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연구 부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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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19혁명이 일어난지 26주년을 맞지만 4·19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4·19가「혁명」이냐「의거」냐의 명칭 문제를 놓고도 설왕설래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4·19의 명칭이 어찌됐든 그것이 20세기 후반기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뚜렷한 존재의 하나로 위치지워질 것이란 점은 더욱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학자들 사이에 우리 역사의 특징 하나를 들라면 한 왕조가 서기만 하면 5백년씩은 유지됐던 점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근대 이후 혁명이라 부를만한 대규모 민중운동이 각 시기마다 한차례씩 일어났으며 그것은 우리 역사의 활력소가 됐다.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4·19혁명이 그것이다.
4·19혁명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고 그 과정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비교적 컸기 때문에 현장인들의 자유로운 4·19론이 어느정도 나올수 있었다. 그러나 곧 5·16이 일어나고 그주도세력이 그후 20년 가까이 정권을 쥐면서 4·19에 대한 혁명론적 평가는 제한을 받고 4·19론은 더 발전하지 못했다.
80년대 들어와 일시 활기를 띠는듯 했으나 곧 잠잠해졌다. 자료집에 치중하면서 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4·19를 다룬 최초의 단행본은 60년10월 사월혁명청사 편찬회가 펴낸 현장 사진자료집 『민주한국사월혁명청사』였으며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논문집은 65년 박수만씨가 편집한 『사월혁명』이었다. 박종홍·김기석·황산덕·홍승일·송건호씨등 학자·언론인·학생 11명의평가와 체험담을 담았다.
70년대의 4·19연구는 매년 4월이나 돼야 잡지·대학신문등에 교수들의 논문 몇편이 선보일뿐 학계의 불모지대로 전락했다.
80년대 들어와 주목할만한 연구서로는 83년 한길사가 펴낸『4월혁명론』과 일월서각의『4·19혁명론I』을 들수있다.
『4월혁명론』은 4·19당시 학생·강사 또는 교수로서 현장을 체험했던 연구자들의 논문12편을 담고있다.
강만길. 고영복·고은·김학준씨등 12명이 집필했다.
4·19혁명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4·19혁명론I』또한 한완상·김학준·송건호·진덕규씨등 22명의 논문을 싣고있다. 4·19주역들과 연구자들, 대학생들의 논문을 각각 담고있다.
또하나의 논문집으론 청사가 83년에 펴낸『4월혁명』을 들수있다. 대학생 논문집이다.
80년대엔 이밖에 몇가지 자료집을 내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학민사가 84년에 펴낸 『사·일구의 민중사』는 4·19의 온갖 자료를 모은 책이다. 경북의 산촌마을 문경고등학교 학생들의 선언문에서부터 이승만대통령의 하야성명에 이르기까지 성명서·선언문·담화문·포고문·벽보등과 혁명참가자들의 투쟁기·일기·수기및 4·19에 대한 세계여론까지 모두 수집해 담았다.
학자들은 4·19가 미완의 혁명이며 1960년 4월19일에 시작돼 아직도 완성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진행형 혁명이라고 본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에 4·19에 대한 엄정한 연구분위기가 제한받아선 안되고 동시에 시급히 연구자들을 양성하는 일이라고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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