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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위서 드러난 새로운 양상|근로자-학생 연대투쟁이 두드러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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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운동권의 급진 과격학생과 근로자·재야세력이 주도한「5·3인천사태」는 광주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가두시위였다는 점 외에도 이들 세력이 평소 갖고 있던 보수야당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가 처음 행동으로 표출됐을 뿐 아니라 근로자와 대학생의 이른바「노-학 연대투쟁」형식이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있다.
인천시위에 몇 개 단체가 어떤 조직연대를 갖고 동원됐는지는 치안당국의 조사결과로 드러날 수 있겠지만「민민학련」(민민투전국연합)·「자민투」등 운동권 학생단체와「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인천지역노동자연맹」(인노련)·「인천기독교노동자연맹」등 경인지역 운동권 근로자 단체가 어우러진 점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났다.
유인물 등을 통해 드러난 이날 시위 참가단체는 20여개. 「반제 반군부파쇼 민족민주학생연맹(민민학련) 만세」라고 쓴 대형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민회관을 향하던 경인지역 학생들 틈엔 상당수의 근로자들이 있었다. 경찰은 이날 시위에 참가한 근로자 가운데는 정상근무를 끝내고 모였던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경찰관폭행·차량탈취·방화 등 과격행동은 인천·부평·구로·성남 등 공단에 위장취업 등으로 관련돼있는 과격노조원(경찰추산 8백명) 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인천시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노-학 연대투쟁」이 이른바「임투」(임투=경제투쟁)에 주력하는 세력과「개투」(개투·개헌투쟁=정치투쟁)를 위주로 하는 운동권 학생세력이 처음으로 합쳐져 빚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통일전선=시위현장에서 뿌려진「인천의 노동동지여, 총 궐기하라」는 유인물은 전국 30여개대학(문교부추정)에 구성돼있는 것으로 알려진「민민투」(반제 반파쇼 민족민주투쟁위원회) 전국연맹인「민민학련」과「전국 반제 반파쇼 노동자투쟁위원회」·「서노련」·「인노련」·「인천 기독교노동자연맹」등 5개 단체 공동명의였다.
유인물을 통해 볼 때 대학생과 근로자가 이른바 통일전선을 형성한 것이다. 유인물은 이렇게 외쳤다. 『노동자의 인천으로! 인천을 해방구(해방구)로! 시민회관으로! 학살원흉과 타협하는 신민당을 배격하자!』「민민투」의 풀 네임을 따온 근로자단체가 이날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반제 반파쇼 노동자투쟁위원회」·「반미 반파쇼 민중해방을 향하여 전진하는 민주노동자」·「미국의 사주에 의한 개헌술책폭로 5·3노동자 투쟁위원회」등의 명칭에서 보듯 이른바「임투」차원을 탈피한 근로자조직들이 등장한 것이다.
당국은 이를 두고 운동권학생들의 이른바「경투」(경투·경제투쟁)나 근로자의「임투」 는 이미「정투」(정투·정치투쟁)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운동권학생들의 투쟁단계는 적어도 근로자에 관한한「지원투쟁」의 단계를 넘어「동맹투쟁」단계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시위에서 대학생과 근로자는 현실인식과 목표를 같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분석이다.
◇시위참가 주요 근로자단체=인천시위에서 근로자를 이끈「서울 노동운동연합」은『합법적 민주노조도 용납치 않는 현재의 탄압상황 아래서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조직 건설만이 노동운동의 궁극적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내걸고 85년8월25일 청계피복노조·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위원회(노투)·구로지역 노조민주화추진연합(구민련)·노동자연대투쟁연합(연투) 등 4개 단체의 관련자1백20여명이 모여 발족시킨 단체.
민중 민주운동세력과 깊은 연대를 맺어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신장을 위한 투쟁을 목표로 하고있다.
