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스테이지] 뿌리 못내리는 공연시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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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는 음악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무대 중 하나다. 두 말할 나위 없이 해마다 어김없이 전석 매진기록을 수립해왔다. 섣달 그믐날 밤 10시에 시작해 음악과 함께 새해를 맞는, 뜻깊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초 예술의전당이'본격적인 공연 시즌제'를 선언하면서 '코리안 월드 스타 시리즈'에 포함시켰던 소프라노 홍혜경씨의 제야음악회는 현재 인터넷 예매가 중단된 상태다. 계약서 사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진을 성급하게 발표했다가 계약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새 출연진도 아직 미정이다.

시즌제란 이르게는 8개월 전, 늦어도 3개월 전에 1년 단위의 공연계획을 미리 발표해 잠재적 관객의 예매를 유도하는 선진국형 마케팅 기법이다. 프로그램.연주자.가격 등을 미리 공개하면서 티켓 예매를 시작하는 한편 할인 혜택을 주면서 공연 관람을 미리 계획하도록 유도하는 관객 서비스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이 2003~2004년 시즌의 공연 일정 발표와 함께 일제히 티켓 발매를 하지 않아 시즌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내년 3월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출연하는 런던심포니 공연 티켓은 아직 살 수 없다.

예매자들의 입맛을 돋우는 패키지 할인도 오페라 2편과 무용 2~3편을 묶어 13~20%를 할인해 주는 게 고작이다. 나머지는 낱장 티켓을 미리 구입하라는 얘기다.

제야음악회처럼 전석매진이 불을 보듯 뻔한 공연이라면 몰라도 할인 혜택이 없어 예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낱장 티켓에 10~20%의 할인 혜택을 주는 기존의 회원제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지자체 최초로 시즌제를 도입한 부천문화재단(www.bcf.or.kr)의 경우는 그래도 낫다. 17편의 작품 중 자유 선택 프로그램 2~4개는 10%, 5편 이상은 20%, 조기 예매(8월 31일까지)는 10% 할인 혜택이 있다.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조기 예매까지 하면 최고 30%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즌제의 핵심은 공연 프로그램의 내용과 질이다. 할인 혜택은 부수적인 서비스일 뿐이다. 외국에서 시즌 프로그램 발표를 예술감독이 직접 나서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테마나 예술적 비전, 통일성 없이는 패키지 상품 개발도 어렵다. '본격적인 시즌제'실시를 위해선 아직도 보완해야 할 일이 많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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