가 걸림돌이었다. 김군의 이송 임무는 이날 오후 9시58분 경기도 남양주의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특수구조대 소속 헬기가 맡았다. 아주대병원 담당의가 앞서 오후 8시53분에 헬기 요청을 한 지 1시간5분 만이었다.

중앙119구조본부 이동원 119구조상황실장은 "환자 상태와 헬기 이송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북대병원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상황이 급박했던지 1시간가량 통화가 안 됐다"고 말했다.

헬기는 전북소방본부가 오후 9시56분쯤 중앙119구조본부에 정식으로 헬기 요청을 한 뒤에야 남양주에서 오후 10시9분쯤 이륙했다. 이 헬기는 전북대병원에 오후 11시6분에야 도착했다.

전북소방본부에도 헬기가 1대 있었지만 야간 당직자가 1명인 데다 기장·부기장, 구급대원 2명까지 최소 인원 4명을 모으기 어렵다는 이유로 뜨지 않았다.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현재까지 소속 헬기가 야간(오후 6시~오전 9시)에 병원 이송 임무를 수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헬기가 김군과 담당 의사를 태우고 아주대병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11시59분이었다. 김군은 사고 발생 8시간 만인 지난 1일 오전 1시쯤 수술실에 들어갔지만 수술 중 세 차례 심정지를 일으키며 오전 4시43분쯤 숨을 거뒀다. 김군의 외할머니도 뒤늦게 전북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같은 날 오전 6시34분에 숨졌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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