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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호모 몰링쿠스’가 작은 몰로 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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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엑스 파르나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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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쇼핑몰 춘추전국시대’다. 2000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몰’이란 개념을 소개한 이후 용산 아이파크몰(2007) · 영등포 타임스퀘어(2010) 등 도심 속 대형 몰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지난달 문을 연 하남 스타필드는 축구장 70개 크기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내세워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몰링(malling·쇼핑과 다양한 문화 체험을 동시에 즐기는 소비 형태) 인구를 죄다 빨아들일 기세다. 이런 골리앗들의 싸움에 최근 다윗이 도전장을 냈다. 지난달 새단장한 삼성역 파르나스몰이다. 2014년 첫 개장 이후 바로 붙어있는 현대백화점 삼성점과 코엑스몰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고 나름 ‘트렌드 세터들의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아온 곳이다. 2차 오픈으로 공간을 넓혔다고는 하나 지하에다 상대적으로 좁은 면적(코엑스몰의 10분의 1 크기), 게다가 낮은 천정고까지. 쇼핑몰로선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뒷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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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 후 유럽형 골목길 같은 공간이 완성됐다. 골목길이 만나는 곳엔 작은 광장을 조성했다.

2014년 10월 파르나스몰이 처음 개장했을 때 ‘외국물 좀 마셨다’ 하는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호텔(그랜드 인터컨티넨털) 지하에 들어선 호텔이 하는 몰이라는 점이 흥미를 끄는 요소 중 하나였다. 입점 브랜드 역시 영국 패션브랜드 ‘올세인츠’나, ‘니코 앤드’ ‘코나야’같은 참신한 일본 브랜드가 많아 기존 몰과는 확실히 달랐다. 나이 지긋한 호텔 손님들이 주로 찾던 올드한 지하 아케이드 상가가 파르나스몰로 변신한 후 ‘삼성역 가로수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덕분에 임대수익은 몰로 리모델링하기 전보다 3배나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2년 후. 앞서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던 삼성역 입구에서 현대백화점 쪽으로 가는 일자(一字) 면적에다 이번에 신축한 파르나스타워(지상 40층) 지하로 연결된 부분까지 2975㎡(약 900평)가 더 넓어졌다. 드디어 총면적 1만5336㎡(약 2400평)의 ‘완전체’ 공간이 완성된 것이다. 요가복의 샤넬로 불리는 캐나다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 등 23개 업체가 새로 입점하면서 총 매장 수는 60여 개로 늘었다. 코엑스몰 방향으로 생겨난 좁다란 제2통로 양쪽으로는 ‘환공어묵베이커리’와 ‘조앤더주스’ 등 10개 식당·카페가 밀집해 있었다.

사실 이번 2차 오픈의 컨셉은 ‘위기 속의 혁신’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2014년 파르나스몰은 성공적으로 문을 열었지만 곧바로 코엑스몰이 재단장해 오픈했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반포 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 역에 ‘파미에스테이션’이 개장했다. 몰 경쟁이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대형 몰이 하루가 멀다하고 문을 여는 와중에 ‘몰’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할만큼 작고 아담한 공간이 과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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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스몰 기획과 오픈을 주도한 3인방. 오용택 과장, 조성인 팀장, 박창현 주임(왼쪽부터).

이런 의문을 안고 지난달말 파르나스몰을 찾아 파르나스몰팀 3인방을 만났다. 설계부터 완성까지 총 4년 이상 걸린 파르나스몰 프로젝트는 소유주인 (주)파르나스호텔과 일본의 대형 개발사 (주)모리빌딩의 합작품이다. 하지만 조성인 팀장(43), 오용택 과장(40), 박창현 주임(35)이 모리빌딩과 협력하며 실무작업을 했다. 오 과장과 박 주임은 2012년부터 파르나스몰 기획 및 오픈 준비와 운영을 주도해왔고, 조 팀장은 올 초 부임했다. 세 사람의 역할 및 답변에 중복이 많아 인터뷰는 이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종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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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매장마다 개성적인 인테리어에다 들고 나기 편한 개방형 구성을 해 ‘몰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 새단장한 삼성역 쪽 입구의 둥근 유리천정이 눈에 띈다. 덕분에 지하인데도 답답하지 않다.

“지하 느낌을 지우려 애썼다. 매장을 다닥다닥 붙여 눈 앞의 임대 수익을 높이기보다 사람들이 편안히 드나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유리 천정을 통한 자연 채광을 만끽하면서 걸어가다보면 벽면 우드톤 마감재가 자연친화적으로 다가온다. 천정 조명도 불규칙하게 배치해서 공간이 일률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했다. 더 넓어진 공간에서 고급스러운 유럽 골목 느낌을 주는 게 목적이었다.”

-솔직히 골목 콘셉트는 이젠 새롭지 않다. 실내 매장의 ‘오픈테라스’도 요즘 웬만한 몰과 백화점 식품관에서 볼 수 있다.

“2014년만 해도 우리가 ‘원조’ 격이었다. 코엑스몰이나 타임스퀘어·여의도IFC몰과 차별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쓰려 한 결과였다. 벽면에 일자로 붙는 아케이드형 매장이 아니라 블록을 여러 개 만들어 들쑥날쑥 매장을 배치하고 사이사이 골목을 만들었다. 이제는 파미에스테이션이나 아브뉴프랑(경기 광교) 등에서도 도입했지만, 우리가 설계를 시작한 시점(2012)만 해도 획기적이었다.”

