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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탄허 스님을 믿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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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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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심상치 않는 대북 발언을 들으며 탄허 스님의 예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비난 수위는 “북한 (김정은) 예측 불가”→“북한 동요”→“북 자멸”→“(김정은) 정신상태 통제 불능” 등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물론 근본 책임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있다. 올 들어 두 번이나 핵실험을 하고 20여 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극단적 모험주의이자 소영웅주의다. 하지만 박 대통령도 혹시 북한 붕괴설(說)을 믿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2015년 1월 5일 한 일간지에 ‘월악산 통일 예언’이란 글이 실렸다. 1975년 탄허 스님이 충북 제천에 들러 “월악산 영봉(靈峰) 위로 달이 뜨고, 이 달빛이 물에 비치고 나면 30년쯤 후에 여자 임금이 나타난다. 여자 임금이 나오고 3~4년 뒤 통일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당시에는 주변에 큰 호수가 없어 누구도 이 도참설을 믿지 않았지만, 83년 충주댐이 완공돼 월악산 달빛이 수면에 비치고 2013년에는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다”고 소개했다. 예언대로라면 통일은 올해 아니면 내년의 시간 문제라는 의미다.

 하지만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 붕괴설을 믿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북핵 해법은 시간을 두고 ‘이란식 모델’로 간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대북 선제 타격은 위험한 도박이다. 한국의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도입도 부작용이 크다.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여전히 대북제재라고 본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할지 모른다”며 손사래 치지만, 뒤집어 보면 중국이 아직 북한을 관리·통제할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대북제재는 “대화를 위한 제재”를 강조하는 미국과, “붕괴를 위한 제재 아니냐”는 중국의 의심이 어느 수준에서 조절될지가 문제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2010년이 변곡점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강경책에 미온적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의 핵시설은 유대인을 또 대학살하려는 음모”라 비난했다. 유대계 로비 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가 “우리의 목표는 첫째가 이란, 둘째도 이란 핵, 셋째가 이란 핵 저지”라고 선언하자 미 의회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유대계 주민이 5~9%인 뉴욕과 뉴저지주의 척 슈머·코리 부커·로버트 메넨데스(상원 외교위원장) 의원이 앞장서 ‘포괄적 이란 제재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제3국의 이란 석유 수입과 금융 거래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이 강제됐다.

 당시 한국 고위 관리들은 이란 석유 수입과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협상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친다. “희한하게 미 국무부·국방부·재무부의 핵심 인사는 유대계가 많았다. 특히 핵 비확산과 테러 분야는 예외 없이 유대계였다. 국무부의 로버트 아인혼 비확산·군축 차관보, 미 재무부의 스튜어트 레비와 코언 테러담당 차관보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측의 거친 압박에 마치 형틀에 앉아 고문받는 끔찍한 느낌이었다.” 이란 핵 문제는 2013년 협상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미 상원은 지난 2월 대북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세컨더리 보이콧을 의무화한 이란 제재법과 달리 제재 범위와 강도를 행정부의 판단에 맡겼다. 하지만 북핵이 미 본토를 위협하거나 미 유권자들의 불안을 부추기면 미 정부는 ‘이란식 모델’을 다시 꺼내들 게 분명하다. 북한의 광물 수출은 물론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까지 압박할지 모른다. 최근 적발된 훙샹(鴻祥)그룹 사건에도 그런 조짐이 어른거린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은 북핵을 억제할 가장 위력적인 무기다.

 북핵 공포는 북한에선 김정은을 말릴 사람이 없고, 남한에선 날아오는 핵탄두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모두 탄허 스님의 예언이 하루빨리 실현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하지만 올해나 내년은 무리한 기대이자 섣부른 믿음이다. 북핵은 미·중의 복잡한 계산과 의견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다. 좀 멀리 내다보며 호흡을 가라앉혔으면 한다. 요즘 북한의 ‘미치광이 전술’도 겁나지만 청와대의 거친 대북 발언에도 우리는 불안하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