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초점] ‘정계복귀’ 손학규가 준비한 ‘필승카드’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6.09.04 00:01

업데이트 2016.09.0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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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이 8월 7일 ‘김대중 평화캠프’ 참가자들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를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의 생가 앞에 전시된 선거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는 손 전 고문.

“야권 지지자들은 매우 전략적이다. 현재의 손 전 고문은 약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야권 지지자들은 누가 여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지, 본선 경쟁력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9년 전 ‘경험’ 되살려 ‘제3지대’ 플랫폼 만든다

손 전 고문의 한 측근은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 후보와 다시 경쟁한다 해도 승산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4년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손 전 고문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막혀 2위에 그쳤다. 2007년에 이어 또다시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2012년 경선에서 손 전 고문은 순회 투표에서는 1위에 올랐지만 모바일투표에서 문 전 대표에게 뒤졌다. 순회투표는 현장에서 후보자들의 연설을 듣고 대의원이 행사하는 투표방식이다. 손 전 대표는 당심(당원들의 표심)은 얻었지만 노심(친노의 표심)에 밀린 것이다.

두 차례 대선에서 연거푸 본선무대에 올라보지 못했던 손 전 고문은 2013년 초 홀연히 독일로 떠났다. 8개월간 독일 사민당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튼 재단의 후원으로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복지·노동·교육·환경·통일 등에 대해 연구활동을 했다. 2012년 히트상품이었던 ‘저녁이 있는 삶 시즌2’ 준비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 “두 날개 중 한쪽만으로는 날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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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012년 6월 14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그해 9월 귀국 후 여의도와 거리를 유지한 채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가던 손 전 고문은 이듬해 7월 30일 재·보선 수원 팔달에 출마했다. 팔달은 ‘수원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는 낙선하자 곧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갔다.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은퇴의 변이었다. 손 전 고문은 2년 동안 토담집에서 살고 있다.

그랬던 손 전 고문이 올해 들어 자주 얼굴을 비친다.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빈도가 늘었다. 메시지도 선명해졌다. “새 판을 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새판짜기’는 손 전 고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손 전 고문의 복귀는 사실상 결정됐고, 그 시점만 남았다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손 전 고문이 복귀의사를 피력하자 정치권에서는 ‘손학규 모시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친정인 더민주와 같은 야권인 국민의당은 물론이고 여권에서도 손 전 고문의 주가가 높아 지고 있다. 김기현 울산시장에 이어 8월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이주영 의원도 “손학규는 여권의 대선후보로 영입할 수 있다”며 문을 열었다.

지난 4·13 총선에서 분당을(乙) 승리로 ‘제2의 손학규’라는 애칭을 얻은 김병욱 의원은 “복귀한다면 특정 당을 선택하지 않고 통합적 관점에서 행보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평당원 입장에서 활동하는 것을 두고 당 안팎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손 전 고문의 국민의당 입당 가능성에 의문부호를 달았다.

그렇다면 손 전 고문의 선택지는 어디일까.

측근들의 전언과 정치지형을 고려하면 최소한 연말까지는 ‘제3지대’에 머물며 국민통합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손 전 고문에게 ‘제3지대’는 낯선 경험이 아니다. 그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2007년 대한민국 선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기치로 민주화 세력과 실용적 개혁세력의 연합체인 선진평화연대를 창립했다. 이후 선진평화연대는 열린우리당 탈당파, 중도통합민주당 탈당파, 시민사회세력과 합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몸집을 불렸다.

한 측근은 “손 전 고문이 더민주 당적은 유지하되 자유롭게 활동할 공간이 필요하다”며 “이를테면 ‘국민통합국민운동본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이는 손 전 고문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과는 별개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본부는 중도개혁을 표방하며 현역 의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시민사회단체까지 아우르는 형태가 유력하다.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의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지난 5월 출범시킨 연구소 겸 싱크탱크인 ‘새 한국의 비전’에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현역의원들이 대거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한 측근은 “더민주나 국민의당에 친손(친 손학규)으로 분류되는 의원이 20명 이상 포진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전부 탈당해서 손 전 고문 쪽으로 합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운동본부 형태는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현역의원들이 함께하기에 부담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손 전 고문은 더민주나 국민의당 한쪽만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보고 있을 것”이라며 “두 당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까지 포괄하는 중도개혁세력의 플랫폼을 만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귀띔했다.

손 전 고문에게 ‘제3지대’는 배수의 진이다. 사실상 마지막 대권도전 기회만 남은 그로서는 더민주나 국민의당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렵다. 더민주에는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에는 안철수 전 대표가 있다. 둘 다 각자의 당에서 유력한 대선주자다. 넘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넘기가 쉽지도 않다.

