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기업 출신 스타트업 경영자·직원 10人에게 듣다] 간판만 번듯한 명함이 뭣이 중헌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넌 너무 느리고 날 바보로 만들어’ ‘내게 큰 기쁨을 주지도 않잖아’. 대기업 출신의 스타트업 경영자·직원 10명이 말하는 대기업과의 ‘결별의 이유’다. 본지는 8월 22일부터 일주일 동안 e메일로 또는 직접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느린 의사결정 답답해 퇴사 … 창업 결심하고도 두려움에 1년 간 사표 보류

왜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뒀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8명이 ‘사업 진행과 의사결정이 느려서’라고 답했다(복수응답). 다음으로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어서’라고 답한 응답자가 3명이었다. 그 외에 ‘재미가 없어(져)서’ ‘불필요한 업무와 경쟁에 에너지를 쏟기 싫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서’ 등의 이유도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기존 대기업 근무에서도 나름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밀려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능동적으로 퇴사를 결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퇴사 후 쉬지 않고 곧바로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 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사를 후회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명이었다.

이들 역시 현재는 지금의 일에 만족한다는 답을 덧붙였다. 날아간 고액 연봉과 높은 신용등급도 이들에게는 약간의 불편함에 불과했다. 다만 부모님과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응답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대기업에서 퇴사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내가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자가 사용할 때(4명·복수응답)’였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느낄 때’(3명) ‘내가 성장한 것이 보일 때’(3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는 ‘기쁨’ ‘만족’ ‘행복’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스타트업에 뛰어든다고 마냥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고통’ ‘좌절’ ‘스트레스’ ‘책임’같은 단어들을 사용해 스타트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솔직하게 밝혔다. 스타트업 역시 이윤을 추구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회사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세간에 알려진 자유로움과 가족 같은 분위기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이들은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스타트업 창업을 꿈꾼다면 접는 것이 좋다고 단언했다. 퇴사 후 가장 도움이 되는 대기업 경험으로는 소통 능력, 비즈니스 매너, 업무 조율 능력 등을 꼽았다. 대기업을 고객으로 둔 스타트업들은 고객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이들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신혜성(37) 와디즈 대표 | 전) 산업은행 - 야생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기사 이미지

사진:오상민 기자

1. “이제 이직 안 할 거지?” 현대자동차·동부증권을 거쳐 산업은행에 자리잡았을 때 모두 물었다. “그렇다”라고 했고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신입 행원으로 입사해 과장이 될 때까지 ‘회사가 뭘까’라는 고민이 사라지지 않았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를 떠올린 걸 보면 원래 성향이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조직에 기대서가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로 ‘야생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유수의 인재들이 회사가 정해주는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는 것이 안타까웠다. 능력과 적성을 키우기보다 인기 부서에 들어가려고 경쟁하는 동료들을 보며 비본질적인 것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 없겠다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

2. 창업 3년 차에 정말 힘들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다만 주말에 아이들과 외식하는 직장인들을 보며 가족에게 많이 미안했다.

3. 의사 결정권 없이 조직의 논리로만 얘기하는 대기업 실무자들을 만나면 퇴사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 남았으면 나 역시 비슷한 삶을 살았을 거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4. 취업이 안 돼서,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사장’을 꿈꾼다면 접어라.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최소한의 가능성을 입증할 시제품을 만들어 투자자를 설득해 지속적으로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창업가의 삶이다. 그렇게 해도 언제나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다.

5. 사소한 비즈니스 매너부터 수준 높은 격식까지 고객을 대하는 법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가 성장 국면에 들어서면 업무에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고 일을 체계화할 때 큰 조직에서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된다. 물론 과거에 쌓은 인적 네트워크도 중요한 자산이다.

6. 현대자동차·동부증권·산업은행 근무, 산업은행에서 기업금융 담당, 2010년부터 창업 준비해 2012년 퇴사하고 크라우드 펀딩 업체 와디즈 창업.

