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받은 손기정씨 "「금」또 받은 기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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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936년 베를린올림픽마라톤우승자 손기정(74)씨가 당시 그에게 우승기념부상으로 기증된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를 50년이 지난 17일 전달받았다.
서독 올림픽 위원회는 이날 서베를린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베를린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과거와 현재의 올림픽」이라는 모임을 갖는 자리에서 손씨에게 청동투구를 정식으로 넘겨주었다. 이 투구는 오는 9월 22일 아시안게임 개막에 맞춰 주한 서독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17일 상오10시 시작된 이날 모임에는 서독올림픽위원회의 「빌리·다우메」위원장, 「디프겐」베를린 시장, 당시의 금메달리스트들, 그리고 역대 올림픽의 서독메달리스트등 관계인사 5백여명이 참석했다.
「다우메」 위원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손기정 선수에게 당시 청동투구가 전해질 수 없었던 것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어떠한 부상도 주어져서는 안된다」는 IOC 규정 때문이었다』고 밝힌 뒤 『이 투구는 이미 서독 국가재산으로 귀속되었지만 손씨와 서독체육인들이 맺어온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이 투구를 넘겨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원전 6세기 중반 고대올림픽경기가 한창 꽃을 피웠던 그리스의 올림피아 지방에서 발굴된 것으로 알려진이 청동투구는 원형의 표면 전체에 푸른색의 녹이 슬어있기는 했으나 말끔한 모습으로 손질 돼 이날 모임에 공개됐다.
이 투구를 찾기위해 30여년간 노력해왔던 손씨는 전달식장에서 답사를 통해 『나는 오늘 또 하나의 금메달을 받은 감격에 젖어 있다. 그것은 2시간 남짓의 마라톤이 아니라 나의 평생이 겉린 장거리 경기였다. 그러나 나는 이 경기에서도 승리자가 되었다』며 목이멘 채 눈시울을 붉혔다.
투구전달식장에는 투구를 기증했던 그리스의 브라디니신문사를 대표한 「아타나시아다스」 정치부장을 비롯, 유럽각국의 언론매체들과 일본 NHK등 4개 TV방송, AP·AFP통신, 한국취재진등 1백여명의 보도진이 몰렸고 서베를린의 TV와 신문들이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베를린 스포츠연맹은 손씨 부부를 지난 13일부터 4일간 명예시민으로 예우, 그가 달렸던 마라톤 풀코스와 당시의 메인스타디움 등지를 돌아보도록 배려하는 한편 생존해있는 당시의 메달리스트들과도 50년만에 재회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한편 투구전달식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손씨는 『이제 남은일은 내 이름과 국적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베를린=홍성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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