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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배우들의 '특훈'으로 완성된 현장감 100% 스포츠영화, '국가대표2' 제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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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2’(8월 10일 개봉, 김종현 감독)는 2009년 관객 848만 명을 모은 ‘‘국가대표’(김용화 감독)의 속편’이라기보다, ‘아이스하키를 다룬 첫 한국영화’라는 수식이 더 잘 어울린다. 스키점프 남자 국가대표팀의 창단기를 다룬 ‘국가대표’와 달리, ‘국가대표2’는 아이스하키 여자 국가대표팀이 2003년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실화를 각색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국가대표팀에 모인 오합지졸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피땀 흘리며 훈련한 끝에 아시안게임에 나가는 이야기다. 126분의 상영 시간 중 절반가량을 경기 장면이 차지하는 데다, 배우들이 직접 얼음판 위에서 달리고 구르고 부딪치는 듯한 생동감이 넘친다. 지난겨울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처음 타는 배우들을 비롯해 수십 명의 스태프가 하나 되어 만든 이 뜨거운 스포츠영화의 제작 과정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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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2 [중앙포토]

치밀하게 설계된 경기 장면

아이스하키영화 '국가대표2' 제작기

임시방편으로 창단된 비인기 스포츠 종목의 국가대표팀. 눈물겨운 훈련 끝에 국제 대회에 출전해 그들만의 값진 승리를 일군다. 이 영화가 ‘국가대표’에서 가져온 설정은 이게 전부다. 그보다 직접적인 모티브는, 2003년 한국 최초 아이스하키 여자 국가대표팀의 동계 아시안게임 출전 실화다.

그중에서도 북한 국가대표 출신으로 1999년 남한에 정착한 뒤 한국 국가대표로 선발돼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황보영의 이야기는 주인공 지원(수애)의 캐릭터를 만드는 밑받침이 됐다. 정철·유영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김종현(46)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국가대표2’는 야구영화 ‘슈퍼스타 감사용’(2004)에 이어 그가 연출한 두 번째 스포츠영화다.

김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은 한·중·일 남자 아이스하키 팀들이 모이는 아시아리그 경기를 관람하며, 이 스포츠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탐구했다. 김 감독이 그때를 회상한다. “경기 내용이 아주 격렬하고 박진감 넘치더라. 원초적으로 싸우던 양팀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자 서로 끌어안고 다독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 박진감과 스포츠 정신을 이 영화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매력을 영화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제작진은 실제 미국의 남자 선수들이 배우로 출연한 아이스하키영화 ‘미라클’(2004, 개빈 오코너 감독), NHL(National Hockey League·북미 프로 아이스하키 리그) 영상, 아이스하키 비디오 게임 영상, 아이스하키와 비슷하게 격렬한 몸싸움이 허용되는 미식축구 영화들을 참고해 ‘국가대표2’의 경기 장면을 설계했다.

빙판 위의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실제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대상으로 모의 촬영을 거친 것은 물론이다. 극 중 중국전-카자흐스탄전-일본전-북한전으로 이어지는 아시안게임 경기 장면 중에서도 분량이 많은 중국전과 북한전은 동영상 콘티를 미리 만들었다. 철저한 사전 준비야말로 이 영화가 순제작비 75억원(총제작비 110억원)의 ‘국가대표’보다 적은 순제작비 60억원(총제작비 90억원)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다.

배우에서 선수로! 3개월간의 집중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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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장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촬영 기술만큼이나 중요했던 건, 바로 배우들이 직접 플레이하는 듯한 사실감이었다. 김 감독의 설명을 들어 보자.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경기 장면을 생생하게 그리려면 배우들이 어느 정도 이상은 직접 아이스하키를 해야만 했다. 스포츠영화의 묘미가 거기에 있다. 배우가 끈질긴 훈련을 통해 전문적인 플레이를 소화했을 때 스스로 느끼는 쾌감, 그 순간 배우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을 보면서 관객도 감탄하고 그가 겪었을 고생을 짐작하며 박수를 보내는 거다.”

