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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슬픈 전설 깃든 갓바위, 바다 분수쇼가 위로해주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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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목포 입암산 둘레길

8월의 추천길 주제는 ‘걷기여행길로 떠나는 휴가’다. 온 가족이 피서도 하고 걷기여행도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week&이 고른 곳은 전남 목포다. 목포에서도 신흥 명소로 떠오른 입암산(122m) 일대를 갔다 왔다. 낮에는 산 허리를 따라 들어선 ‘입암산 둘레길(3.5㎞)’을 산책 삼아 걷고 밤에는 조명이 들어오는 갓바위와 ‘춤추는 바다분수’를 감상하는 목포 1박2일 여행 코스를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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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 둘레길은 목포 남동쪽에 있는 입암산(122m) 산허리를 따라 조성되어 있다. 둘레길을 걸으며 바라본 목포 앞바다의 모습. 바다 건너는 영암군이다.

항구 도시에서 관광 도시로

난생 처음 목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목포는 여러 번 가본 적 있지만 목포에서 잠을 잔 것은 처음이었다. 목포는 늘 경유하는 곳이었다. 흑산도·홍도 등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해남·강진 등 남도의 다른 고장을 가는 길에 목포를 거쳤다.

목포시는 서남해 최대의 항구 도시다. 그러나 목포의 첫인상은 소박했다. 면적이 너무 작아서 놀랐다. 목포시 면적은 겨우 50㎢이다. 서울 서초구(47㎢)보다 조금 크다. 그나마도 땅이 넓어진 것이라고 했다. 현재 목포시 면적의 80%가 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성된 간척지다. 현재 목포시 인구는 24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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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에 올라 바라본 영산강 하구와 목포 원도심.

목포는 예부터 호남의 관문 도시였다. 한양에서 배를 타고 광주·나주 등 호남 내륙의 도시로 가려면 이곳을 거쳐야 했다. 목포가 항구 도시로 발전한 것은 1897년 개항 이후부터였다. 일제는 바다를 메운 땅에 관공서와 은행을 들이고 도로를 냈다. 국도 1호선(목포~신의주)과 국도 2호선 모두 목포(목포~부산)를 기점으로 한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들고 난다. 다도해의 수많은 섬은 물론이고 제주도 가는 배도 목포항에서 뜬다. 지난 1년 동안 8만 명이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들어갔다. 목포는 예나 지금이나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랬던 목포가 달라지고 있다. 경유 도시에서 머무는 도시로 변신 중에 있다. 2007년 해양문화특구로 지정된 뒤 목포시는 ‘빛의 도시’를 테마로 단장을 시작했다.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자해 갓바위·유달산·목포대교 등에 야간 조명을 설치했고, 바다 한 가운데 ‘춤추는 바다분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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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 능선. 곳곳에 묵직한 바위가 보인다.

목표의 오랜 명소는 유달산(228m)이지만, 요즘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은 입암산(122m) 주변이다. 입암산 동쪽의 하당 신도심은 1980년대 조성한 간척지다. 최근 목포 명소로 떠오른 춤추는 바다분수가 하당 신도심에 있다. 입암산 서쪽 능선에 국립해양유물전시관·목포자연사박물관 등이 들어선 갓바위 문화타운이 있어 가족이 함께 들르기에도 좋다.

바다를 품은 소박한 산책로

입암산 둘레길은 입암산 산허리를 따라 조성됐다. 바다와 맞닿은 갓바위에서 시작해 입암산에 오른 다음 고양이바위·황새바위 등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를 지나 동광농장을 거쳐 갓바위로 돌아오는 3.5㎞의 순환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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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과 바다가 맞닿은 지점에 있는 갓바위. 입암산 둘레길은 갓바위에서 시작한다.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된 갓바위는 바위가 갓을 쓰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었다.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암석이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에 깎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라고 했다. 갓바위 주변에 조성된 해상보행교를 걸었다. 바다 건너는 영암 땅이었다. 해안에 조성된 영암군 대불공단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웠다. 해상보행교를 지나 본격적으로 입암산에 올랐다. 왕자귀나무·떡갈나무·졸참나무·신갈나무 등이 우거져 시원한 그늘을 내줬다.

동광농장에서 본 배롱나무. 분홍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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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고양이를 닮은 고양이바위 앞까지 올랐다. 유달산과 목포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목포 원도심이었다. 무안군에 있는 전라남도도청도 내려다보였다. 목포 땅이 얼마나 작은지 다시금 느꼈다. 묘목을 키우는 동광농장 주변은 온통 벚나무였다. 초록 잎이 무성한 벚나무 사이로 빨간 꽃을 틔운 배롱나무가 간간이 보였다. 입암산 둘레길은 길이가 짧아 전부 둘러보는데 2시간이면 충분했다. 길도 험하지 않아 온 가족이 함께 걷기에도 적당해 보였다.

