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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리콜과 글로벌 리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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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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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리콜은 불가피한 조치다. 그나마 빠르고 올바른 선택을 한 게 다행이다.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는 내장형이다. 스마트폰은 몸에 지니고 다니는 만큼 소비자들은 배터리 화재에 큰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만약 밤에 자면서 충전하다 화재라도 일어나면 그야말로 끔찍한 재앙이다. 애플 아이폰의 밴드게이트(너무 잘 휘어져 부러지는 문제)나 데스그립(아이폰 밑부분을 잡으면 안테나 전파 수신이 잘 안 되는 문제)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소한 부품 결함이 기업 죽이고
SNS로 끔찍한 피해 장면 전파돼

역사상 유명한 리콜들은 모두 생명과 안전에 얽혀 있다. 존슨앤존슨은 1982년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투입한 범죄로 8명이 숨지자 시중의 모든 타이레놀을 회수했다. 이로 인해 2억4000만 달러의 손해가 났지만 타이레놀의 신뢰는 지켜냈다. 그 반대 사례가 2000년 미국의 파이어스톤이다. 이 회사는 타이어 결함을 몰래 숨겨 오다 미국에서만 46명이 숨지자 뒤늦게 650만 개의 타이어를 리콜했다. 미 정부가 국민 생명과 관련된 중대 사안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파이어스톤은 결국 파산에 몰려 일본 브리지스톤에 매각됐다.

지난달 24일 불에 탄 갤럭시노트7 사진이 처음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날 저녁 만난 삼성전자 관계자는 “별일은 아닌 듯 싶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오히려 블랙컨슈머의 장난이 아닌지 의심했다. 예전에도 전자레인지로 애니콜 휴대폰을 가열해 폭발시킨 뒤 합의금을 뜯어내려다 징역 1년이 선고된 흑역사가 있었다. LG옵티머스의 배터리 폭발도 결국 조작으로 판명돼 1500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갤럭시노트7이 본격적으로 파문에 휘말리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날부터였다. 뽐뿌, 클리앙,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불에 탄 영상, 연기가 피어나는 사진들이 꼬리를 물고 올라온 것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도요타와 폴크스바겐, 옥시 사태의 악몽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모두 리콜을 미적거리다 사태를 악화시킨 사건들이다. 자동차나 화학제품 등 생명과 직결된 것도 공통점이다. 도요타는 1조원이 넘는 리콜 비용을 물었고 폴크스바겐은 디젤 게이트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삼성은 곧바로 모든 기술진을 투입해 원인 분석에 나섰다. 그리고 9일 만에 ‘35대 불량에 250만 대 전부를 리콜한다’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당초 배터리만 교체하자는 실무자들의 건의에 최고경영진이 전량 리콜을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는 “실무자들부터 소비자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려면 전량 리콜밖에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최고경영진이 2분기 8조원의 영업이익을 감안해 제품교환·환불 등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보상조치를 취하도록 결심했다”고 전했다.

어쩌면 이번 리콜은 95년 애니콜 화형식처럼 전화위복이 될지 모른다. 당시 삼성은 15만 대의 불량 휴대전화를 불태우면서 ‘품질 경영’의 각오를 다졌다. 이번에도 리콜에 인색한 아이폰과 달리 ‘AS는 역시 삼성’이란 이미지를 구축하고 고객 충성도가 높아질지 모른다. 그런 기대감 때문인지 지난 주말 외국인 매수가 밀려들면서 삼성전자 주가도 반등해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부디 ‘갤럭시노트7 화형식’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폐기처분은 환경에도 안 좋다. 회수된 제품은 리퍼폰으로 쓰든지 부품을 재활용하는 게 좋을 듯싶다.

이번 파문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배터리 불량률 0.0024% 때문에 갤럭시노트7을 모두 리콜하는 시대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많은 협력업체의 작은 실수나 사소한 결함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부를 수 있다. 기업이 글로벌화되면서 리스크도 글로벌화된 것이다. 또한 지금은 끔찍한 사고나 피해 영상이 SNS를 타고 곧바로 두려움과 공포를 퍼 나른다. 불타는 스마트폰 사진이 스마트폰 업체를 궁지에 몰아넣고, 블랙박스의 생생한 영상이 자동차 업체를 죽이고 살리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 신병 훈련소에서나 듣던 살벌한 구호가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다. ‘졸면 죽는다’ ‘방심하다간 한 방에 훅 간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