김진용(34) 푸른밤 대표 | 전) 삼성전자 - 사업하며 산을 넘을 때마다 희열


기사 이미지

사진:푸른밤 제공

1. 인생의 최우선 가치가 ‘재미’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며 직장생활에 나름 최선을 다했다. 신사업을 개발하는 태스크포스(TF)팀에서 일해 보통 그 연차에서 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할 기회도 많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할 만큼 재미있게 했다. 하지만 입사 3년 차가 되자 업무량이 늘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쳤다. 사내 벤처 같았던 TF팀이 정식부서로 바뀌면서 자유로웠던 부분이 정형화되는 과정에서 재미를 잃었다.

2. 퇴직 후 막상 창업을 하고 보니 아이템은 생각처럼 굴러가지 않고 시간은 흐르고 초기 자본도 떨어져 직장인의 장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기업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을 사소한 일도 직접 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표 낸 걸 후회했다. 이런 문화적 충격(?)을 받아들이느라 고생을 좀 했다.

3. 첫 유료 고객이 생겼을 때 환희를 느꼈다. 사업을 하면서 넘어야 하는 산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을 느낀다.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 일은 훨씬 힘들다. 하지만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힘든지 모르고 일한다.

4. ‘회사는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시간=돈’인데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고객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매일 야근을 했고 그 과정에서 팀원들의 이탈을 수도 없이 겪었다. 창업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다.

5. 대기업에서 사업전략을 수립하거나 조직을 체계화하고 운영하는 ‘큰 그림’을 배웠다면 창업 후 직접 회사를 이끌면서 사소한 업무까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6. 삼성전자 근무, 퇴사 후 바로 첫 창업해 3개 회사 창업, 2015년 출퇴근 기록 서비스 ‘알밤’을 개발한 ‘푸른밤’ 창업.

이정수(34) 플리토 대표 | 전) SK텔레콤 - 지금도 나약해질까 마음 다잡는다


기사 이미지

사진:중앙포토

1. SK텔레콤 사내 벤처에서 ‘집단 지성 번역 시스템’을 개발했다. 외국에서 자랐고 대학생 때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역 시스템 개발에 원래 관심이 많았다. 2010년에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계획한 사업을 빨리 진행하고 싶었지만 대기업 안에서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조직원으로서 해야 할 업무도 있었기 때문에 한 곳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싶어 사내 벤처 팀과 함께 퇴사를 결심했다.

2. 퇴사를 후회할 것 같아 휴대전화를 정지하고 곧바로 영국에 갔다. 솔직히 고액 연봉을 포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동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다. 영국에서 벤처지원단체인 테크크런치의 인큐베이팅 팀에 선정돼 번역 시스템 업체를 창업하고 4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후 귀국했다. 영국에서 하루 두 끼를 샌드위치만 먹으면서 고생했지만 아직 후회한 적은 없다. 그래도 마음이 나약해질까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일절 보지 않는다.

3.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없던 서비스 만드는 일’을 한 것에 만족을 느낀다.

4. 창업도 하기 전에 명함을 만들고 옷을 차려 입고 스타트업 파티를 찾아 다니는 ‘대표 놀이’에 빠진 창업가들이 있다. 화려한 결과를 꿈꾸기보다 과정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5. 준비된 창업을 할 수 있었다. 창업 전 꼭 기업에 근무해볼 것을 권한다. 어떤 기업이냐가 중요하다. 자기 계발 시간이 부족한 회사에서는 창업에 대한 꿈을 꾸는 것조차 어렵다. 복지가 너무 좋은 회사는 거기에 안주해 창업 의지가 약해질 수도 있다. 창업 초기에 경험이 부족하면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가령 휴가는 어떻게 줄 것인지, 각종 서류는 어떻게 작성할 것인지, 지분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을 회사에 다니는 동안 습득해야 한다.

