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카라얀’ 이반 피셔 “연주 때 나와 BFO는 한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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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 명 지휘자 계보를 잇고 있는 이반 피셔. ‘동유럽의 카라얀’으로 불리는 거장이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스카웃 제의를 뒤로 하고 1983년 고국으로 돌아가 창설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와 함께 33년을 함께 해왔다. [사진 빈체로]

지난 3월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린 난민 초청 콘서트. 2200여 시리아 난민과 자원봉사자 청중 앞에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 다니엘 바렌보임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이반 피셔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등 베를린을 대표하는 세 오케스트라가 섰다. 헝가리 지휘자 이반 피셔(65·사진)의 연설이 단연 화제였다.

내달 10일 예술의 전당서 공연
단원은 가족…감정적으로 잘 통해
일체감과 우수한 기량이 우리 장점

“예전의 유럽으로 돌아가길 원합니까? 국가·종교간 대립하고 식민지가 존재하던 그 때로? 문을 열고 마음을 열어야 새로운 유럽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클래식계의 휴머니스트다운 발언이었다. 실제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1989년 부다페스트의 연주회에 당시 헝가리로 온 동독 난민 수백 명을 초대해 이들의 탈출을 간접적으로 돕는 등 음악을 통해 분쟁의 벽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서왔다.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가 한국에 온다. 10월 10일 예술의전당이다. 6년 만에 갖는 이들의 네 번째 내한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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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는 라이너·오먼디·셸·숄티·도라티·프리차이·케르테스 등 헝가리 출신 명 지휘자의 계보를 잇고 있다. 25세 때 런던 루퍼트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지휘 행보를 시작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로엘 콘세르트헤바우, 뉴욕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 세계 명문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약하다가 1983년 헝가리에 정착해 BFO를 창설했다. 피셔는 각 악단의 전통과 강점을 부드럽게 이끌어내는 섬세한 지휘로 명성을 떨쳤다.

피셔와 33년을 함께 해온 BFO는 2008년 그라모폰이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에서 9위에 랭크됐다. 창단 초기엔 음악축제에 참가하기 위한 비상설 악단이었다. 명칭에 ‘페스티벌’이 붙은 이유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 붕괴 후인 1992년부터 변모하기 시작했다. 피셔의 리더십과 함께 BOF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한 부다페스트 시 당국과 민간 기업들이 예산을 지원했다. 3회에 불과했던 연간 공연 횟수는 30회로 늘어났다. 해외 투어도 자주 한다. 철저한 연습을 통한 완벽에 가까운 연주가 특징이다. 단원을 향한 따뜻한 배려로 ‘직장인 아닌 아티스트’라는 자부심을 키운 결과다.

피셔는 2015년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 거장으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번 내한공연에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서곡,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들려준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명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가 협연자로 나선다. e메일 인터뷰에서 피셔는 “BFO는 가족 같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 잘 통한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런 관계가 다른 오케스트라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지휘할 때 투명하게 곡의 모습을 조형해 내는 것으로 정평 있다. 이 같은 사운드의 비결은.
“음악의 즐거움을 표현할 때 듣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하나의 집단으로 협력하여 연주하는 것과 음악에 완전히 몰두하는 단원들의 자세가 비결이다. 나와 악단은 단결해서 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하나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러한 일체감과 더불어 우수한 기량과 높은 음악적 수준이 BFO의 최대 강점이다.”
협연자 마리아 주앙 피르스는 어떤 연주가인가.
“타고난 음악가이며 뛰어난 인간미의 소유자다. 친절함과 따뜻한 이해심이 연주에서도 빛난다. 매번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겸손한 연주로 듣는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이 메인 레퍼토리다. 어떤 점을 기대하고 들으면 좋을까.
“잘 알려져 있는 3악장의 멜로디는 우울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춤곡의 형태로 연주되는 드보르자크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드보르자크는 리듬과 선율을 결합하곤 한다. 시적인 보헤미아의 영혼을 아주 잘 표현하는 부분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BFO와 최대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고 싶다. 새로운 오페라 페스티벌을 만드는 목표가 생겼다. 그 오페라 팀과 연주여행을 할 것이다. 한국에도 들르고 싶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