손 전 고문의 한 측근은 “더민주에 문재인이 있으니 국민의당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국민의당에는 안철수가 있지 않느냐”면서 “더민주나 국민의당 경선에 참여할 경우 문재인이나 안철수의 불쏘시개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현실적으로 손 전 고문이 대선후보가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제3지대에서 독자적인 힘을 구축한 뒤 더민주·국민의당 등 야권후보들과 ‘최종 예선’을 치르는 방안이 첫째다. 두 야당 중 뒤처지는 당의 후보로 추대된 뒤 최종 예선전에 오르는 것이 둘째다.

| 새누리당 탈당파까지 담아낼 그릇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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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민심대장정길에 오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007년 7월 5일 전남 화순군 동면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지하 500m 갱에서 작업을 마친 뒤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더민주 출신 정치 분석가의 말이다. “손 전 고문은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야권(당시 여권)으로 넘어왔지만 대선 후보경선에서 들러리에 그치고 말았다. 2012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자기 세력을 만든 뒤 차근차근 다음 단계를 밟아갈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지각변동 가능성을 주목했다. 대선 전에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활발해지고 이 과정에서 튕겨져 나오는 세력이 있다. 8월 9일 전당대회를 통해 ‘도로 친박당’이 된 새누리당의 비박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당 밖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비박계 전직 3선 의원은 “19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이른바 비박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3, 4선의 중진이라 하더라도 친박에 눌리다 보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탈당파를 담아낼 그릇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손 전 고문이 운동본부를 창립한다면 선점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전 고문 측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9월 이후 발간될 그의 저서에 담길 것으로 전해진다. 책은 큰 틀에서 현실 속 난제들의 극복방안과 미래에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일부에 알려진 것처럼 ‘대한민국 개조론’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병욱 의원은 “책의 제목, 발간 시점과 형태 등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 다만 손 전 고문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계복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더라도 손 전 고문은 서울보다는 지방, 특히 호남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9월 이후 발간될 책을 주제로 지역을 돌며 강연 등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에 복귀하더라도 큰 틀에서 ‘강진 칩거’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야권의 4·29 재·보선 완패 직후였던 지난해 5월 17일 리얼미터 여론조사가 재미있었다. 이미 은퇴를 선언한 손 전 고문이 호남권에서 지지율 22.4%로 박원순 서울시장(20.5%), 문재인 전 대표(19.4%)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며 “야권에서 대선주자가 되려면 호남의 마음을 얻는 것은 필수다. 복귀 선언 이후 호남에 더 공을 들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07년 대선을 준비하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2006년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한나라당 대권경쟁은 ‘이명박·박근혜 2강에 손학규 1약’ 구도로 전개되고 있었다. 손 전 지사의 히든카드는 민심대장정이었다. 그는 102일 동안 제빵사·광부·농부·용접공·운전사 등 93개 직업을 체험했다. 그 기간 버스로, 택시로, 도보로 1만2475㎞를 이동했다. 그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그해 10월 9일 손 전 지사는 102일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오늘은 끝이 아니다. 민심의 바다로 가는 또 다른 대장정의 시작”이라고 외쳤다. 그런데 하필 그날 북한이 제1차 핵 실험을 강행했다. 그날 밤 방송과 다음날 신문에서 손 전 지사 관련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회심의 카드가 불발탄에 그치자 손 전 지사는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자력으로는 ‘한나라당배 대선선수권대회 결승전’에 오르기 어려웠다. 손 전 지사는 결국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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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경기지사선거에서 승리한 뒤 부인 이윤영 씨와 환호하고 있는 손학규 당선인.

현재 야권의 정치지형이 10년 전 당시 야권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더민주에는 문재인이라는 ‘실소유주’가 있고, 국민의당에는 안철수라는 ‘대주주’가 있다. 2년 동안 링을 떠나 있던 손 전 고문에게는 둘 다 버거운 상대일 것이다.

그렇다고 둘에게 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문 전 대표는 ‘야권의 심장’이라는 호남에서 치명상을 입었다. “호남에서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신다면 정계에서 은퇴하고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며 배수의 진을 쳤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더민주는 호남 전체 28석 가운데 3석에 그쳐 23석을 휩쓴 국민의당에 완패했다. 안 전 대표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38석으로 돌풍을 일으키긴 했으나 수도권 등 호남을 제외한 나머지 권역에서 자신을 포함해 단 2석을 건지는 데 만족해야 했다.

콘텐트에 비해 ‘포장지’도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더민주의 한 현역의원은 얼마 전 사석에서 손 전 고문을 한 광고에 빗댔다. 그는 “‘남자에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문구처럼 손학규라는 사람, 콘텐트는 좋은데 어필할 만한 그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손 전 고문의 한 측근은 “주위에서도 비슷한 건의와 지적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신속한 메시지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정치인이라면 중대 현안에 대해 즉각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그런데 손 전 고문은 합리적이고 완벽하게 대응하려다 보니 조금씩 늦었던 것 같다. 복귀 후에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등 능동적이고 신속하게 현안에 대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손 전 고문의 복귀 명분을 주목하고 있다. 왜 2년 전 홀연히 정계를 떠났다가 2년 후 돌아올 수밖에 없는지, 왜 손학규이어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병욱 의원은 “한 번 은퇴를 선언한 분이 복귀를 고민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꽉 막혀서 희망이 없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최근 대화에서 손 전 고문은 ‘나라’라는 단어를 매우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나라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크다. 특히 청년실업과 남북관계에 대한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진우 소장은 “손 전 고문이 거듭 강조하는 새판이라는 것은 결국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쇼를 하려거든 손학규처럼 진정성 있게 하라’는 말이 있다. 손 전 고문이 강진 칩거 2년 동안 미래에 대한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달라는 호소가 먹혀 들어간다면 손학규 대망론이 거세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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