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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갈길 바쁜데 협상 지지부진|시리즈를 끝내며…정치부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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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헌공방이 몇 굽이를 돌아 이제「임기 내 개헌」이란 선까지 나왔는데도 여야간의 논의가 더 이상 발전돼 나가지 못한 채 속앓이들만 거듭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개헌문제에 관한 여야의 대 타협은 가능할까요.
-4·30 청와대 회동직후 들떴던 분위기가 5·3 인천사태 등으로 냉각 됐어요. 여야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개헌협상을 회피하고 있는데 특히 야당 측이 소극적입니다.
-최근 들어 정국이 주춤하는 인상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개헌논의가 시기에서 내용으로 발전되자 각 당 내부의 이해가 적극적으로 개입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어려워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내부적으로는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있고 무리 없는「접점」을 찾기 위한 암중모색도 이뤄지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사안의 성격상 곁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여야간 여러 차원에서「막후대화」가 진행되는 듯한 기미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개헌시기에 대해서는 특별한 쟁점이 없어 보입니다. 야당이 보다 분명한 개헌시기 표명을 요구하고 있는 정도인데 나름대로 일리가 없지 않지만 여당의「임기 내 개헌」은 이제 언행으로 확실해진 느낌입니다.
-개헌내용에 대해서도 아직은 공식적인 공방은 없는 상태입니다. 민정당은 신민당의 당론인 직선제의 문제점만을 강조하며 은근히 내각책임제를 시사하고 있으나 앞으로 독자안을 만들어 나간다는 거죠.
-여권내부의 개헌논의를 한마디로「내각책임제」라고 정리하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민정당 의원의 상당수가 내각책임제를 지지하고 있고 정부가 지자제 확대실시를 거의 공식방침으로 결정했는가하면 4·30 청와대 회동에서 직선제에 부정적인 언급이 있었던 점등을 들어 여권의 입장을「내각책임제」라고 추리해 볼 수도 있지만「권력 중심적인 체제」에 습성화된 여권으로서는 미답의 정치체제에 대한 두려움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당정 내에는「대통령」에 매력을 느끼는 세력이 없지 않으며 내각 책임제라는「힘의 불안정한 분산」을 걱정하는 그룹도 있는 것이 사실이죠. 따라서 여권일부에선 형태는 내각책임제이지만 실제는 대통령 중심제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고 최근 들어 이런 주장이 강조되는 분위기입니다.
-반드시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최종적인 타협결과는 어떤 형태로 낙착되든 처음 대야협상용으로 내놓을 때는 직선제든 내각책임제든「성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해요. 또 대 국민적 설득과정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명분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권의 개헌안은 자체내부 여러 갈래의 동의, 국민적 설득력, 야당과의 타협 가능성 등 세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재집권 가능성 쪽에만 매달리면 국민적 설득력에 문제가 있고 야당과의 타협도 안되죠.「익숙한 제도」를 많이 참작하다보면 정국치유 수단으로서의 신선도는 없어진다는데 민정당의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일부에서는 지자제가 개헌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다는데 초점을 맞춰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이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가 구상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신민당의「직선제」당론에는 전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만 봐야 할까요.
-신민당 안의 비평가 그룹에 속하는 의원들의 말을 빌면 소속의원의 60%가, 특히 상도동계의원들의 80%가 직선제로서는 타협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론은 엄연히 직선제이며 특히 김대중씨 같은 이는「직선제=평화적 정권교체」론 까지 주장하는가 하면 내각 책임제가「소신」이었다고 알려진 김영삼씨도 최근 각종 대회를 통해「대중과의 직접접촉」에 열을 올리는 눈치이고 보면 상당한 단계까지는 직선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없습니다.
