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의 역작용도 생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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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의 정치·사회현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있다.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는 날이 갈수록 과격해 지기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분신자살자가 잇따르고 있다. 전방부대 입소훈련 거부사태가 계속되는가하면 엊그제는 부산미문화원을 학생들이 점거하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이러한 모든 사태를 논의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할 국회는 회의를 열기도 전부터 이견으로 공전되고, 정치는 문제의 핵심에 접근도 못한 채 여야 서로가 상대방을 비난하고 책임전가만을 일삼고 있다.
대학가를 자욱히 휘덮고 있는 최루탄의 매운 독기는 이제 전국민의 가슴까지 스며들어 암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더욱 참담하게 하고있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독재정권타도」와 「미제로 망한 나라 반미로 되살리자」는 요구가 폭력에 의해 당장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기물을 파괴하고 수업을 거부하여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귀한 목숨을 마구 불사르며 지방의 공관을 점거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금방 민주화가 달성되고 남북통일이 쉽게 성취된다고 생각한다면 오늘과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순수한 민주화 실현이라면, 거기에도 민주적인 과정이 요구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민주화의 요구는 정당하고 합법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동조하서면도 그 방법의 과격성을 굳이 말리러 하고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화는 자유민주주의의 확립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최근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갖가지 시위는 그 성격에 있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냐, 아니면 인민민주주의를 동조하는 것이냐에서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인민민주주의 쪽이라면 우리가 건국이래 지켜온 헌법에 위배되고 따라서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방한했던 「슐츠」미 국무장관의 일련의 발언이 급진과격세력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이건」대통령이나「솔라즈」하원의원을 비롯한 미국 조야의 한국민주화에 대한 기대나 미 하원 아태소위의 「한국민주화 촉구 결의」등 일련의 움직임으로 보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민주화 격려는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뿐만 아니고 칠레, 대만 등 민주화의 물결은 이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 파도를 누가 감히 거스를 수 있겠는가.
오늘의 국내 정치상황도 불과 몇 달 전과도 판이하게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비는 계속되고 있으나 민주화는 그래도 한 걸음씩 진전되어 가는 것이 천하 대세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러한 무드 속에서 과격시위가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도 허심탄회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화의 촉진보다는 오히려 위축시키거나 퇴보시키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국민은 과격을 원치 않는다. 민주화는 그 과정의 민주성이 중요한 것이다. 국민의 기대나 공감도 없는 과격은 이제 그만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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