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 vs 불편…쓰레기통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지난 31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한 버스정류장. 바닥 곳곳에 빈 알루미늄 캔과 플라스틱 컵이 마구 나뒹굴고 있었다. 버스 승객들이 쓰레기통을 찾지 못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다. 원래 이 버스정류장에는 쓰레기통이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구청 측이 지난해 말 쓰레기통을 철거하면서 쓰레기 투기가 문제로 등장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원래 쓰레기통은 누군가가 일부러 쓰레기를 투기하는 사례가 많아 상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철거했다”며 “최근에는 반대로 쓰레기통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버스 승객들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1일 광주시 북구 용봉동에 설치된 쓰레기통.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광주 지역 자치구들이 쓰레기통과 관련한 상반된 민원들로 고심하고 있다. 대부분 쓰레기통 설치 장소 주변 상인들은 “철거해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버스 승객이나 보행자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가정·상가 쓰레기 고의로 갖다버려
주변 미관 해치고 파리 등 해충 몰려
광주시, 철거 민원에 2년새 17% 감소
“불법 투기 조장” 설치 호소에 난감

1일 광주시에 따르면 광주 지역 인도와 버스정류장 주변에는 총 627개의 쓰레기통이 있다. 구별로는 동구 93개, 서구 124개, 남구 120개, 북구 160개, 광산구 130개 등이다. 구마다 차이는 있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실제 2014년 광주 지역 쓰레기통은 760개였으나 2년 새 133개(17%)가 줄었다.

길거리 쓰레기통에는 행인들이 버린 쓰레기 외에도 인근 가정이나 상가에서 버리는 쓰레기들이 넘쳐난다.

주변 상인들은 “냄새가 나서 영업에 방해가 된다”며 철거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한다. 매일 오후만 되면 쓰레기통이 넘쳐날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 주변 환경을 훼손하고 있어서다. 특히 기온이 높고 파리·개미 같은 벌레가 몰리는 여름철에는 민원이 더욱 빗발친다.

구청 측은 민원이 많은 쓰레기통은 원칙적으로 철거하고 있다.

시민들은 대체로 쓰레기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지수(28·여)씨는 “도로 곳곳에 있는 쓰레기통을 전부 없애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불법 투기를 조장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성숙한 시민의식 없이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광주 한 자치구의 청소 업무 담당자는 “본래의 설치 목적에 맞게 현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만 버리는 의식을 가져야만 쓰레기통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구청 청소행정과 정명숙 계장은 “쓰레기통 설치와 철거 논란은 지자체의 딜레마다. 결국, 양쪽 민원을 모두 해결하기 위해 미화원들이 수시로 쓰레기통 주변을 청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정책적으로 쓰레기통을 모두 없애기도 했다. 서울시 서초구는 2012년부터 대로변에 설치된 쓰레기통 140개를 모두 없앴다. 불법 배출되는 생활 쓰레기로 인해 주변 환경이 훼손된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쓰레기통이 없어 불편하다”는 민원이 계속 제기된 2곳에만 쓰레기통을 설치했다. 반면 서울 강남구 관내에는 930여 개의 쓰레기통이 설치돼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적 특성 탓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일대가 쓰레기로 넘쳐난다는 게 강남구의 설명이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