6. SK텔레콤에 입사 전 창업,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좋은 환경일 것 같아 SK텔레콤에 입사, 2012년 퇴사 후 집단지성 번역 서비스 업체 ‘플리토’ 창업.

전호상(35) 잡플래닛 시니어 개발자 | 전) 삼성SDS·KT - 은행 대출 받을 때 퇴사 실감나더라


기사 이미지

사진:전호상 제공

1.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오래 전부터 큰 조직보다 작은 조직에 맞는다고 생각했고 원하는 회사를 만나 이직을 결심했다. KT에서는 전체 조직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느렸다. 더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막연히 내가 가진 기술로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숨은 기업을 발굴하고 구직자와 기업 간 정보 불균형을 해소해주는 일에 초기부터 동참하고 싶어 잡플래닛을 선택했다.

2. 아직까지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다만 얼마 전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회사의 크기가 내 금융 신뢰도를 좌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회사를 더 키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3. 상대평가식 인사고과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낄 때 내 선택에 가장 만족한다. 상대평가 문화가 자리 잡으면 회사의 발전보다 개인의 평가에 집중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불만으로 이어진다. 기업을 망치는 병폐 중 하나다.

4. 스타트업도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가족 같은 분위기, 수평적 문화, 자유로운 출퇴근 등은 개인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게 해주는 장치일 뿐 스타트업이라서 누리는 특권이 아니다. 스타트업에서 회사와 직원은 ‘성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맺어진 철저한 동맹(alliance)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사람을 볼 때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에서 모두 일해 봤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라는 편견을 갖지 않는다.

6. 삼성SDS에서 5년 동안 신사업 담당, KT에서 2년 동안 신사업 담당, 2014년 11월 퇴사하고 기업정보 업체 ‘잡플래닛’ 입사.

곽재희(31) 사운드오브트립 대표 | 전) 롯데카드 - 대기업 임원은 원하는 미래상 아니었다


기사 이미지

사진:사운드 오브 트릭 제공

1. ‘역전의 기회’를 찾고 싶었다. 기업 임원들을 봤을 때 성공한 분들이지만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직접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가치 있지만 성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 성취감이 크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도 상사가 시켜서 하는 경우가 많아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았다.

2. 후회한 적 없다.

3. 아직 잘했다고 느낄 만큼 회사가 궤도에 오르지 못했지만 언제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잘한 선택이라 믿는다. 대기업에 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접하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4.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큰 기대에 부풀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실패를 겪는다.

5. 회사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배웠다. 대기업 고객이 많아 큰 도움이 된다.

6. 롯데카드 국제 파트 담당에서 1년 3개월 근무, 2012년 4월 퇴사해 지인이 경영하는 스타트업에서 1년 3개월 근무, 2013년 7월 중국 마케팅 기획사 사운드오브트립 창업, 2014년 집밥 공유 플랫폼 모델로 정주영창업경진대회 대상 수상.

정현호(30) 드라마앤컴퍼니 이사 | 전) 씨티은행 - 매일 한계 느끼지만 성장통이라고 생각


기사 이미지

사진:정현호 제공

1. 세 가지 이유다. 우선 은행산업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고 봤다. 커리어를 어떻게 발전시킬까 고민하던 차에 평소 알고 지내던 최재호 드마라앤컴퍼니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큰 비전을 바라보고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결정적 계기는 주변 환경의 변화였다. 당시 좋은 사람들과 나름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었다. 막 성과를 내기 시작할 시점이었는데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거다. 주변에서는 ‘핵심 부서다’ ‘초고속 승진의 지름길이다’라며 부러워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가정을 막 꾸려 아이가 어린 상황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젊기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 ‘왜 이곳으로 옮겼을까’ 후회한 적은 없다. 아마 그랬다면 다시 이직했을 거다. 물론 힘든 점이 많다. 몰라도 물어볼 곳이 제한적이고 대기업보다 업무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 내 분야가 아니라도 다양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 내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회사와 내가 함께 도약하는 ‘성장통’을 겪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어떤 일을 하는지 부모님에게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

