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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만 10건이 넘는데…양딸 학대치사 아버지는 어떻게 입양이 가능했나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포천에서 부모에게 학대받다 숨진 뒤 시신 마저 훼손당한 A양(6)은 입양아였다. 입양기관이 아닌 친부모 등의 동의서를 받은 뒤 법원의 허가를 받는 개인간 합의 입양(민법에 근거한 입양)이었다.

A양의 친어머니 B씨(36)는 2010년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A양을 키웠다. 그는 일이 바쁘거나 늦게 귀가할 때마다 인근에 사는 주모(47)씨와 김모(30·여)씨 부부에게 아이를 맡겼다. 전업주부인 김씨는 아이를 무척 예뻐했다고 한다. "아이를 홀로 키우기 힘들다"고 고민하는 B씨에게 "내가 입양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10여 년간 동거하던 주씨와 김씨는 A양을 입양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했다. B씨와 전남편이 쓴 입양동의서와 소득증명서 등 양육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증빙서류도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의 허가를 거쳐 2014년 9월 A양은 주씨 부부의 호적에 올랐다. 당시 양아버지 주씨는 음주운전 등 도로교통법과 절도·폭력 등 경미한 10건 이상의 범죄 전과를 가지고 있었다. 부인 김씨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입건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전과는 A양을 입양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2년 뒤. A양은 "식탐이 많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테이프로 온몸이 묶여 17시간 동안 홀로 방치되는 학대를 당하다 숨졌다. 숨진 후에는 범죄 사실을 숨기려는 양부모에 의해 포천시의 한 야산에서 몰래 화장됐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주씨 부부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사진도 받았지만 아이가 혼란스러워 할까 염려돼 입양을 보낸 뒤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며 "'아이가 잘 지낸다'는 말을 믿었던 내가 바보같다"고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A양 사건 이후 개인간 합의 입양이 입양제도의 사각지대로 떠올랐다. 절차가 까다로운 시설 입양과 달리 큰 결격사유가 없는 한 친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입양이 가능한 데다 가정방문 등 사후 관리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입양기관에서 아이를 입양하려면 초기 상담은 물론 입양 신청 서류접수, 가정조사, 양부모 교육, 가정법원 친양자 소송 신청, 사후 관리 등 10단계를 거쳐야 한다. 가족관계증명서·혼인관계증명서 등은 물론 최종학력증명서, 범죄·수사기록증명서, 재산증빙서류 등 20여 가지 서류도 제출한다. 알코올중독 검사와 약물·마약 검사 등이 포함된 건강진단서도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 전력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아이를 입양한 후에도 1년에 4차례 사회복지사 등이 불시에 가정을 방문해 아동 상태 등을 점검한다. 이런 식으로 지난해 1057명의 아이들이 입양됐다.

반면 민법에 따른 개인간 입양의 절차는 형식적이다. 법원에 친부모의 입양동의서와 입양 가족의 인적증명서·소득증명서 등 서류를 제출하긴 하지만 시설 입양처럼 까다롭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인천가정법원 관계자는 "개인 간 입양의 경우 양부모의 경제력이나 아이와의 유대관계, 양육의지 등을 주요하게 본다"며 "범죄 경력 등을 조회하긴 하는데 담당 판사의 성향 등에 따라 경미한 전과에도 입양을 불허하기도 하고, 아동학대나 성범죄 등 큰 범죄가 아니면 허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 허가하는 개인간 입양은 입양특례법을 적용받지 못해 부모 교육은 물론 사회복지사 등 사후 관리도 없다. 대부분 입양 사실을 숨기려고 쉬쉬하면서 관련 통계도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개인간 입양도 입양특례법처럼 사전·사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A양처럼 3살 이상인 ‘연장아’ 입양은 보다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외선 한국입양가족상담센터 센터장은 "신생아와 달리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된 후에 입양되는 연장아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식탐 등 스트레스 증상을 보일 수 있다"며 "양부모들이 무작정 아이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강압적으로 나오면 학대사건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8월 대구에서 입양한 3살 딸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지게 한 50대 부부 사건과 미국으로 입양돼 양부모에게 살해된 3살 입양아 현수사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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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센터장은 "양쪽 부모가 친부모가 아닌 개인간 입양의 경우도 시설 입양처럼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고 교육도 한 뒤 입양 후에도 양부모들이 아이들을 잘 보육할 수 있도록 상담 등 지원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경찰은 아동학대치사와 사체손괴 혐의로 구속된 주씨와 김씨 등 3명 상대로 A양이 숨질 것을 알면서도 학대(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또 오는 7일 이들에 대한 현장검증을 진행한 뒤 다음주 쯤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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