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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무너진 터널 속 자욱한 먼지, 사실은 콩가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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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의 연기가 돋보인 ‘터널’. [사진 쇼박스]

관객 400만명 돌파를 앞둔 영화 ‘터널’(김성훈 감독). 영화 시작 5분만에 무너진 터널에 갇힌 남자 정수(하정우)의 분투기다. 안전이 붕괴된 상황이 사회상을 반영하는 한편, 터널에 갇혀서도 마냥 괴로워하기 보다 희망을 놓지 않는 점이 관객을 사로잡은 요인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재난영화로서 긴박감이 돋보인다. 이동윤 프로듀서 등 스태프들로부터 리얼한 재난 현장을 만들기 위한 제작 뒷얘기를 들었다.

400만 앞둔 영화 ‘터널’ 제작기
30년 전 폐쇄 옥천터널 두 달간 고쳐
아스팔트 까는 비용만 10억 들어
미술감독 “건설현장 소장 같았다”
하정우, 재난 상황처럼 즉흥 연기

‘하정우의, 하정우에 의한, 하정우를 위한’ 영화라는 평을 듣는 이 영화에서 김성훈 감독이 그에게 주문한 건 날 것 같은 연기였다. 기본적인 대사나 행동은 정해놓고, 그 외 모든 것이 즉흥적이길 원했다. 에너지를 빼앗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따로 리허설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물건을 꺼낸다’ 같은 상황만 주고 20분 넘게 롱테이크로 즉흥 연기를 하게 한 다음 재미있는 부분만 골랐다. “이런 촬영 방식은 배우로서 신나는 경험이었다. 스태프들이 마치 관객처럼 내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나는 어떤 연기로 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늘 행복한 고민을 했다”고 하정우는 말했다.

주 촬영지는 1980년대부터 폐쇄된 충북 옥천터널이었다. 원래 섭외했던 곳이 취소되면서 급하게 찾은 옥천터널의 첫 인상은 “핵전쟁 이후에 20년간 방치된 느낌”(이동윤). 모든 스태프들이 두 달간 달라붙어 작업한 끝에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터널의 모습을 갖췄다. 미술팀은 터널 입구에 200m 아스팔트 도로도 깔았다. 순제작비 80억원 중 10억원이 길 닦고 터널 보수 하는데 들어갔을 정도다. 사고가 난 터널 내부는 안성 DIMA 종합촬영소에 세트를 지어 찍었다.

터널 밖 풍경만큼은 항공 촬영으로 시원하게 보여주자는 게 김태성 촬영감독의 생각이었다. 드론 배터리 때문에 한번에 촬영이 가능한 시간은 최대 4분. 그 안에 원하는 그림을 건져야 하는 ‘시간 싸움’이었다. 영화에는 수십 대의 드론이 동시에 터널로 진입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는 드론 동호회 회원들의 협조로 완성했다. 무너진 터널 안 자욱한 분진과 먼지의 정체는 ‘콩가루+숯가루+미숫가루’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만든 마법의 가루.

재난과 구조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진은 해외 붕괴 사례 자료와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 산 위에서 구조대원 오달수가 터널로 내려가려고 탄 캡슐 모양의 노란 통은 2010년 칠레 탄광 매몰사고 때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나사에서 제작한 구조 캡슐을 참고해서 만들었다. 이후경 미술 감독은 “미술감독이 아니라 건설 현장의 소장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극중 통화 장면은 모두 실제로 통화를 하며 촬영했다. 해외에서 미국드라마 ‘센스8’을 찍고 있던 배두나는 새벽에 일어나 한국의 하정우와 통화하면서 연기를 맞췄다. 배두나의 촬영 땐 집에서 쉬던 하정우가 직접 전화를 받아 상대 연기를 했다.

하정우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강아지 탱이. 영화 속에서는 한 마리지만 사실은 곰탱이, 밤탱이 퍼그 형제가 돌아가며 촬영했다. 새끼 때부터 동물 전문 트레이너에게 훈련을 받으며 ‘터널’ 촬영을 준비했다. 촬영 시 갑작스러운 어둠이나 차체의 쇠 냄새 등에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어 실제로도 폐차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이은선·이지영 기자 h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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