(1988년 개관해 2005년 GS가 인수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서울은 2009년 파르나스호텔로 사명을 변경하고 지하 아케이드 리모델링 작업에 나섰다. 이웃한 5층짜리 호텔 그랜드 볼룸 건물을 허물고 파르나스타워를 짓는 것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역사(役事)였다. 이를 위해 2012년 대형복합시설 건축 경험이 많은 일본 개발·설계사와 손을 잡았다. 도쿄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오모테산도나 롯본기힐스 등을 설계한 모리빌딩이다. 모리빌딩의 카노 다카시 디자이너는 “파르나스몰뿐 아니라 코엑스몰, 나아가 삼성동 거리 등 인접 지역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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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르몰은 현대백화점과 코엑스몰 사이에 위치해 있다. 서로 경쟁하기보다 함께 삼성동 인근 상권을 키우는 관계다. 사진은 몰의 방향 표지.

-인접한 코엑스몰과는 직접적인 경쟁관계다. 다 같이 활성화할 수 있나.

“경쟁한다기보다 오히려 코엑스몰 안의 프리미엄 쇼핑몰이라고 할 수 있다. 2030 소비자 중에서도 특히 고급 트렌드를 추구하는 이들이 우리의 타깃이다. 그래서 ‘원 앤드 온리(one and only)’ 콘셉트로 국내에 처음 들여오거나 다른 몰에 입점이 안 된 브랜드 유치에 주력했다. ‘올세인츠’나 ‘곤트란 셰리’(베이커리) 같은 것들이다. 만약 이미 다른 몰에 있는 브랜드라면 인테리어와 상품을 차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전략이 코엑스 상권, 나아가 삼성동 일대 상권을 키울 수 있다고 봤다.”

-그런 차별화한 인테리어를 하기엔 규모도 작고 천정 역시 너무 낮다.

“맞다. 원래 몰로 계획된 부지가 아니라 그렇다. 대체로 몰 천정은 3.2~4m 높이인데 파르나스몰은 제일 낮은 층고는 2.8m이고 높은 곳도 3.5m에 불과하다. 이걸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천정을 다 뜯어내 내부 송풍관이 그대로 드러나보이게 했다. 이 노출 천정 군데군데에 대형 판넬을 덧대 높이를 들쑥날쑥하게 꾸몄다.”

(조명·바닥재 등은 인근 호텔 톤과 연결해 갈색·살구색 톤이다. 이는 코엑스몰의 ‘차가운 백색’과 대비돼 아늑한 분위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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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엔 수직 정원(버티컬 가든)을 조성해 힐링 분위기를 낸다.

-식음 매장 대부분이 오픈테라스·개방형이다.

“코엑스몰과 달리 파르나스 쪽 매장의 파사드(fasade·주출입구가 있는 정면부)가 제각각 개성적이다. 일률적으로 방화유리를 두르는 대신 각 매장에 방화셔터를 도입했기에 가능했다. 방화셔터는 평소엔 출입문 위로 올라가 있다가 화재시에 내려오는데 덕분에 오픈테라스같은 개방형 매장으로 꾸밀 수 있었다. 지나다니다가 부담없이 슥 들어갔다 나올 수 있게 하는, 말 그대로 몰링(malling)을 하는 데 초점을 뒀다. 식음 매장을 확 늘린 건 수요에 대한 대응이다. 파르나스타워 입주가 마무리되면 상주인구 5000명뿐 아니라 유발인구 1만5000명이나 된다. 점심·브런치 카페로 손님을 맞다가 저녁 땐 라운지 펍으로 변신하는 이태원의 손꼽히는 핫플레이스 ‘글로브’, 이태원의 중동 음식점 ‘허머스치킨’ 등이 대표 선수다. ‘환공어묵’과 ‘18번 완당’ 등은 첫날부터 점심 때 줄서서 먹는 곳이 됐다.”

-백화점도 맛집 유치에 열심이다. 특히 파르나스몰은 현대백화점과 붙어있는데 경쟁력이 있을까.

“물론 경쟁자가 없다면 더 좋았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우리만 가만 있는다면 있던 고객도 다 뺏길 판이었다. 대형몰과는 접근성 측면에서, 백화점과는 운영의 유연성 측면에서 비교우위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우리 몰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가 기본이지만 매장별로 탄력있게 운영한다. 커피빈은 오전 8시에 문 열어 모닝커피를 팔고, 글로브는 밤 12시까지 펍을 운영한다. 이렇게 각 매장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가져가는 게 아케이드나 백화점과 다른, 몰만의 장점이다.”

-유독 문화 이벤트가 많은 것 같다.

“몰은 더 이상 쇼핑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현대인에겐 집과 회사를 떠나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소비가 문화고, 문화가 그를 즐기는 사람의 정체성을 완성시켜준다. 그래서 비록 좁은 면적이지만 우리 몰 안에서 그런 걸 최대한 많이 경험할 수 있게 문화 기능을 많이 마련했다. 예컨대 테헤란로 출입구 쪽 녹지 정원인 ‘파르나스 가든’은 설계 과정에서 최대한 키웠을뿐만 아니라 구청에서 힘겹게 허가를 받아 개방형으로 꾸몄다. 여기에서 가죽 장인의 가죽공방도 열고, 시 낭송회같은 문화강좌도 한다. 몰 이용객을 대상으로 한 뮤지컬·전시회 연계 프로모션도 많이 한다. 코엑스몰을 포함해 유동인구가 많으니까 가능하다. 이렇게 우리가 구매력과 고급취향을 겸비한 젊은 소비층에 앵커(anchor) 역할을 하면서 현대백화점은 백화점대로, 코엑스몰은 코엑스몰대로 윈윈하며 전체 상권을 키워가는 게 장기 전략이다. 그렇게 결속된 소비자 공동체가 우리 몰의 버팀목이 될 거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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