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근거 없는 '클린턴 건강 이상설' 제기하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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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로 ‘건강 이상설’을 꺼내 들었다. 추락한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지 않자 인터넷ㆍSNS에 나돌던 흑색선전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전략이다.

CNN은 23일(현지시간) “(2008년 대선 때) 버락 오바마의 출생 의혹을 제기했던 이들인 ‘버서(birther)’처럼 (클린턴을 공격하는) ‘헬서(healther)’가 싸구려 과학과 음모이론으로 클린턴의 뇌 손상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지난 16일 “클린턴은 이슬람국가(IS)를 대적하기엔 정신적ㆍ육체적으로 정력이 부족하다”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이어 카트리나 피어슨 트럼프 캠프 대변인이 방송 인터뷰에서 “클린턴이 실어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측 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22일 “(인터넷에 접속해) ‘클린턴 건강 질환’이라고 입력해 보라. 동영상을 직접 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상엔 ‘클린턴 발작 동영상’이 돌고 있다. 클린턴이 유세 도중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흔드는 장면을 놓고 발작 징후라고 우기는 동영상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AP통신 기자가 “과장되게 고개를 흔든 것이지 발작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트럼프 측 블로거들은 이를 확대 재생산 중이다. 트위터엔 클린턴 수행원이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물체의 사진을 놓고 ‘발작 방지용 진정제 다이아제팜 주사기’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클린턴을 수행하는 백악관 경호팀이 작은 ‘손전등’이라고 해명에 나서야 했다. 클린턴이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허위 진료 서류도 등장했다. 클린턴은 2012년 12월 장염에 걸려 실신해 뇌진탕 증세를 보인 적이 있지만 회복했다. 1947년생인 클린턴(69)이 당선돼 집권하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고령 대통령이 된다.

주류 언론들은 근거 없는 건강 이상설에 냉소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역겨운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클린턴 본인도 “웃기는 전략”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지지율을 만회할 수를 내지 못하고 있는 트럼프가 흑색선전 캠페인을 버릴지는 불투명하다.

23일 NBC뉴스와 서베이몽키가 발표한 여론조사(15∼21일)에 따르면 양자 대결 지지율이 클린턴 50%, 트럼프 42%로 나왔다. 트럼프가 캠프 책임자를 교체하고 무슬림 전사자 비하 발언을 후회하는 말을 하며 변화를 보여주려는 듯 했던 시점에 진행된 조사다. 로이터ㆍ입소스 여론조사(18∼22일)에서도 트럼프(33%)는 양자 대결에서 클린턴(45%)에게 두 자리 수로 밀렸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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