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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리우 ‘감비아하’ 교훈…개·폐막식 축제 620억으로 끝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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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린 리우 올림픽이 21일(현지시간) 화려한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주경기장 마라카낭에 비바람이 쏟아졌지만 삼바 공연의 열기는 뜨거웠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로이터=뉴스1]

소박하지만 알찼다. 21일 오후 8시(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폐막식은 브라질의 문화적 저력을 새삼 확인시킨 자리였다. 브라질의 굴곡진 역사와 광활한 대지를 유려한 색감과 선율에 담아내면서도 다양성과 친환경 등 인류 보편의 이상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엔 뜨거운 삼바 리듬으로 열정을 토해냈다. 차기 올림픽은 1년6개월 남짓 남은 평창 겨울올림픽(2018년 2월 개막)이다. 과연 평창은 리우에서 무엇을 벤치마킹해야 할까.

18개월 앞둔 평창이 배워야할 것
런던올림픽 예산의 12분의 1 그쳐
평창, 절제의 올림픽 염두에 둬야
개막식의 빈민촌, 폐막식 때 노예
브라질 아픔 숨기는 대신 보듬어
평창도 정선아리랑 고려해볼 만

①보편성에 호소하라=리우 올림픽은 남미에서 열린 첫 번째 올림픽이었다. 브라질 문화는 삼바·보사노바 이외에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만큼 미지의 올림픽이었다. 그럼에도 리우가 낯설지 않았던 건 ‘자연성’과 ‘몸’이라는 보편적 테마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특히 폐막식은 생명이 탄생하고 사라지고, 또다시 잉태하는 과정을 함축한 일종의 다큐멘터리였다. 출발은 흙이었다. 브라질 현대무용단 그루포 코르포(groupo corpo)는 진흙에서 생명이 자라남을 땅을 지르밟는 몸짓으로 형상화했다. 그 흙이 불(성화)을 만나 꿈틀거리며 몸을 갖게 되지만,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에 의해 성화는 꺼진다. 그건 중단이 아니며 죽음도 아니다. 오히려 몸을 씻기는 정화 행위다. 물은 땅으로 다시 흘러 내려가 나무를 배양하고, 거대하게 자란 나무 아래에서 인간은 한바탕 삼바 축제를 벌인다. 흙-불-몸-물-흙의 순환 고리가 폐막식을 관통했다. 성기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는 “리우 올림픽은 인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본질적 질문을 던진, 인문학 교과서”라고 평했다.

김정효 서울대 체육철학 강사는 “기존 올림픽 개·폐막식은 자국주의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런던 올림픽의 경우 퀸·스파이스걸스 등을 등장시키며 폐막식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광대한 놀이터로 만들었다. 리우에서 그게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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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도 폐막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로이터=뉴스1]

②맥락과 이면을 담아라=리우 올림픽은 개막식에서 빈민촌 ‘파벨라’를 격자 모양으로 상징하며 묘사하는 등 큰 비중을 할애했다. 사회적 치부일 수 있는 지역을 전면에 내세운 건 이곳에서 삼바·소울·리듬앤드블루스 등이 결합된 브라질식 힙합 문화가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중요한 건 금기를 무작정 숨기기보다 그 원인과 이유를 섬세하게 보듬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폐막식이 역대 최악이라 비판받은 건 한류 스타와 K팝을 그저 나열하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리우 폐막식엔 레이스 짜는 여인이 등장했다. 브라질로 건너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애환을 그린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브라질은 이민자의 나라다. 16세기 포르투갈을 필두로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건너온 다인종 집결지였다. 이들은 서로 헐뜯고 싸우기보다 힘든 노동을 함께 나누며 땅에 순응하는 법을 익혀왔다. 적대보다 환대가, 정복보다 관용이 브라질의 정서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이런 역사적 흐름이 리우 개·폐막식에 녹아 있어 더욱 울림이 컸던 것이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리우 올림픽은 브라질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적 경험 등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객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이런 맥락에서 평창 올림픽의 콘셉트로 고된 삶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정선아리랑’(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을 고려할 만하다.

③거품을 빼라=리우 올림픽 개·폐막식 비용은 620여억원. 베이징 올림픽의 20분의 1, 런던 올림픽의 12분의 1 규모다. 물량 공세와 과시성 보여주기로만 치닫던 올림픽이 리우에서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다. 최첨단 하이테크놀로지의 향연은 담백한 아날로그 스타일로 변화되고 있다. 리우 폐막식에서도 정작 조명을 받은 이들은 자원봉사자와 일반 시민이었다.

성기완 교수는 “브라질엔 감비아하(Gambiarra), 즉 ‘없으면 없는 대로 고쳐 쓴다’는 전통이 있다. 알뜰함이 개·폐막식에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윤평중 교수는 “휘황찬란한 올림픽이 환영받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스포츠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만큼 절제의 올림픽이 시대정신임을 리우가 웅변하고 있다”며 “평창 올림픽 역시 새로운 시설을 짓는 데 비용을 투입하기보다 기존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재생·친환경 올림픽을 지향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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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쿄 올림픽을 소개하는 순서에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의 인기 게임 캐릭터 ‘수퍼 마리오’로 깜짝 등장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로이터=뉴스1]

◆아베 총리 등장 논란 일 듯=차기 여름올림픽은 2020년 도쿄다. 도쿄 올림픽을 알리는 문화공연이 리우 폐막식에서 8분가량 진행됐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깜짝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아베 총리는 출연 전 동영상에서 리우 폐막식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설정으로 나온다. 뒤이어 게임 캐릭터 ‘수퍼 마리오’로 변신해 도라에몽의 도움을 받고는, 동영상이 끝나는 시점에 마라카낭 경기장 한복판에 실제 모습을 드러냈다. 현직 총리가 사실상 차기 올림픽의 주인공인 양 등장한 모양새다.

아베 출연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탈정치성을 중시하는 올림픽 정신과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올림픽 주최는 ‘국가’가 아닌 ‘도시’다. 즉 시장이나 도지사의 책임하에 진행된다. 리우 폐막식에서도 올림픽기를 건네받은 건 도쿄 도지사 아닌가. 차기 올림픽을 알리는 데 정치 지도자가 직접 등장한 건 극히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정효 강사는 “도쿄 올림픽이 ‘아베 올림픽’임을 공공연히 드러낸 이벤트다. 아베의 정치적 야심이 올림픽 정신을 오염시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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