구로지역 동맹파업투쟁 등 강력한 급진 노동세력과 각 사업장의 해고근로자들이 중심이다. 70년에 분신 자살한 전태일씨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고문, 청계피복노조 민종덕씨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인천 노동운동연합」도「서노련」과 맥을 같이 하고있으며 인천·경수지역이 임금취약지구이면서도 노동자들이 몰려있는 특색 때문에 임금투쟁 등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특히 위장취업으로 해고된 경인지역 운동권학생들과 과격노조활동으로 해고당한 근로자들이 핵심을 이뤄 인천을 중심으로 경수지역의 노동운동을 좌우하고 있다.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인사련)은『인천지역의 노동자·도시빈민에의 민주화운동확산과 생존권확보를 위해 노동운동 및 빈민운동과의 긴밀한 연대·지원투쟁을 벌인다』는 것이 활동목표다.
「인사련」은 84년11월19일 창립, 천주교 인천교구청년회·인천 기독청년협의회·부천-역곡지역청년들을 주축으로 기관지『인천의 소리』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반민주적 사회구조 폭로에 주력하며 이우재씨가 집행국장이다. 「인천기독교 노동자 연맹」은「한국기독교 노동자 총연맹」의 산하 단체로, 『한국 노동자들의 경제·사회·정치적 지위향상과 민족통일 완수를 위해 다른 노동운동 단체들과 전국적 연대를 형성하여 노동운동을 발전시키겠다』며 85년2월에 발족했다.
이들은 80년5월17일 정부의 노조정화조치로 노조가 붕괴된 후『취약해진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새로운 노동운동 방향을 기독교 신앙에 입각, 정의롭고 평화롭게 전개하겠다』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모두「민주·통일민중운동 연합」(민통련) 가맹단체들로 80년대 전까지 세력을 떨쳤던「도시산업선교회」가 당국의 제재로 힘을 잃자 파생되기 시작, 현재 전국 12개 비합법 노동운동단체 가운데「청계피복노조」「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등과 더불어 운동권학생들과도 긴밀한 유대를 갖고 과격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노-학연계=운동권 학생들의 노-학 연계투쟁은 80년대 들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민중 현실과 민중의 구체적 실체에 바르게 접근하고 스스럼없이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노력(「공장생활안내서」·KSCF)으로「공활」(공장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기층민중을 상대로 한「농활」(농촌활동)·야학도 병행됐다. 지금과 비교하면 초기단계다.
「공활」의 의미를 학생들은『학생의 노동자로의 존재변환과 노동현장 경험을 통해 학생의 존재적 특성을 객관화하여 자기 부정성의 극복 방향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학생운동의 차원에서 민중을 향한 다양한 접근 루트의 모색으로 볼 수 있다.
기껏해야「공활」은 야학·지역조사·근로자 동조투쟁 등을 통해 사회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보조 지원으로서의 측면을 갖고 있다는 정도였다 (이상「공장활동안내서」).
이같은「공활」은 위장취업을 통한 단기간의 활동에 의해 이뤄졌고 대체로 85년 이전까지의 학생노동운동의 주류였다.
따라서 이 당시의 학생운동은「노동삼권보장」·「8시간 노동 확보」등 구호적·선언적인 성격의 노-학 연대라고 할 수 있다.
84년 2학기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를 위한 근로자·학생의 연합시위를 계기로 학생운동은 노동자 지원투쟁으로 방향을 전환, 지난해 l학기 대우어패럴사건으로 절정을 이뤘다.
이같은 노-학 연대는 올들어 지원투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노-학 동맹으로 발전되었다. 임금투쟁·지원투쟁은 하나의 전술이며 목표는「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계급의 정치권력 투쟁」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노-학 동맹군으로서 다양한 동맹관계를 창출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민주주의 투쟁선언」).
다양한 동맹관계가 의미하듯 노-학 연대의 형성은 가능한한 모든 방법이 이용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학생과 재야노동단체의 연결이다. 각 사업체의 단위노조가 제구실을 못하는 동안 재야의 노동단체가 구성원을 확장하고 영향력을 키워 실질적인 노동자지휘부의 역할을 하게 됐기 때문에 노-학 연대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지난해 6월 대우어패럴사건을 비롯한 구로지역 연대투쟁의 비타협적 전개이후 이를「노운」(노동운동)의 질적 발전과 방향정립의 계기로 삼아 대중정치투쟁조직의 모색과「정투」수행 등을 과제로 남겼다』(민민투, 반제 반군부 파쇼민중해방투쟁선언)며 노동운동의 방향전환을 선언했다. 이같은 시각은「자민투」도 같다.
