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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드론 날리고, 풋살 즐기고, 맛집 누비고…요즘 쇼핑몰, 아빠들이 먼저 놀러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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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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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재미를 추구하는 몰(Mall)들. 왼쪽부터 30~40대 남성을 겨냥한 이마트타운 ‘일렉트로마트’. [중앙포토·뉴시스]

“쇼핑과 육아의 일석이조 효과를 얻습니다. 진열된 장난감들을 아이도 좋아해 늘 데리고 옵니다.”

개성 경쟁으로 온라인 몰 파고 넘기
정용진 “유통 경쟁상대는 테마파크”
백화점·대형마트도 몰 개념 접목
키덜트·미식가·스포츠족들 겨냥
타깃·테마 잘게 나눠 매출도 쑥쑥

지난 21일 경기도 일산의 이마트타운 킨텍스점에서 만난 직장인 김형규(36)씨가 말했다. 그가 자주 찾는 가전 매장 ‘일렉트로마트’는 ‘남자들의 놀이터’로 불린다. TV·음향기기 외에 드론과 피규어 등이 김씨 같은 ‘키덜트(Kidult)’를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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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로 알려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직접 개장을 진두지휘했다. 킨텍스점은 문을 연 지 10개월 만에 약 18만 명이 몰려 연간 목표 매출액인 300억원을 조기 달성했다. 올해는 부산 센텀시티몰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등지에서 매장을 열면서 전국 매장이 9곳으로 늘었다. 중년 여성 소비자의 비중이 큰 다른 곳과는 달리 방문객의 70% 이상이 30~40대, 이중 남성이 30~40%로 ‘아빠’ 손을 잡은 어린이들도 많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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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재미를 추구하는 몰(Mall)이 한층 진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대형·고층화가 전부는 아니다. 타깃(목표 고객층)의 범위는 좁아지되, 고유의 테마는 무한 확장되고 있다. 키덜트·미식가·스포츠 애호가 등 타깃을 세분화한 뒤 일렉트로마트 같은 맞춤형 테마 공간을 제공한다. 정 부회장은 “앞으로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백화점·대형마트가 아닌) 테마파크가 될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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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파크를 연상시키는 현대백화점 판교점. [중앙포토·뉴시스]

실제 백화점·대형마트들은 최근 몰의 개념을 접목,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지난 21일 개점 1주년을 맞은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경우 ‘먹으러 가는 백화점’으로 통한다. 지하 1층에 마련된 축구장 2개 크기의 식품관이 ‘매그놀리아’ 등 이름난 맛집들로 전국 각지의 미식가들을 불러 모은다. 6층 남성복 코너엔 백화점으로는 이례적으로 고급 이발소와 구두점이 입점, 꾸미기 좋아하는 남성 ‘그루밍족’을 유혹한다. 인기 서적 『월리를 찾아라』의 월리 캐릭터로 분장한 직원들이 이벤트를 펼치고, 옥상엔 테마파크에서나 볼 법한 회전목마가 있어 아이들이 줄을 선다. 이런 요소들에 힘입어 전국 백화점 중 개점 1년차 최대 매출 기록(7500억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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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애호가를 모으는 홈플러스 ‘HM풋살파크’. [중앙포토·뉴시스]

스포츠 애호가를 겨냥한 곳도 늘고 있다. 홈플러스 서수원점은 몰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5월 국내 대형마트 중 최초로 옥상에 대규모 풋살 경기장인 ‘HM풋살파크’를 조성, 축구와 생활체육을 즐기려는 시민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평일 저녁 예약률은 90%, 주말엔 거의 100%다. 홈플러스 측은 “경기장을 연 이후 매장 방문객이 15% 가량 증가했다”며 “연간 5만 명의 신규 고객이 유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다음 달 경기도 하남에서 문을 여는 ‘스타필드 하남’ 역시 스포츠 전용 공간으로 차별화한다. 3~4층과 옥상에 워터파크·사우나를 갖춘 ‘아쿠아필드’와 암벽등반·자유낙하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몬스터’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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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족’들에게 인기인 코엑스몰 ‘언더월드파노라마’. [중앙포토·뉴시스]

이밖에 지난해 서울 광진구에서 문을 연 국내 최초 팝업 컨테이너 몰 ‘커먼그라운드’, 올 6월 개장해 길거리 오케스트라가 열리는 판교 ‘라스트리트’도 타깃과 테마의 차별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여기엔 기성 몰의 노력도 뒤지지 않는다. 2000년 아시아 최대 규모로 개장해 ‘한국형 몰의 원조’로 꼽혀온 코엑스몰은 올 7월 국내 최장인 100m 길이의 ‘언더월드파노라마’를 설치했다.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사진·영상 남기기를 좋아하는 ‘셀카족’ 소비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55인치짜리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272대가 투입됐다.

유통업계가 이런 움직임에 나선 건 온라인 몰 전성시대에 오프라인에서 단순한 쇼핑보단 새로운 경험을 하길 원하는 소비자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는 약 54조원으로 전년 대비 19% 성장했다. 대형마트(49조원)·슈퍼마켓(37조원)·백화점(29조원)·편의점(17조원) 등 주요 오프라인 쇼핑 채널의 시장 규모를 앞질렀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는 “온라인을 통한 해외 ‘직구(직접구매)’와 ‘역(逆)직구’의 유행 등으로 온라인 몰은 급성장한 반면, 오프라인 몰은 치열한 경쟁 속에 막연히 다양한 매장들과 영화관 등 부대시설, 깔끔한 디자인만으론 살아남기 어려워졌다”며 “주로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에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중국은 알리바바의 ‘티몰’ 등 온라인 몰이 위세를 떨치면서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가 지난해 5조4000억 위안(약 1020조원)으로 1년 새 35% 성장했다. 오프라인 쇼핑 수요는 갈수록 줄고 있다. 이에 텐센트 같은 업체는 지난 12~17일(현지시간) 지분 매입을 통해 중국 2위 온라인 몰 ‘징둥(JD닷컴)’의 최대주주로 등극, 알리바바 견제에 나섰다.

미국에선 ‘유통 공룡’ 월마트가 ‘온라인 몰의 대명사’ 아마존 등에 밀리면서 부진의 늪에 빠졌다. 올 초 미국 LA타임스는 월마트가 매출 부진에 전 세계 269개 매장 문을 닫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월마트는 최근 온라인 유통 전문 스타트업 ‘제트닷컴’을 30억 달러(약 3조3000억원)에 인수하고 온라인 판매 품목을 700만 개 추가해 총 1500만 개로 늘리는 등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몰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대형·고층화에만 얽매이기보다 타깃과 테마의 차별화로 소비자를 모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성은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내수 경기 위축 여파가 더해지면서 유통기업들이 오프라인에선 마땅한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워졌다. 몰의 개념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성장 폭을 좌우할 것”이라며 “주요 부지가 포화 상태인 데다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현 시점에선 스토리텔링 등을 통한 차별화 전략이 효율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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