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험 여부가 성폭력 판단에 영향 준다"는 성폭력 재판부 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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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험 여부가 성폭력 판단에 영향을 준다."
지난 8월 서울서부지법 성폭력 전담재판부 소속 모 부장판사가 재판 도중 한 말이다.
이 부장판사는 또 "성경험이 있는 여성과 없는 여성은 성폭력 대응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도 했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법원의 판사가 되레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성의식이 담긴 발언을 법정에서 한 것이다.

이는 노회찬(창원 성산) 정의당 원내대표가 26일 공개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 범죄 재판 모니터링 결과의 일부다.

노 원내대표는 이날 여성민우회가 지난 4년간(2013년~2016년 8월) 총 221건의 성폭력 범죄 재판에 동행해 피해자 권리보호 상황을 모니터링한 보고서를 분석해 그릇된 성인식을 보여주는 판·검사 발언을 공개했다.

분석 결과 판·검사들이 법정이 왜곡된 성관념을 반영한 '망언'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준 경우가 다수 발견됐다.

한 판사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자 "피해자와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의도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다. 의사가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며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합의를 종용했다.

또 다른 검사는 "피해자 외에 피해가 있다고 한 다른 친구들은 외모가 예뻤나, 주로 외모가 예쁜 학생들을 만졌나"라고 질문하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그릇된 통념을 표현했다. 하지만 판사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또 다른 판사는 성폭력 재판장에서 "유부남인데 고객과 잠을 자면 어떡해요"라며 동의에 의한 성관계와 성폭력을 혼동하는 발언을 했다.

성폭력 범죄 특례법 규칙에 따라 피해자 인적사항을 비공개로 해야 하는데도 재판 도중 피해자 정보가 노출되는 경우도 여러 차례였다.

노 원내대표는 이런 발언들이 "피해자의 인격을 침해하고 여성의 성경험에 대한 왜곡된 성의식을 드러냄으로써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유발한다"며 "법원은 언어폭력을 한 판사를 징계하고 성폭력전담재판부 제도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소속 판사들이 성폭력 범죄 특수성을 이해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혜민 기자 park.hy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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