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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까지 뻗친 만리장성 지도 틀렸다”…사학계 입장차 좁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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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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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단·재야 사학자들이 ‘고대사 논란’의 중국 현장을 찾았다. 사진은 내몽고 츠펑을 찾은 학자들.

중국에서 그린 만리장성 지도를 보면 그 동쪽 끝이 북한 평양 까지 이어져 있다. 동북공정의 일환인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지도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의 역사지리학자 탄치시앙(1911~92)이 주도해 중국사회과학원에서 1996년 펴낸 『중국역사지도집』(총 8권)에도 그렇게 그려져 있다. 이 지도대로라면 만주 일대는 물론 한반도의 북부 지역까지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다. 이는 한국 재야사학계에서 강단사학계를 비판해온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중국의 그런 지도가 나온 근거를 한국 학자들이 제공해 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학계가 오히려 중국 동북 공정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재야 “중국 동북공정, 이병도 책임론”
강단 “지금은 그런 주장 거의 없다”
허베이성 갈석산 등 쟁점현장 찾아
“이런 자리 서울에서도 만들어야”

재야에 따르면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처음 끌어온 인물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였다. 이를 당시 조선사편수회 편수관이었던 이병도(1896∼1989) 전 서울대 사학과 교수가 받아들여 『한국고대사연구』 등에 반영했다고 재야는 비판해왔다. 문교부 장관, 학술원 회장을 지낸 이병도의 학설이 지금까지 우리 국사학계에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탄치시앙이 그 논리를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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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이 이 곳에 있었다고 국내 재야 사학계가 주장하는 허베이성 갈석산과 수암사.

19일 중국 내몽고 자치구 츠펑(赤峰)시에서 열린 한국 고대사 토론회.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호섭)이 강단과 재야 사학계 사이의 고대사 쟁점을 논란의 현장인 중국 땅에서 따져 양측 입장차를 좁혀보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이 행사에서 주목할 만한 상황이 전개됐다. 재야의 ‘이병도 책임론’ 비판에 강단 학자들은 “지금 만리장성을 그렇게 보는 국내 학자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그 일부가 누구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그동안 강단 학자들은 이런 사정에 대해 거론 자체를 꺼렸다. 금기되다시피 했던 내용이 공론화됐다는 점만으로도 의미 있는 자리였다.

강단 사학계에서는 공석구 한밭대 교수(고구려발해학회 회장), 윤용구 인천도시공사 문화재부장, 정인성 영남대 교수, 박준형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 재야에서는 “식민사학 비판”을 목표로 지난 6월 발족한 재야사학 연합체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 허성관 상임대표(전 행정자치부 장관), 이종찬 상임고문(전 국정원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고대사 연구가 황순종, 문성재 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이 참석했다.

3박4일을 함께하며 양측은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역사인식에 대한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침략한 후 설치한 낙랑군(한사군의 하나)의 위치가 첨예한 쟁점이었다. 재야는 첫날(18일) 답사한 허베이(河北)성 창리(昌黎)현의 갈석산(碣石山) 지역이 낙랑군이 설치됐던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덕일 소장은 중국 사료인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 기록된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는 내용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공석구 교수는 『삼국사기』 『고려사』 등을 근거로 낙랑군은 북한 평양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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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회과학원이 1996년에 펴낸 지도. 만리장성이 평양 부근까지 이어져있다.

둘째·셋째 날 답사한 츠펑 지역은 고대 유물이 잇따라 나와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북방 신석기 유적(홍산문화)과 청동기 유적(하가점하층문화) 발굴의 핵심 지역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중화문명의 연원을 끌어올리려고 한다. 반면 우리 재야사학계는 이 지역을 고조선·고구려와 연결시키려고 한다. 강단사학계는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강단과 재야는 고조선의 건국시기, 강역 등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요동(遼東)’의 위치에 대해서도 재야는 고대 요동이 갈석산 부근이었다는 입장이어서 오늘날 랴오닝성 요하(遼河) 동쪽을 가리키는 것과 다르다. 둘째날 토론 사회를 본 허성관 상임대표는 “이런 자리를 더 만들어야 한다. 중국에 오지 않고 서울에서 해도 된다”고 말했다. 김호섭 이사장은 “이런 논의를 계속할 예정이다. 작년부터 해온 대토론회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츠펑(중국)=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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