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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베로나·나폴리·파리…석촌호수 뒤 ‘유럽의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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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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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석촌호수 일대에서 가장 ‘핫’한 거리는 호숫가 대로변 뒤쪽에 위치한 백제고분로41길이다. 길이 600m 남짓한 거리지만 쨍한 노랑·초록·파랑·보라 페인트를 칠한 유럽풍 식당이 밀집해 있다. 이 거리에 알록달록한 이국적 풍경이 들어선 것은 불과 1~2년 전부터다. 조용한 골목 상권에 매력을 느낀 젊은 오너들이 하나둘 자리 잡으며 식당 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뉴질랜드·일본 식당…. 저마다 현지를 먼저 여행하고 맛과 분위기를 서울로 그대로 옮겨 놓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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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호수는 서울 도심에 있는 호수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동호수와 서호수로 나뉘며 산책로를 포함해 약 21만7850㎡에 걸쳐 도심 속 자연휴양림이 펼쳐진다. 하지만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벚꽃 시즌 말고는 일대에 특별히 붐비는 맛집 거리는 딱히 없다. 이처럼 미식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던 이 동네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건 1~2년 전 유럽풍 식당들이 들어서면서다. 석촌호수 사거리와 방이삼거리 사이 석촌호수로 대로변 한 블록 뒤에 위치한 이 거리는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색색의 간판과 외관으로 서울시내 어디에도 없는 개성 있는 거리로 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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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리틀 이태리

석촌호수 사거리에 가까운 잠실 아르누보 팰리스 아파트 옆 골목으로 진입하면 이탈리아 레스토랑 ‘엘리스 리틀 이태리’가 먼저 보인다. 파란색 차양에 영문 필기체로 휘갈겨 쓴 가게 이름, 벽에 달려 있는 가스등이 이국적인 풍모를 뽐낸다. 15년간 국내외 호텔 및 레스토랑에서 세계 각국의 요리를 배운 김효남 셰프가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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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과 새우, 방울토마토를 올린 ‘엘리스 리틀 이태리’의 감베리 & 풍기 피자. [사진 김경록 기자], [사진 각 업체]

김 셰프는 유럽에서 일할 때 나폴리를 1년 넘게 오가며 화덕피자 굽는 법을 배웠다. 매장 안쪽에 화산재 돌판 화덕을 갖추고 3일 동안 저온 숙성시킨 도우 반죽을 굽는다. 물과 밀가루 비율을 7대 3으로 맞춘 도우는 바삭하고 고소하다. 엘리스 리틀 이태리의 단골인 예현희(35·송파1동)씨는 “요즘 뜨는 동네라고 해서 가 보면 유행을 좇는 인테리어와 메뉴 때문에 오히려 조악한 식당이 많은데 이 골목에는 가게 콘셉트와 인테리어, 맛이 조화롭게 어울린 식당이 많다”고 말했다.

석촌호수 사거리~방이삼거리 600m
작지만 개성 있는 외관·맛으로 입소문
나폴리 1년 오가며 배운 화덕피자
산티아고 순례길서 맛본 맥주·오믈렛
마카롱·밀푀유 등 세계 각국 디저트
브런치·커피·저녁·칵테일까지 가능

실제로 이 거리의 식당 오너들 중에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거나 거주하며 현지 요리를 배운 경험을 통해 메뉴를 짜고 인테리어를 꾸민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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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베르게

스페인식 카페 ‘알베르게’도 그렇다. 2008년,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스페인과 사랑에 빠진 전승연 대표가 오픈한 이곳은 상호명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 전용자 숙소의 이름이다. 카페에서 파는 음료와 메뉴도 모두 전 대표가 순례길을 여행하며 직접 맛본 것들이다. 비를 맞아 추위에 덜덜 떨다 들어간 카페에서 마셨던 스페인식 카페라테 콘레체, 한여름 땡볕에 지쳐 우연히 들른 바에서 경험한 스페인 맥주 에스텔라 담, 쫄쫄 굶다 허겁지겁 먹었던 스페인식 오믈렛 등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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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식 오믈렛과 샐러드, 치즈 등으로 구성된 ‘카페 알베르게’의 스패니시 플레이트. [사진 김경록 기자], [사진 각 업체]

