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변호사 시바타씨 "왜 만화는 빌려서만 보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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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왕국이라는 일본도 요즘 만화가들이 '빌려보는 만화'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주 내한한 변호사 시바타 미키(33.사진)는 '21세기 만화작가의 저작권을 생각하는 모임'을 대신해 한국의 만화대여 실태를 조사하고 돌아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에서 만화를 제값에 사지 않고 보는 방법은 세 가지다. 신간을 막 읽은 독자로부터 사들여 정가의 50%에 되파는 '신고(新古)서점', 일정액의 입장료를 내면 구비된 만화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만화카페' 그리고 비디오 대여점들이 여분의 공간에 만화를 갖춰놓고 빌려주는 '렌털 코믹'이다. 이 중 렌털 코믹은 2년 전부터 급증하는 추세다.

"처음에는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만 인기가 없어서 판매부수가 줄어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기작가들끼리 이야기를 나눠보니 모두가 그런 걸 알게 됐죠."

일본의 만화 판매규모는 1995년 5천8백64억엔을 정점으로 2000년 5천2백33억엔까지 줄어들었다. 전반적인 경기불황의 영향도 있지만, '빌려보는 만화'가 늘어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만화가들은 2000년 사이토 다카오(고르고 13), 후지코 후지오(도라에몽), 지바 테쓰야(내일의 조), 마쓰모토 레이지(은하철도 999), 히로카네 겐지(시마과장) 등이 앞장서 모임을 결성하고 대응에 나섰다. 현재 회원은 6백50여명에 달한다.

일종의 헌책방인 신고서점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책이 어렵지만, 약 2천5백개의 만화카페는 이 중 4백여곳이 가입한 협회와 대여료 징수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렌털코믹에 대해서도 관련부처와 논의해 현재 일본 저작권법에서 음반.비디오에 대해 보장하고 있는 대여권을 만화에도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올 봄에는 주요 잡지에 독자호소문 형식의 광고를 싣기도 했다.

"한국은 '만화는 빌려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더군요. 그런 인식이 바뀌지 않고는 창작의 기반이 약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겁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야 재능있는 사람들 만화를 그리려 하지 않을테니까요." 한국만화는 본의 아니게 일본에 반면교사가 된 듯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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