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화 “너의 과감한 공격에 가슴 졸여” 최정 “오빠가 위험할 땐 잡아주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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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화 7단(왼쪽)과 최정 6단이 SG배 페어바둑최강전에서 2년 연속 우승했다. 둘은 “서로 다른 기풍 덕분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반상 위 호흡만큼은 박승화(27) 7단, 최정(20) 6단을 따라잡을 자가 없다. 박 7단과 최 6단이 SG배 페어바둑최강전에서 또 한번 최고의 ‘환상의 커플’임을 입증했다.

꼼꼼한 수비 + 거침없는 공격
기풍 정반대인데 호흡은 척척
SG배 최강전서 2년 연속 우승

이들은 16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6회 SG배 페어바둑최강전 결승에서 김지석 9단-오유진 3단을 191수 만에 흑 불계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2년 연속 우승이다. 16일 결승전과 시상식이 끝난 뒤 한국기원에서 만난 박 7단과 최 6단은 “지난해보다 올해 대회에 잘 두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고, 우리 팀의 전략이 많이 노출돼 고비가 많았다”며 “서로 생각을 믿고 배려한 게 좋은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워낙 호흡이 잘 맞아 바둑 스타일도 비슷할 것 같지만 두 선수는 기풍이 정반대다. 박승화 7단은 촘촘한 수비형, 최정 6단은 거침없는 공격형이다. 박승화 7단은 “예전에는 스타일이 다르면 페어로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스타일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승화의 수비와 최정의 공격이 조화를 이루니 둘은 천하무적이 됐다. “내가 워낙 ‘못 먹어도 고’ 스타일이라 바둑에서 안정감이 부족한데 박승화 오빠가 위태로울 때 잡아주니까 승률이 좋았던 것 같아요.”(최정) “나는 바둑 둘 때 상대가 공격해도 움츠리고 있는 스타일인데 최정이 과감하게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대리 만족할 때가 많았어요.”(박승화)

물론 너무 다른 상대를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고 했다. 박승화 7단은 “그만 만족해도 좋은 상황인데 최정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질주해 옆에서 마음 졸일 때가 종종 있었다”고 했고, 최정 6단은 “나는 계속 공격해도 될 것 같은데 자꾸 박승화 오빠가 브레이크를 밟으니까 가끔 답답했다”고 말했다.

둘의 호흡을 시험에 들게 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8강전을 이틀 앞두고 두 사람이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 맞붙게 된 것. 결과는 최정의 승리였다. “최정에게 지고 난 뒤로 만나는 사람마다 제 패배를 언급해서 솔직히 괴로워요. 다시 최정과 둔다고 해서 이길 자신도 없지만 만약 또 지면 타격이 너무 클 것 같아서 다시는 두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최정이 박정환 9단보다 더 피하고 싶은 상대네요. 하하.”(박승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최고의 호흡을 입증해 보인 두 사람이지만 내년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박승화 7단이 올해 말께 군대에 입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박 7단은 “원래 지난해 군대에 가려고 했는데, 올해 최정과 페어대회에 다시 출전할 기회가 주어져서 입대를 미뤘다”고 했다. “입대 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이번 대회 우승이 더욱 간절했다”는 속내도 털어놓았다.

환상의 짝꿍을 잃은 최정 6단의 내년 행보는 어떻게 될까. 최정 6단은 “아직 누구와 함께 페어대회에 나갈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이세돌 9단과 한번 팀을 이뤄보고 싶다. 내가 그분의 수읽기를 헤아리기 쉽지 않겠지만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이에 박승화 7단은 “나는 2년 후에 최정과 같이 페어대회에 나가고 싶다. 최정이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SG배 페어바둑최강전=남녀가 짝을 이뤄 팀 단위로 승부를 겨루는 대회로, 네 명의 선수가 한 수씩 돌아가며 둔다. 대국을 시작하기 전에 각 팀이 원하는 ‘덤’을 제시하고, 더 많이 제안한 쪽이 흑을 잡는 ‘덤 베팅제’를 적용한다. 제한 시간은 각자 10분에 초읽기 40초 3회씩. 우승 상금 3000만원, 준우승 상금 1500만원이다.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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