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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 사이 소리없는 비명…강남구, 청년 고독사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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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서 너무 외롭다. 주변에 친구도 없다. 집주인에게는 죄송한 마음이다. "

지난해 2월 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된 A(29)씨의 유서 내용이다. A씨의 시신은 월세 70만원을 받기 위해 찾아간 집주인에 의해 발견됐다.

지난 6월 12일엔 강남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살던 B(25)씨가 방에서 목을 맨지 사흘 만에 경비원에게 발견됐다. 부모가 이혼한 2014년 10월부터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던 이씨는 2015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혼자 지내왔다. 경제적 능력이 없고 공황장애를 앓던 이씨는 이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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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라고 하면 부양가족이 없는 노년층을 주로 떠올리지만 최근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특히 강남구에서 많이 벌어진다. 지난 달 서울시복지재단이 발표한 고독사 실태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서울시에서 발생한 20~30대 고독사 328건 중 강남구가 48건이었다. 이는 서울시 25개 구 중 가장 높은 수치다. 1인가구용 저가 고시원이 밀집해 서울시에서 1인가구수(8만 4000 여)가 가장 많은 관악구(29건)보다도 높은 수치다. 강남구의 1인 가구수는 5만 9000여 가구 정도다.

아무에게도 보살핌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하고, 그 후로도 상당 기간 동안 방치되는 죽음을 뜻하는 고독사. 유독 강남에서 청년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5일 오후 7시. A씨가 목숨을 끊었던 역삼동 원룸 촌을 찾았다. 테헤란로의 고층빌딩 뒤편으로 4~5층 높이의 조그마한 원룸빌딩 50여 채가 좁은 간격으로 들어서 있었다. 인근 부동산에 물어보니 “대부분의 방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룸가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거의 없었다. 올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송모(29)씨는 “강남의 정적이 때로는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곳 사람들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대학가인 신촌에 살 때는 저녁이면 조금 불편할 정도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소리도 일상으로 들려왔는데 여기서는 그런 사람 사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만난 김모(31)씨도 “3년째 원룸에서 거주중인데 바로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마주치는 경우도 거의 없다”면서 “혼자 들어와서 혼자 나가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대감의 상실’을 청년 고독사의 가장 큰 이유로 지적한다. 김통원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강남에 모인 청년들은 대부분 돈을 벌기위해 모인 이들”이라며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이들에게 물리적으로 사람과 어울릴 시간과 공간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도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가족·친척·친구 등과의 떨어져 생활하면서 직접적 만남보다 간접적 인간관계가 보편화됐다”면서 “인간관계를 통해 정서적 지지를 얻어야 하는 청년들의 정서적 안정망이 부재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고독사뿐만 아니라 강남이라는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김교수는 “강남은 화려하고 북적북적한 곳이지만 많은 청년들은 그런 화려함을 즐길 여유가 거의 없다”면서 “관악구에도 외롭고 힘든 청년들이 많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심리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히 강남보다 낫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청년 고독사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기고 구체적인 대책마련을 고민하고 있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고독사 하는 청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며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직장 상사 혹은 동료들과 비상연락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관 기자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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