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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 상상하는 것이 예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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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8 면

실향민 어르신들이 가로세로 7.6cm(3인치) 종이에 그려낸 고향에 대한 추억들.

뉴욕에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강익중(56)은 흔히 ‘3인치 작가’로 불린다. 가로세로 7.6cm 정사각형에 다양한 모습을 그리거나 새긴 뒤 부지런히 모아 촘촘히 설치한다. 딱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의 이 작은 공간이 작가에게는 세상을 보는 창(窓)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다.


주로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작업을 해왔던 그가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범위를 새로 조정했다. 북녘에 두고 온 고향을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는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이다. 그는 올 초부터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과 함께 전국을 돌며 실향민 어르신들에게 고향의 모습을 그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은 작은 그림 1만5000장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설치하고 광복 71주년인 15일 일반에 공개한다. 이름하여 ‘꿈에 그린 북녘’ 프로젝트다.


특히 이 그림 중에서 골라낸 500장을 가로세로 70cm 짜리 한지에 확대출력해 건물 3층 크기의 직육면체 연등(11?10? 10m)으로 만들어 9월 한 달간 런던 템스강 한복판에 띄워놓고 전세계 사람들에게 통일에의 열망을 알린다. ‘집으로 가는 길(Floating Dreams)’이라는 제목의 이 설치 작품은 20년째 런던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토털리 템스(Totally Thames)’에서 올해의 메인 프로젝트로 선정됐다.


그는 왜 실향민들의 그림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일까. 그에게 이 그림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잠시 귀국한 그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만나 ‘통일을 위한 예술가의 꿈’을 물었다.

강익중 1960년 충북 청주생. 홍익대-뉴욕 프랫대(Pratt Institute).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의 2인전 ‘멀티플 다이얼로그’를 했다. 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받았다. 99년 이후 아이들이 3 x 3 인치 크기에 그린 그림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작업한 공공미술 설치작품을 선보여 왔다. 2001년 UN본부에서 전세계 5만 어린이들의 꿈을 담은 ‘놀라운 세상(Amazed World)’ 전시로 주목받았다. 광화문 보수공사를 위한 가림막 프로젝트 ‘광화에 뜬 달’(2008), 중국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의 외관을 4만2000점의 한글 작품으로 덮은 ‘내가 아는 것’(2010), 순천정원박람회장 내 동서 구간을 어린이 14만5000명의 그림으로 연결한 길이 180m 짜리 ‘꿈의 다리’(2014) 등이 대표작이다. 10월에는 서울 흥국생명빌딩에서 세화미술관 개관전으로 첫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다.

실향민들의 그림이 3인치 작품이 되어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설치된 모습

강익중 작가는 말이 빨랐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말하면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러면서 또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 주로 어린이 그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이유가 있나요. “어린이들은 미래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과거가 없으니까요. 반면 어른들은 과거가 현재를 보는 틀이죠. 저는 그림을 통해 미래로 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1997년에 아이들 그림을 모아 ‘꿈의 다리’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고 9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19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실향민 그림으로 바뀐 이유는. “런던 ‘토털리 템스’의 의뢰를 받고 나서 지난해 9월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기가 떠올라 난민 어린이 이야기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왠지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진짜 난민은 우리 할아버지인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우리 민족의 문제를 국제화할 수 있나’ 하는 고민도 생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보니까 템스강을 중심으로 런던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임진강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템스는 런던을 나누는 강이 아니라 이어주는 강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강은 사람 몸으로 치면 핏줄과 같은 것이거든요. 실향민도 결국 난민이고, 임진강과 템스강은 서로 이어지고, 이것을 통해 ‘세계 평화의 백신을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하게 됐습니다.”


실향민 어르신들께는 어떻게 요청드렸나요. “그냥 ‘어릴 적 놀던 고향을 한 번 그려 주시겠어요’하고 여쭤요. 처음엔 대부분 안 그린다고 하시죠. 막 떠들고 웃고 하다가 어느 순간 굉장히 몰입해서 그리시게 되는데, 뭉클했던 것이 나중에 가면 다들 우시더라고요. 고향 마을을 그리다가 거기서 문득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거죠. 사실 실향민 그림은 처음엔 하나의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접근했는데,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가 반성을 많이 했어요. ‘가장 중요한 게 이 분들의 말씀을 들어드리는 것이구나, 그게 우리 세대가 꼭 해야할 일이구나’하는 각오도 생겼습니다.”


흥미로운 그림이 많던데. “그냥 무지개만 하나 그려놓은 분도 계셨어요. 이유를 여쭤보니 ‘고향이라 하면 그냥 무지개 밖에 생각이 안 나’하시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다가 ‘너희 동네는 이런 거 없었지? 우리는 있었다’라고 서로 말싸움 하신 분들도 계셨고. 한 장 한 장이 얼마나 진실된 지 몰라요. 진실은 마음을 움직입니다.”

조선의 개국 연도를 연상시키는 1392개의 작은 달항아리가 바닥에 깔려 있는 작품.

‘금수강산’(2015). 임진강 위에 70개의 달항아리가 둥둥 떠서 돌고 있는 모습으로 단절과 경계를 넘어 하나 될 강과 산을 소망하고 있다.

