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탈세' 보도 NYT 기자 "특종 건지려면 우편함 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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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을 확인하라"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세금 회피를 특종 보도한 뉴욕타임스(NYT) 메트로 수전 크레이그(Susanne Craig) 기자의 말이다. 그는 2일(현지시간) NYT 인터넷판에 취재 뒷이야기를 통해 특종을 낚게 된 과정을 공개했다.

수전은 트럼프가 1995년에 9억1600만 달러의 손실을 신고했고, 이때문에 18년간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 23일 수전은 자신의 우편함에서 판지로 된 봉투를 발견했다. 뉴욕시 소인이 찍혀 있고 트럼프 기업으로 되어있는 반송지 주소를 보는 순간 수전은 특종을 예감했다. 그는 일찍이 트럼프가 오랜 전통을 깨고 공개하길 거부한 세금 환급 건에 대해 추적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실제 세금 환급금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최종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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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세금 회피 특종을 보도한 수전 크레이그 뉴욕타임스 메트로 기자.

봉투 안에는 트럼프의 1995년 세금 기록이 있었다. 트럼프는 1995년에 사업상 큰 손실을 봤는데,그것 때문에 연방소득세를 거의 20년 가까이 내지 않았다. 곧바로 팀원들과 자료 분석을 시작했다. 한 가지 벽에 부딪혔다. 트럼프의 손실 금액 '915,729,293달러'의 기록 중 첫 두 자리와 다음의 일곱 자리 수의 줄이 일치하지 않았다. 문서 변조가 의심되는 대목이었다.

답을 준 것은 플로리다의 은퇴한 회계사 잭 밋닉이었다. 그는 트럼프의 세금 환급을 준비하고 서명한 사람이다. 줄이 맞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잭은 당시 사용했던 세금 소프트웨어에서 9자리 숫자의 손실을 입력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첫 두 자릿수를 타자기를 이용해 직접 입력했다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기록들은 진짜로 보인다고 확인해줬다.

수전은 8일간 취재 끝에 보도 준비를 마쳤다. 트럼프 캠프에 그 동안 취재한 내용에 대해 해명할 기회를 줬다. 그러나 트럼프 캠프의 대변인은 세금 기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확인해주지 않았다. 수전은 "(트럼프의 대변인은) 그저 우리가 기사를 발행하면 소송을 하겠다고 위협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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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온라인판으로 보도한 트럼프 후보의 세금 회피 특종 기사.

미국에선 타인의 세금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수전과 탐사팀은 처벌을 감수하고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토요일(1일) 밤 9시 10분. 수전의 기사가 NYT 홈페이지에 올라갔다. 수백만 명이 그의 기사를 읽었고, 이틀 만에 7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에 비해 6% 정도 뒤지고 있다.

수전은 '우편함을 확인하는 습관'이 특종을 건지게 된 이유라고 했다. 그는 "특히 이메일로 보낸 것들이 신원을 확인할 단서를 남긴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오늘날엔, '보통 우편'이 기자들과 익명으로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우편물을 '내가(기자가) 확인할 거라는 걸 믿게 하는' 신뢰가 그것이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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