목포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육식공룡 알 둥지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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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을 걷고 난 다음에는 갓바위 문화타운으로 향했다. 육식공룡 알 둥지 화석을 전시한 목포자연사박물관은 특히 어린 아이에게 인기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박물관을 찾은 초등학생이 많았다.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목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고려청자와 난파선의 일부를 전시한 국립해양유물전시관도 인상적이었다. 무료 입장.

민어는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다. 부레와 살은 회로 먹고 껍질은 데쳐 먹는다. 뼈를 다져 마늘이 들어간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요리도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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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메뉴는 고민의 여지없이 민어를 골랐다. 신안군 임자도 근처에서 주로 잡히는 민어는 고급 생선이다. 수산시장에서 1㎏ 6만~7만원에 팔린다. 민어는 살이 차는 여름이 제철이다. 남도에서는 예부터 복달임 음식으로 민어탕을 먹었다. 만호동에 있는 중앙횟집으로 갔다. 목포시가 지정한 음식명인 김상복(63) 대표가 77년 문을 연 식당이다.

민어 정식을 시키자 회·탕·찜 등 다양한 민어 요리가 나왔다. 허옇고 미끈거리는 부레는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았고, 겨울 해풍에 말린 민어를 양념과 함께 쪄낸 민어찜도 별미였다. 민어 뼈와 머릿살을 넣고 끓인 민어탕은 약이라고 생각하고 마셨다. 정식 15만원(4인 기준). 061-242-5040.

목포 밤바다

밤에도 목포 여행은 이어졌다. 아니, 목포 여행은 밤이 하이라이트였다. 다시 갓바위를 찾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목포 앞바다는 낮보다 화려했다. 갓바위와 해상보행교, 멀리 떨어진 영산강 하굿둑에 경관 조명이 들어왔다.

“낮에 일부러 안 한 이야기가 있어요. 갓바위에 깃든 전설인데, 이렇게 야경을 보며 듣는 것이 훨씬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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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야경.

김향원(53) 해설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입암산 자락에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아버지를 부양하려고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한 달 만에 돈도 못 받고 쫓겨났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버지는 이미 숨진 뒤였다. 아버지 시신을 옮기던 청년이 실수로 시체를 바다에 빠뜨렸고, 망연자실한 청년은 아버지가 떨어진 곳으로 몸을 던졌다. 이후 부자가 빠진 자리에서 갓을 쓴 모양의 바위 두 개가 솟아났다고 한다. 왼쪽에 있는 것이 아버지 바위고, 오른 쪽에 있는 것이 아들 바위라고 했다.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는 아들이 갓을 쓰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모습이에요.”

갓바위에서 춤추는 바다분수가 있는 평화광장은 약 1.5㎞ 떨어져 있다. 해안을 따라 난 산책로를 걸어 평화광장까지 갔다.

춤추는 바다분수. 분수 물줄기는 음악에 맞춰 시시각각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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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쇼 시작 30분 전인데도 평화광장에는 벌써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9시 정각이 되자 276대 노즐에서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클래식·샹송·가요 등 다양한 음악에 맞춰 물줄기가 춤을 췄다.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진 물줄기는 최대 70m까지 솟아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황홀한 목포의 밤이 깊어갔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에 전시된 노벨평화상 복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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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전에는 삼학도를 찾았다. 삼학도는 육지에서 원래 100m 떨어진 섬이었는데, 68년 간척해 육지가 되었다. 목포시는 2011년 삼학도를 복원하면서 예전에 있던 물길을 되살렸다. 물길에서는 카누 체험을 진행한다. 바닷물이 흐르는 인공 수로에는 숭어·멸치 등 물고기가 많이 산다. 카누를 타다가 숭어가 튀어 배로 들어오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단다. 카누 체험 1시간 어른 1만원, 어린이 7000원. 카누체험장 바로 옆에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도 들렀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수감 중에 쓴 편지, 노벨평화상 복사본 등 유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노벨평화상 전시관은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를 재현했다고 했다. 무료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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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정보=서울에서 목포로 가려면 경부~서천공주~서해안 고속도로를 차례로 이용하면 된다. 약 4시간 걸린다. 입암산 둘레길은 길이도 짧고 길도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걸을 수 있다. 간간이 바위 위를 지나기 때문에 등산화를 신는 것이 좋다. 춤추는 바다분수는 화·수·목·일요일 하루 2회(오후 9시, 9시30분), 금·토요일 하루 3회(오후 9시, 9시30분, 10시) 가동된다. 무료. 목포시 관광과 061-270-8430~2.

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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