3. 스스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구나 느낄 때. 이전에는 전혀 몰랐거나 남의 일처럼 여기던 회계·세무·법무 지식도 직접 부딪치며 배우고 있다. 리더십에 대한 고민도 치열하게 하고 있다. 은행에서 언제 퇴근하나 기다렸던 것과 다르게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한 주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

4. 스타트업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자유로운 문화를 자주 꼽는다. 상사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업무 환경을 상상하는 것 같다. 스타트업은 모든 자원이 부족하다.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고 생존을 위해 항상 치열하게 생활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맞다.

5. 은행에서 일할 때 다양한 기업과 산업을 분석해 심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드라마앤컴퍼니의 서비스가 비즈니스맨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산업군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6. 씨티은행에서 2년 반 동안 기업금융 담당, 2014년 4월 명함 정리 앱 ‘리멤버’를 개발한 ‘드라마앤컴퍼니’ 입사.

배수현(37) 네오펙트 차장 | 전) LG전자 - 입사 10년에 행복하게 사는 법 고민


기사 이미지

사진:네오팩트 제공

1. 제품 매니저에서 신사업 기획부로 옮겨 아주 신이 나 있었다. 회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막상 일을 해보니 회사 덩치가 큰 만큼 추진 속도가 너무 느렸다. 의사결정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맞추려면 조직이 더 작아야겠구나 싶었다. 더 나이 들면 안정만 추구하게 될 것 같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퇴사했다. 마침 입사 만 10년째라 안식년을 갖자는 생각으로 퇴직금을 받아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했다.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며 인생에 참 여러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항에서 만난 한 화가는 파트 타임 일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살았다. ‘삶이 불안정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나머지는 그때 상황에 맞게 정한다고 했다.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사는 법을 고민하게 됐다. 인생 모드가 ‘진지’에서 ‘재미’로 바뀌었다.

2. 스타트업에서는 늘 일손이 부족해 문제 의식을 느끼는 사람에게 일이 몰린다. 눈높이는 대기업에 맞춰져 있는데 사람이 부족하니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포기하고 욕심을 조절하기까지 고생을 했다. 이직 후에도 밤낮없이 일하느라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또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어떤 회사인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 무엇보다 대기업 다니는 딸이라고 자랑스러워하시던 부모님이 많이 속상해해서 힘들었다.

3.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맛이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다. 체계가 없긴 하지만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어 성취감이 높다. 대기업과 다르게 직급과 연차에 관계없이 반대 의견과 질문을 자유롭게 내는 분위기라 서로 많이 배운다.

4. 스타트업에도 ‘사내 정치’가 있을까? ‘인간관계에 더 이상 치이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으로 스타트업에 오면 치열한 관계에 놀랄 거다. 스타트업은 사람으로 돌아가는 회사다. 한 명 한 명의 권한이 큰 만큼 팀워크가 중요하다. 수없이 싸우고 화해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간다. 서로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돌려 얘기하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5. 업무 조율을 할 때 대기업에서 배운 체계적인 시스템이 도움이 된다. 큰 조직에서 익힌 소통 능력도 유용하게 쓰인다.

6. LG전자 근무, 2014년 퇴사하고 이듬해 인디밴드 공연 플랫폼 업체 창업, 2016년 ‘네오펙트’ 입사.


정수덕(33) 눔코리아 총괄이사 | 전) 삼성전자 - 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당장 실행하죠


기사 이미지

사진: 눔코리아 제공

1. 새로운 기술이나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서비스를 경험하고 싶었다. 삼성전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기획 후 시장에서 제품을 테스트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급변하는 하이테크에 맞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2. 후회는 없다. 굳이 말한다면 연봉을 비교했을 때.

