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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도시락과 송로버섯…한국형 소비의 양극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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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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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

산업부 기자의 e메일함엔 온종일 신제품을 홍보하는 보도자료가 밀려든다. 요즘은 대부분 ‘가성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카레볶음밥·훈제오리·장어까지 날로 종류가 늘어 간다. 생필품은 대형마트 PB 상품이, 커피는 1000원짜리 편의점 커피가 대세다. 소주 판매에선 페트병 제품 비중이 10.5%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 술집에서 병 소주를 주문하기보다, 집에서 페트 소주병을 기울인 실속파가 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가성비 좋은 제품에 열광하는 건 아니다. 

두 달 전께 한 백화점에 고급 해산물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300달러를 내면 고급 샴페인과 ‘세계 3대 진미’라는 송로버섯, 캐비아, 푸아그라 요리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고 한다. 같은 업체가 2년 전에 연 100달러짜리 랍스터 뷔페는 아직도 주말이면 예약 손님이 꽉 차서, 한 달 전 일찌감치 예약해야 할 정도다. 삼성전자가 지난봄에 출시한 세리프 TV는 40인치 사이즈가 200만원에 육박한다. 디자인이 뛰어난 ‘인테리어 가전’이란 이유로 동급 TV보다 5배가 비싼데, 유명 연예인들이 샀다는 입소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달엔 ‘한국인 생활 습관에 맞춘’ 1500만원짜리 최고급 침대도 출시됐다. 

올여름엔 불황에 무더위까지 겹쳐 집에서 쉬는 사람이 많다며 ‘홈캉스(홈+바캉스)’ ‘스테이케이션(스테이+베케이션)’을 공략한 마케팅이 활발했다. 그런데 인천공항을 이용한 여행객은 8월 첫 주 집중 휴가철을 앞두고 하루 20만 명을 돌파했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돈을 아끼려고 ‘방콕’ 하는 사람이 늘었다지만, 돈을 쓰러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도 많아진 것이다. 한쪽에선 프랑스에서 넘어온 한 조각에 7000원이 넘는 디저트 케이크가, 다른 한쪽에선 12개들이 한 박스에 3800원 하는 바나나 맛 초코파이가 함께 인기를 끄는 시대다. 

최고급 아니면 최저가, 양극화된 소비 생활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소비자원이 산출한 지난해 소비양극화지수는 167로 1994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치가 높을수록 상류층과 하류층의 소비 격차가 크다. 

뉴욕에 사는 친구 말로는 명문대 학생들도 8달러짜리 샌드위치가 비싸서 다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별을 단 레스토랑이 수두룩한 뉴욕이지만, 그런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의 뉴요커뿐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 트럼프 신드롬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펼친 신문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포르셰를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읽는 우리 사회도 여유 부릴 때는 아닌 것 같다.

이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