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2016] 바흐 “남북 체조 이은주·홍은정 셀카는 위대한 몸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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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50m 권총은 잘 쏴놓구선 10m 공기권총은 왜 이리 못 쐈네?”(북한 사격대표 김정수)

세계에 퍼져나간 남북 선수단 접촉
BBC “가장 상징적인 올림픽 사진”
북 김성국 축하 포옹 받은 진종오
“너 앞으로 형 보면 친한 척해라”
북 강은주 “얼굴 못 봐요” 촬영 피해

“에이~ 형도 못 쐈잖아요.”(한국 대표 진종오)

“내래 나이가 많아서 기렇디.”(김정수)

“형만 나이 먹었나요. 나랑 두 살밖에 차이 안 나요.”(진종오)

지난 11일 남북 사격대표팀 대표로 출전한 진종오(37·kt)와 김정수(39)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튿날인 12일 진종오는 전날 리우 올림픽 사격 50m 권총 3연패를 달성하면서 북한의 김정수와 사대 뒤편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전했다. 두 사람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만난 뒤 수차례 국제대회에서 맞대결을 펼치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지난 7일 10m 공기권총에서 5위에 그쳤던 진종오는 11일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은 김정수는 리우 올림픽 10m 공기권총에서 27위, 50m 권총에선 24위에 그쳤다. 대신 무명의 김성국(31)이 50m 권총에서 진종오에 이어 동메달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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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오의 우승이 확정되자 가장 먼저 다가가 포옹을 나눈 김성국은 기자회견에서 “1등과 3등이 하나의 조선에서 나오면 더 큰 메달이 된다”며 통일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진종오는 "전날 시상식에서 김성국을 만나 ‘너 앞으로 형 보면 친한 척해라’고 말했다. 동생이 한 명 생겼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반도에서 남북 관계는 꽁꽁 얼어붙었지만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지구 반대편 리우에서는 훈훈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남북 선수들은 정치적 대립을 떠나 기회 있을 때마다 대화를 나누며 한민족의 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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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여자 기계체조에 출전한 이은주(17·강원체고)는 북한의 홍은정(27)에게 다가가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었다. 이 장면이 외국 기자의 사진기에 담기면서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이은주는 당시 천진난만하게 홍은정에게 다가가 “언니! 사진 찍어요”라고 말했다.

토마스 바흐(63)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두 선수의 셀카 사진을 보고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영국 BBC는 “올림픽의 가장 상징적인 사진”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은 12일 “한국과 북한은 핵 문제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리우에서는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11일 사격장에서 만난 북한 사격대표팀 관계자는 기자에게 북한 담배를 건넨 뒤 한참 동안 사격 이야기를 나눴다. 11일 여자 양궁의 장혜진(29·LH)은 개인전 16강에서 북한의 강은주(21)와 맞대결을 펼쳐 6-2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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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여자 양궁 한승훈(43) 코치는 같은 사대에서 연습하던 북한 선수단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의했다. 북한 코치는 “못 찍겠다”고 했지만 한 코치는 “그럼 옆에 서 있기만 하세요”라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뒤 사진 촬영을 했다. 북한 강은주는 “(셀카 사진을) 전 못 봅니다”며 시선을 피하면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장혜진은 “2013년엔 은주가 날 ‘언니’라 부르며 활 쏘는 방법과 자세를 자세히 물었다. 그러나 최근엔 경호가 심해져 아는 체를 못했다”고 전했다.

리우=박린·김원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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