통일 기착지는 더불어 사는 홍익인간의 땅이어야 실향민 프로젝트는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건가요. “사실 계기는 오래됐어요. 베니스비엔날레 마치고 나서 ‘이렇게 평생 화랑·미술관 전시만 하면서 살 건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어린이 작품 프로젝트도 그렇게 시작된 것인데, 언젠가 평양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으기 위해 베이징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옆 자리의 부산 할머니가 활주로에 있는 고려항공 소형 여객기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이고 마, 우리 뱅기 와 이리 작노.’ 그 ‘우리’라는 소리에 제가 마음속으로 손을 번쩍 들었어요. ‘남북을 연결하는 일을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하고요. 어떻게? ‘작품으로요.’ 일단 손을 드니까 일이 이어지네요. ‘꿈의 다리’로 가기 위한 과정이겠죠.”


그렇게 통일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거군요. “네. 그런데 꿈만 꾸면 통일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실제로 어망을 짜야하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또 짜기만 해서는 안 돼요. 통일 이후 벌어질 일들까지 미리 미리 생각해놓아야 해요. 그게 바로 예술가의 역할입니다.”


예술가의 역할이라면. “저는 작가의 의무 중 하나가 망망대해에서 ‘어망’을 던지는 일이라고 봅니다. 과학자는 고기를 잡고, 경제인은 잡은 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정치인인 그것을 잘라서 나눠주는 사람이죠. 이게 다 연결이 되어 있는데, 연결의 시작은 예술가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죠. 예술은 정치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상상해야 합니다.”


연결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을 잇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과 북, 좌와 우, 과거와 미래, 질문과 응답, 문제와 해결, 호남과 영남, 부자와 가난한 자 등등을 서로 연결하고 싶어요. 연결하는 저를 보고 싶어요. 그런데 파이프 같은 것을 보세요. 둘이 연결이 되려면 파이프는 속이 비어 있어야 해요. 비어 있어야 채워질 수 있어요. 비워놓아도 곧 채워지는 것이고요.”


그럼 통일 후를 위해 준비할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어 ‘2026년 남북 축구 단일팀을 만들자’ 한다면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요. 그것부터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는 거죠. 달나라에 같이 우주인을 보낼 수도 있고요. 화살을 과녁에 맞추기 위해서는 과녁 너머를 봐야 하거든요. 그런데 정치인들은 바둑을 두면서 커다란 판을 안 보고 이기려는 수만 보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원래 예술에서는 기다림이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뜸을 들인다’는 말을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냄새를 맡으며 얼마나 맛있는 밥이 될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혹시 제가 못해도 다음 세대에서 누가 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한데. “그래서 이 작품은 제가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원봉사자까지 모두 함께 만드는 것이죠. 리더와 팔로워가 호흡이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요즘의 리더는 깃발 들고 앞서 나가는 영웅이 아닙니다. 21세기의 리더는 같이 놀아야 합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연결하는 연결자가 진정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통일이란 비행기가 있습니다. 연료는 꿈이고요. 좌우의 날개는 같아야 해요. 우파는 좌파가, 좌파는 우파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죠. 바람도 있어야 합니다. 자유라는 바람을 타고 날아야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내릴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곳은 홍익인간이라는 땅입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곳이죠. 더불어 사는 곳이고, 서로 아끼고 나눠주는 곳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것을 배워야 하고 그걸 가르쳐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통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템스강 위에 띄우는 500개의 소원 ‘토털리 템스’는 전세계에서 200여 명의 아티스트와 퍼포머들이 초청돼 68km에 이르는 템스강 주변을 9월 1일부터 한 달간 문화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1000만명에 이르는 관람객과 함께 즐기는 행사다. 강익중은 2016년의 메인 작가로 초대됐다. 템스강 위에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 행사 총괄 디렉터인 아드리안 에반스는 “템스강을 주제로 하는 만큼 강변 토크를 비롯해 강과 관련된 150개 정도의 프로젝트가 진행 된다”고 지난달 기자 간담회에서 설명했다. 9월 17일에는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도 열릴 예정이다. 9월 중 런던의 로빌런트&보에나 갤러리(Robilant & Voena Gallery)에서는 작가의 개인전도 개최된다.


강 위에 어떻게 작품을 띄우나요. “바지선 위에 인조 바위를 만들고 그 위에 설치합니다. 그림을 프린트한 한지에 방수 코팅제를 바르고 뒤에 얇은 플라스틱을 덧댄 뒤 3파장 등(燈)을 하나씩 연결하죠. 한 면에 100개씩 다섯 개 면이니 500개의 그림과 등이 모자이크처럼 직조돼 연등처럼 강 위에서 불을 밝히는 겁니다.”


맨 위에 있는 어린아이 조각은 무엇인가요. “손전등을 들고 불을 밝히는 로봇 아이인데 조금씩 움직입니다. 통일의 꿈을 잃지 않고 있는 어르신들의 어릴 적 모습이자 희망을 품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죠.”


강 한가운데 떠 있으면 그림 내용이 잘 안 보일 텐데요. “시내 기차역과 공공장소에 포스터 3000장이 배포될 예정인데, 거기에 QR 코드를 넣었습니다. 500분 중 30분을 추려서 하루 1분씩 그림에 얽힌 사연을 알 수 있게 했고요.”


템스강 전시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 “분쟁 지역으로, 아픔 있는 지역으로 계속 다녔으면 싶어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품고 있는 희망을 세상의 모든 난민들과 나누고 싶거든요.”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강익중 작가·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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