학생들은 이에따라『노-학 연대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는「가투」(가두투쟁)에서 노동자 대중과 학생 대중이 동질감을 갖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학운」(학생운동)이「정투」의 선도체로서 자기위치와 역할을 통해 실현하고「노운」은 「경투」만이 아닌「정투」를 결합하여 수행할 때 각각의 실천적 상호견인과 전체운동의 정치적 계급의식화된 전위집단의 조직화된 지도능력이 지향될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예고된 노-학 연투=인천의 노-학 연대시위는 학생집회를 통해 예고된 것이었다.
운동권학생들은 최근 운동의 당면목표를 노동자와의 연대투쟁으로 설정하고 각종 집회를 통해「5월3일투쟁」을 준비해왔다.
이는 부분적으로 입장의 차이를 보여온 학생운동세력이 앞으로 강력하게 노-학 연대투쟁을 함께 펴나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인천시위」를 그 시발점으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투쟁방법=지난해 구로공단사태 이후 지하로 숨었던 노-학연투는 지난달초 서울대에서 민민투가 결성돼「민족민주투쟁」을 위해 이를 강조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투쟁의 주체는 노동대중이며 학생운동은 노동대중의 이익에 봉사하는 투쟁의 일주체』라고 노-학 연대를 강조했다(「민족민주전선」4월11일자).
이어 지난달 29일 연대에서 결성된 민민학련은 기관지「민족 민주 전선」을 통해 노-학연대의 기본토대 위에서 보다 구체적인 투쟁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론적 근거=민민학련은「민족 민주 전선」창간호(5월2일자)에서『현 단계의 혁명운동 목표는 운동의자연발생성을 극복한 통일된 조직의 형성과 이를 바탕으로 전위조직의 건설과 통일전선의 물적 토대를 건설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현 한반도의 운동을 분석할 때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성과 이념적 측면을 지닌 학생운동과 한국지역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의 연대는 현 당면목표를 수행할 수 있는 주요 집단』이라고 노-학연대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고 있다. 다시말하면「인천사태」는 과격파 반체제의 이념과 실천이 모두 극렬해진 모습을 여실히 들어낸 것이다.
민민학련은 이 신문에서 구체적으로 신민당의 인천행사와 관련, 『개헌지부에 운집하는 대중은 결코 신민당의 개헌서명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대중정치 투쟁의 장을 갈망하고 있다』며『「대중정투」가 인천을 정점으로 노-학연대의 구심 하에 전면화 되었을 때 5월 투쟁은「반제 반파쇼 민중해방투쟁」으로 비약된다』고 주장, 5월3일의 투쟁을 대대적으로 준비할 것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노-학 연대투쟁을 단순한 정치적 이슈투쟁의 차원이 아닌 민중혁명운동의 부분운동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5·3인천시위」에서의 노-학 연대시위는 단순한 노동권리의 확보나 개헌 등 정치적 요구가 아닌 극단적인 체제비판의 목소리로 나타났다.
◇전망=84년 학원자율화조치 이후「합법적인 투쟁」의 장을 획득한 학생운동은 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던 대학 출신자들의 현장노동운동 차원을 벗어나「지원투쟁」형식의 노-학 연대를 시도했다.
84년9월부터 네차례에 걸쳐「청계피복노조합법성 쟁취대회」가두시위가 있었으며, 85년1학기에 들어서는4월에 대우자동차노조농성지지시위, 6월에는 서울대생들의 대우어패럴농성장 가세시위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같은 연대투쟁은 근로자들의 경제투쟁이나 노동권리투쟁을 지원하는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이와는 달리「5·3인천시위」에서 나타난 노-학 연대는 최근의 학생운동이 노-학 연대를 「민중민주혁명론」에 입각한 혁명운동의 부분운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추진할 것을 선언하고있어 노학연투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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