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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성능의 5000만원짜리 어른용 장난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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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18면

[사진 한국지엠]

▲스포츠카의 감성을 담은 카마로SS 계기판. ▶ 실내는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간접 조명으로 장식했다.

젊어서 타자니 돈이 없고, 경제력 갖추고 나니 체력이 안 따라주고. 자동차 매니어 사이에 회자되는 이른바 ‘스포츠카의 역설’이다. 이같은 고민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줄 스포츠카가 국내 시장에 나왔다. 바로 쉐보레 카마로SS다. 가격은 5098만원으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성능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SS는 카마로의 고성능 버전에 붙는 기호다.


카마로SS는 V8 6162㏄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품고 최고출력 453마력, 최대토크 62.9㎏·m를 뿜는다. 국산 어떤 차종도 출력으론 대적할 상대가 없다. 그나마 제네시스 EQ900 5.0 가솔린이 425마력으로 가장 근접했는데, 가격이 1억1490만원으로 두 배 이상이다. 비슷한 출력의 수입차로 시선을 돌려도 마찬가지. 포드 머스탱 빼면 죄다 가격이 곱빼기다.


지금의 카마로는 6세대다. 5세대 카마로는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범블비’로 나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 결과 왕년을 추억하는, 시쳇말로 ‘아재(아저씨)들의 로망’에서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드림카로 거듭났다. 만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5세대 카마로를 그린 디자이너는 이상엽. 이번 6세대의 외모 또한 한국인 디자이너 이화섭의 솜씨다.

카마로SS는 450마력 6L 엔진을 탑재해 제로백이 4초에 불과하다.

6년간 판매량 288대, 신형은 예약만 700대한국지엠은 올 6월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쉐보레 카마로SS를 국내 시장에 처음 공개했다. 고성능 버전 한 모델로만 출시한 데다 가격마저 ‘착해서’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이달 공식 판매에 들어가기 전 사전 계약만 700대를 넘어섰다. 이전 세대 카마로가 2011년 2월 출시된 이후 올 6월까지 6년여 동안 288대 팔린 점을 감안하면 실로 극적인 변화다.


실물로 처음 만난 카마로SS는 존재감이 굉장했다. 차체는 예상보다 훨씬 납작하고 기대보다 한층 넓적했다. 카마로SS는 큰 심장을 펄떡이느라 엄청난 팬 소음을 냈고, 사방으로 아지랑이를 피웠다. 의외로 가볍고 경박스런 소리를 내며 여닫히는 도어 너머로,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간접 조명으로 가득 찬 실내가 펼쳐졌다.


운전석에 앉으니 서늘한 긴장이 밀려든다. 시야가 절망적일 정도로 빠듯해서다. 쉐보레는 카마로의 유리창 면적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과장 좀 섞어 얇은 띠 같다. 그래서 맨 얼굴로 타도 눈 구멍만 난 헬멧을 쓴 듯한 기분이 든다. 유리창이 작으니 도어가 담벼락처럼 높다. 때문에 활짝 연 윈도 너머로 팔꿈치 느슨히 걸치고 운전하는 허세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카마로SS의 운전석에서 에둘러 본 풍경은 뭐든 큼직큼직하다. 스티어링 휠은 물론 대시보드의 디스플레이마저 엑스라지(XL) 사이즈다. 디지털 방식의 계기판을 보면 이 차가 겨냥한 고객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정보창엔 코너에서 차체가 얼마나 쏠리는지 가늠할 횡가속도, 정지 상태에서 시속 200㎞까지 가속했다 다시 멈출 때까지 시간 재는 타이머까지 챙겼다. 한 마디로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어른들의 장난감’이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빵빵하다. 서체가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한글화도 완벽하다. 센터페시아의 정보창은 3D 내비게이션은 물론 아이폰의 일부 기능을 고스란히 재현한 애플 카플레이도 띄운다. 아이폰의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를 이용해 문자메시지를 말로 보낼 수 있다. 앞 좌석은 미국차답게 큼직하고, 스포차카답지 않게 아늑하다. 뒷 좌석도 갖췄다. 그런데 성인이 앉기엔 민망할 만큼 좁다. 수납공간도 야박하다. 스마트폰 하나 편안히 놔둘 곳을 찾기 어렵다. 쉐보레 카마로SS의 실내 디자인은 그 의도가 뚜렷하다. 시종일관 첨단 스포츠카 탄다는 자긍심을 심어준다. 같은 이유로 오로지 달리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번 신형 카마로의 밑바탕은 GM의 알파 플랫폼이다. 같은 집안의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 ATS·CTS와 나눠 쓴다. 그러나 쉐보레에 따르면 전체 부품의 70%가 카마로 전용일 만큼 남다른 공을 들였다. 쉐보레의 대중적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카마로의 상징성 때문이다. 운전 감각은 미국식 대배기량 스포츠카(머슬카) 특유의 느낌이 도드라진다. 선이 굵고 통이 크다.


선 굵고 통 큰 미국식 머슬카 특징 그대로카마로SS로 퇴근길 러시아워의 정체를 뚫고 서울 도심을 어슬렁어슬렁 빠져나가는 길은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개운치 않다. 고래 등에 올라타 개울을 헤집는 기분이다. 카마로에 어울릴 환경은 아니었다. 다음날 강원도 인제군에 자리한 인제스피디움을 찾았다. 중앙선과 신호등·제한속도가 없어 카마로SS의 매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운전석에 앉아 잔뜩 짓눌린 직사각형 유리창 너머 풍경을 바라봤다. 폭풍 전야의 긴장이 온 몸으로 스몄다. 이만한 덩치와 무게의 스포츠카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이 4초에 불과한 화끈한 성능과 만났을 때의 결말은 기대 이상으로 드라마틱했다. 굽이진 트랙이 곧게 펴질 때마다 카마로SS는 우렁찬 포효와 함께 무서운 뒷심으로 달려 나갔다.


호쾌하고 호방한 가속에 가슴 속까지 후련해졌다. 사실 제원만으로도 맹렬한 가속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런데 몸놀림은 미처 예상 못한 반전이었다. 뻣뻣했던 예전 카마로와 완전히 달라졌다. 방향 전환이 예리하면서 빠릿빠릿했고, 무게중심 옮기는 과정은 산뜻하고 매끈했다. 카마로SS는 포르쉐처럼 운전자를 홀리는 기교까진 없다. 하지만 꿋꿋하고 치열하게 물리력과 싸우고 버텼다. 그 결과 카마로SS는 인제스피디움의 20개 코너에서 내가 의도한 궤적을 80% 이상의 확률로 따라 밟았다. 직선로 가속 땐 트랙의 길이를 싹둑 자르는 착각에 빠졌고, 코너에선 기울기를 평평히 다지고 곡률을 반듯이 펴는 듯한 희열을 안겨줬다. 이날 난 우월하고 압도적인 카마로SS와 완전히 하나가 됐다.


쉐보레 카마로SS와 함께 한 하루는 축제와 같았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훌훌 벗어던지고 가슴 뿌듯한 성취감에 젖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현재 국내에서 50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자동차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카마로SS처럼 안팎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특별한 매력으로 반짝이는 차는 흔치 않다. 물론 강렬한 성능만큼, 먹성 또한 대단하다. 실용적인 연비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김기범 객원기자·로드테스트 편집장ceo@roadte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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