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에「제2정화」바람|소장승려 2백21명「불국정토승가회」창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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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불교계의 전근대적 봉건폐습과 일재잔재, 신종악습등을 청산하려는「제2불교정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화를 외치고 나온 세력은 불교 조계종 승단 일각의 20대 청년승려들과 30대후반 소장승려들.
조계종 청년승려 2백21명은 최근 광주 문빈정사에서「불국정토구현 전국승가회」를 창립하고 역사현실속에 왜곡돼온 불교의 모습을 철저히 비판하면서 이웃과 함께 하는 중생구제의 새로운 불교신앙 지평을 제시했다.
불국정토구현 승가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1천6백년전 전래된 한국불교는 조선조의 억불정책으로 은둔·산중·기복·치마불교로 전락했으며 개화의 격랑속에 편입되면서 자생적 회복가능성을 상실한채 일제에 의해 불교의 민족적·대중적 특성을 제거당했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분열과 종권다툼의 악습을 되풀이 해왔다』고 개탄했다.
선언문은 또『이제 불자들은 새롭게 다듬어진 불법과 보살정신·역사의식으로 민족의 자주화와 민주화 전열에 앞장서자』고 호소했다.
불국정토구현 전국승가회 회원은 지난번 민주화 시국선언과 민중불교연합에 참여한 동국대 불교대 재학 일부 승려와 선방·강원의 젊은 학인승려 일부가 주축을 이루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시급히 청산해야할 봉건, 일제잔재 및 폐습으로 ▲호사한 외형치레의 장식불교 ▲권력과의 결탁 ▲부유층 신도에의 기생 ▲미신적 기복신앙 ▲사찰의 사유재산화 ▲주지자리 다툼 ▲주지전횡의 본말사제도등을 지적했다.
실천적 개혁방법으론 도피적 내세관이나 비역사적 인간관을 지속케하는 사회구조적 모순의 제거와 한국불교의 민주적 전통인 사자상승(스승이 제자승려에게 법과 자리를 물려줌)의 주지 선출방식, 일제사찰령(1911년)에 의해 파괴된 산중공사의 공의제도(사찰대중들의 의사를 수렴하는 제도)의 부활등을 제시했다.
이같은 주장은「전국승가회」의 20대 승려들이 주도하고 있으나 또다른 주류인 30대소장측은 아직 구체적 조직이나 선언적 행동을 보이고있진 않은채 정화의 필요성만을 절감,「뜻」을 모으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점진적 개혁을 겨냥하는 30대 소장승려들의 정화촛점은 선수행 풍토와 종단제도의 혁신-.
종헌에 분명한 선종종지를 표방했고 신라말·고려초 구산선문의 개산이래 도도히 흘러온 한국불교의 선맥을 계승한 조계종은 전래당시 받아들인 육조 혜능과 마조도일의 중국조사선 수행 가풍을 재건, 관념적 허식을 부정하고 형식주의를 배격하며 현실적 세계관·혁명적 개혁의지·근로정신·신앙실천·서민-지방을 지향하는 본래적인 생활선을 중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두갈래의 정화열망 세력은 각각「급진」과「온건」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으나 오늘의 한국불교 현주소를 절망적으로 보면서 절규어린 실천적 비판을 가하고있는 점에선 맥락을 같이한다.
50년대 대처승 정화에 이은 제2의 불교정화를 추진하려는 승단 일각의 갈망은 아직 그 성패여부가 미지수이지만 자못 주목을 모으는 불교계 안팎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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