3. 회사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예전에는 회사의 한 부분에 집중했다면 이제 더 복합적으로 고민하게 됐다. 또 해보고 싶은 게 있을 때 훨씬 빠르게 시도해볼 수 있다. 대기업에서는 서비스의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4.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스타트업도 회사다. 규칙과 규율이 있고 자유만큼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정말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5. 깔끔한 보고서와 세련된 소통 기술이 도움 된다. 또 대기업과 협업할 때 그들의 상황을 이해해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

6. 삼성전자 신사업 개발 담당으로 4년 정도 근무, 2013년 10월 퇴사해 ‘눔코리아’ 입사.

이혜민(33) 핀다 대표 | 전) STX지주 - 내 손으로 회사 만들며 ‘살아있다’ 느껴


기사 이미지

사진:이혜민 제공

1. STX지주에서 신규 사업 발굴 업무를 했다. 규모가 워낙 커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여도가 낮은 것 같았다. 또 회사 전체에서 가장 높은 여성 직급이 과장인 것을 보고 미래의 ‘유리 천장’이 느껴져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 대리로 승진 후 본격적으로 경영대학원(MBA)·이직·창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지인들이 스타트업을 창업해 일을 도와줄 기회가 생겼다. 그때 내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가치를 알아가면서 ‘일하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창업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워 바로 퇴사하지 않고 1년 동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여성으로서 한계, 대기업 의사결정 과정, 미래 비전 등을 생각해 사표를 냈다.

2. 두 번째 창업(유아용품 쇼핑몰 베베앤코)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원들 월급을 두 달 늦게 주는 일이 생겼다. 창업가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꿈을 안고 들어온 팀원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개인적으로도 이미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은 터라 대기업 퇴사를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회사를 나가지 않았고 나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그 후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후회한 적 없다.

3. 솔직히 매일 잘했다 싶다. 퇴사는 나를 돌아보고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대기업에 계속 다녔다면 평생 몰랐을 거다. 한국에서 자란 우리가 언제 자신에 대해 ‘왜?’라고 물어보겠는가. 이제는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안다. 또 핀다 서비스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거나 인생을 걸고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사람들을 볼 때 정말 그만두길 잘했다 싶다.

4. 창업은 ‘쿨’하지 않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스타트업은 제한된 자원으로 수많은 고뇌와 노력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진다.

5. 대기업 경영진이 의사결정을 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배웠다. 하지만 불필요한 절차와 형식이 많았다. 꼼꼼하게 내용을 보되 과정은 과감히 생략해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6. STX지주 근무하다 4년 8개월 만에 퇴사, 곧바로 화장품 정기배송 쇼핑몰 글로시박스 창업을 시작으로 베베앤코와 모바일 건강관리 업체 눔코리아 창업, 2015년 금융상품 비교 업체 핀다 창업.

신인식(31) 데일리호텔 대표 | 전) 삼성SDS - 모바일 패러다임 놓칠까봐 회사 떠나


기사 이미지

사진:데일리 호텔 제공

1. 좋은 기업을 만드는 일은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다. 대기업에 다녀 보니 이미 완성된 조직이라 그곳에서의 경험이 창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기회는 항상 패러다임이 바뀔 때 생기지 않나. 2011년에 모바일 환경이 급변하는 것을 보고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2. 후회한 적은 없다.

3. 좋은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한 단계씩 이뤄 나가고 있다. 매 순간 잘 그만뒀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기회를 놓쳐 창업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4. 스타트업에서는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흔히 얘기하는데 초기 아이디어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많이 바뀐다. 아이디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누구와 창업할지를 더 고민하는 것이 낫다.

5. 대기업도 창업의 시기가 있었다. 아이가 어른을 바라보듯 데일리호텔 역시 언젠가 대기업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떤 회사로 성장할지 고민할 때 대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을 참고한다.

6. 2011년 삼성SDS 전산팀 입사, 2012년 퇴사 후 여행서비스 스타트업 창업해 실패, 2013년 당일 숙박 예약 앱 ‘데일리호텔’ 창업.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기사 이미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