알베르게부터 방이삼거리까지 직진하면 약 600m에 걸쳐 각기 다른 개성의 외관을 자랑하는 가게들이 크리스마스 트리 속 색 전구알처럼 등장한다. 까만 나무 몰딩을 덧댄 유리문과 심플한 타이포그래피 간판을 단 ‘그리지 하우스’, 빨간색 건물에 큼지막한 금색 로고를 단 카페 ‘유 달리’, 녹색 페인트 문과 실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창의 조합이 멋스러운 뉴질랜드식 브런치 카페 ‘뉴질랜드 스토리’가 차례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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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타 구떼.

보라색 차양을 단 로맨틱한 식당 ‘프레타 구떼’는 르코르동 블루 제과 분야를 졸업한 이소영 대표가 차린 이 거리 유일의 디저트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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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동 블루 출신 이소영 셰프가 운영하는 ‘프레타 구떼’의 대표 메뉴 마카롱. [사진 김경록 기자], [사진 각 업체]

상시 판매하는 대표 메뉴는 마카롱이지만 밀푀유, 무스 케이크, 티라미수, 레드벨벳 케이크 등 세계 각국의 디저트 메뉴를 계절별로 매번 바꿔가며 선보이고 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여름 한정판 생크림 복숭아 케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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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네

바로 맞은편엔 녹색 차양이 시원하고 이국적으로 보이는 ‘바베네’가 있다. 10년간 청담·압구정동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박재명씨가 아내 김정화씨와 함께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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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식 참숯 그릴을 갖춘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베네’의 양갈비 스테이크. [사진 김경록 기자], [사진 각 업체]

박 셰프는 식당을 오픈하기 전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를 여행하며 현지식 정통 참숯 스테이크 굽는 법을 배웠다. 장작을 때서 숯을 굽고, 그 위에 그릴을 올려 고기를 굽는 방식이다. 별다른 허브 양념 없이 볶은 천일염과 통후추만으로 간을 맞추는데 훈연 향이 깊게 배는 게 특징이다. 생면 파스타는 하루 동안 숙성한 날달걀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다음 매장에서 매일 직접 뽑는다. 쫄깃한 식감은 덜하지만 끝맛이 고소하다. 셰프가 매일 아침 가락시장에서 사온 조개를 듬뿍 넣어주는 봉골레 스파게티는 ‘아이들이 손으로 집어 먹을 정도’로 좋아해 의도치 않게 키즈 메뉴로 등극했다.

이 외에도 수제맥주를 파는 ‘맥주유소’, 일본식 카레를 파는 ‘키이로메시야’, 개성 충만한 카페 ‘커피공작소’까지 특색 있는 가게 10여 곳이 백제고분로41길 양쪽에 늘어서 있다. 이들 주인장의 평균 연령대는 30대다. 토박이 잠실 주민은 아니고 모두 권리금이 낮고 조용한 골목길을 찾아 외지에서 온 젊은 오너들이다. 바베네의 김정화 대표는 “대로변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골목 뒤쪽으론 빌라촌이 있는 주택단지가 들어서 있어 음식만 맛있으면 손님 수요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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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루이, 작은 바 ‘카페 루이’에선 바텐더의 창작 칵테일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사진 각 업체]

백제고분로41길을 다 둘러보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점심, 디저트, 낮술, 저녁 식사까지 식당 종류가 다양해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종일 머물 수도 있다. 그대로 돌아가기 아쉽다면 한 블록 바로 뒤에 있는 바 ‘카페 루이’에서 칵테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다. 입구가 눈에 잘 띄지 않아 단골들만 찾는다는 명소다.

음식상식 스페인식 오믈렛

부침개처럼 얇게 부친 달걀로 속재료를 감싸는 미국식 오믈렛과 달리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른 후 큼직하게 썬 감자·양파 등을 볶다가 곱게 푼 달걀 물을 부어 서서히 함께 익힌다. 스페인에서는 ‘토르티야 에스파뇰라’라고 부르며 피자처럼 조각내 잘라 먹는다.

글=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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