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왕자 누레예프시대는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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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루돌프·누레예프」가 이끄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최근 38년만에 미국공연을 가졌다.
고전발레『백조의 호수』를 가지고 메트로폴리턴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나선 이 발레단은 안목높은 美무용애호가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1948년이래 처음으로 미국관객들과 만난 이 발레단은 한때 금세기 최고의 남성무용수로 군림했던「누레예프」를 정점으로 프랑스 특유의 테크닉과 무용언어를 지닌 발레단이다.『프랑스 뉴욕에 인사하다』란 부제아래 마련된 이 단체의 공연은 뉴욕과 워싱턴지역의 발레애호가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예술감독「누레예프」의 안무로 무대에 올려진『백조의호수』는 무겁고 비음악적인 손놀림과 무의미한 장식성의 과잉 표출로 단순미가 백미로 꼽히는 이 작품의 장점을 반감시키고 말았다는게 평론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마술사「로트바로트」로 직접 무대에 나선「누레예프」는 48세라는 그의 나이가 말해주듯 무용수로는 한물갔음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빠르고 힘센 회전, 우아한기교, 천천히 뗘오르는 듯한 높이뛰기등이 일품으로 꼽혔던 전성기 시절의 강인한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고 스텝을 밟을 때마다 비틀거리거나 뒤뚱거리기 일쑤여서 보는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교만한 왕자에서부터 우스개역 이발사에 이르기까지 천의 얼굴을 지녔던「누레예프」의 흔들리는 모습이 흐르는 세월 앞에는 어느 누구도 어쩔수 없음을 보여주어 쓸쓸한 감회를 자아냈다. <타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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