-직선제가 당론화된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원들도 있습니다. 신민당이 총선에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라는 공약을 내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부 선택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 더 강했었죠. 다시 말해 총선에서 대통령 직선제와 내각 책임제를 놓고 심판이 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신민당 내에서 직선제 아닌 안을 공식적으로 꺼내기는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여당 측의 얘기를 들어보면 상당수 야당 측 인사들이『민정당이 만약 내각책임제를 들고 나오면 겉으로는 신민당이 뭐라 하겠지만 결국 신민당 의원의 70%가 지지할 것』이라고 의사 전달을 하고 있다고도 해요.
-앞으로 6월 국회가 열리고 헌특 협상이 재개되고 민정당의 헌특 공청회·정부헌정 제도 연구위의 활동 등이 본격화하면 개헌논의의 만발시대가 올텐데 그때가면 야당내의 다른 소리도 표면화할지 모르죠.
-신민당은 헌특위 구성의 논제 조건으로 정치범 석방과 김대중씨 등에 대한 사면·복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정당은 개헌시기는 이미 개방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사면·복권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민당이 헌특 구성과 사면·복권을 바로 연결시킬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연내 개헌을 주장해 놓고서도 특위구성에 응하지 않는다면「국회 밖에서 개헌하겠다는 것이냐」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그런 논리적 딜레머에 스스로 빠질 리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민정당으로서도 특위의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활동시한」정도는 자연스레 못박을 수 있다는 입장인 것 같고 적어도 사면-복권·양심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부분적으로나마 발전적 언질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불완전한 조건 충족 속에서 신민당의 동교동계가 헌특을 받겠느냐는 것이 관건인데 혹자는 방미에서 돌아온 후의 이민우 총재가「소신」으로 헌특 참여의 결단을 내러주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김대중씨의 완강한 직선제 주장도 정치적 흥정의 지렛대 정도이며 직선제를 주장해야 내각 책임제라도 온전히 건지는 것이 아니냐는 원모 심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정국이 중요한 대목에서 진전을 못보고 있습니다만 타협을 촉진하는 여러 가지 외부적 요인도 있습니다.
미국이 높은 수위에서 공개적으로 조속한 타협을 촉구하고 있고 지식인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이 합의 개헌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 여야 모두에 큰 압력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80년의 실패에 대한 민간정치인과 국민들의 생생한 기억도 여야의 자각을 촉구하는 중요한 요소이지요.
-그러나·여야 의원들은『협상의 시작은 순조로울지 모르나 개헌 내용에 대한 합의가능성은 희박하지 않겠느냐』고 상당수가 비관적 이예요.
-일부에선 벌써 이원 정부제를 경계하는 소리가 높은데 실은 신민당의 대통령 직선제와 여권에서 요즘 비치는 의원 내각제를 내용적으로 절충하다 보면 결국 이원 정부제가 되고 말아요.
-이원 집정제는 80년 당시 나쁜 인상을 준 것이 지금껏 내려오고 있어 국민적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요.
-내용 협상이 끝내 안되고 지지칠 대로 지치면 정부측 안이나 민정당 측 안이 다소 수정되면서「대야포섭」을 통해 우격다짐으로 통과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요컨대 정치지도자·정치인들이 사심을 갖고 특정제도를 고집하는 비타협적 태도를 버려야 대타협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자당이나 자기의 집권에 유리하냐의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어 특정정부 형태를 고집한다면 타협은·불가능합니다.
-집권당이 개헌의지와 정치발전의 의지를 갖고 대야협상에 신축성을 보이고 활성화된 당 주도로 국면을 이끌어 나가는 정치기술의 발양이 선행돼야할 것입니다.
-신민당 측도 민의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으로「직선제」라는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협상에 필요한 건강한 체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야당 내 이견의 실재를 인정하면서도 애써 외면하지만 말고 자유로운 당론 집약과정을 통해 탄력성을 획득해야 합니다.
-두 김씨 이후에라도 야당이 수용할 수 있는 헌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대 타협에 의한 합의 개헌을 임기 내에 하자면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들먹이고, 『욕심을 버렸다』『반성한다』는 말까지 한 정치지도자들의「진의」가 이제 차차 드러날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의 언행 일치여부를 주시 해야죠.<정리=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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