극 중 국가대표팀으로 모이는 여섯 선수 역의 수애·오연서·하재숙·김슬기·김예원·진지희, 이들을 이끄는 감독 역의 오달수는 촬영 전 석 달 동안 매일같이 하루 두 시간씩 아이스하키 훈련을 받았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었다. 권오술 심판 이사가 이 영화의 수퍼바이저 역할을 맡아 기술 자문 및 경기 내용 설계, 훈련 인력 및 대역 선수 섭외 등 전 분야에 걸쳐 도움을 줬다. 특히 그는 극 후반 아시안게임 장면의 경기 내용을 짜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국가대표2’의 경기 장면은 중국전과 카자흐스탄전 각각 12개, 일본전 5개, 북한전 30개로 총 47개의 셋업(Setup·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주고받는 기술)으로 구성됐다. 실제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보디 체크(Body Check·아이스하키에서 쓰는 원통 모양의 납작한 공인 ‘퍽(Puck)’을 가진 선수의 공격을 몸으로 부딪쳐 막는 행위)나 몸싸움을 대폭 집어넣은 건 극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배우들의 훈련은 장성국 심판이 맡았다. 그는 실제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었다.

서울·청주·삼척을 누비며 촬영 완료

열 달의 프리프로덕션을 거친 끝에, 촬영을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초. 바닷가 전지훈련 장면은 강원도 삼척시 갈남항에서 촬영했고, 빙상 경기장 장면은 충북 청주·서울 태릉·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찍었다. 극 중 바닷가 마을의 정취를 살리기 위해 미술팀이 직접 오징어 500마리를 말려 줄에 널기도 했다.

청주 아이스링크는 극 중 주인공들이 한국아이스하키협회의 홀대 속에 훈련받는 장소로 등장하는데, 실제 아이스링크 내부가 분홍색이라 극의 분위기에 맞게 어두운 색의 천으로 경기장 내부를 감싼 뒤 촬영했다. 아시안게임 경기 장면은 모두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상대 국가 네 팀과 주인공들이 연기하는 한국 국가대표팀, 총 5개국 약 120명 선수들의 유니폼과 장비는 의상팀이 직접 제작했다.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 당시 자료를 참조해 최대한 사실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김하경 의상감독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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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으로 활약한 실제 국가대표 선수들

목동 아이스링크 촬영 분량이 전체 60회 차 중 3분의 1인 21회 차에 달한다, 이때 제작진을 가장 괴롭힌 것은 밤샘 작업이었다. 아이스링크 일정상 매번 오후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촬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 장면을 매일같이 밤새며 열두 시간씩 찍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촬영에 참여한 현 아이스하키 여자 국가대표 고혜인 선수가 “지난 11년 동안 아이스하키하면서 열두 시간이나 스케이트를 신고 있던 건, 이 영화 촬영 때가 처음”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현 국가대표 선수 아홉 명, 전 국가대표 선수 네 명을 비롯해 수십 명의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장면에서 상대 국가 선수 및 주연 배우들의 대역으로 뛰었다. 한겨울의 아이스링크 촬영이라, 추위 때문에라도 배우들과 선수들이 촬영 내내 아이스하키 장비를 입고 있어야 했는데, 15㎏이 넘는 장비가 너무 무거워 대기 시간에는 다들 누워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격렬한 보디 체크나 굉장히 전문적인 기술은 대역 선수들이 대신한다 해도, 슬라이딩 장면이나 카메라에 얼굴이 크게 잡히는 컷은 배우들이 직접 소화해야 했다. 이를 위해 권 수퍼바이저가 늘 촬영장에 머물며 배우들의 자세를 잡아 줬다.

촬영 현장의 변수에 맞게 경기 내용을 수정하고, 그에 따라 촬영장 한편에서 배우들을 훈련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얼음판을 달리거나 미끄러지며 취하는 골 세리머니 동작조차 전문 선수들이 아니면 그 균형을 잡기 힘들기 때문에, 권 수퍼바이저의 감독 아래 배우들이 몇 시간씩 연습해 촬영했다.

스포츠 중계의 달인, 배성재 아나운서 & 조진웅

경기 장면의 또 다른 묘미는 중계방송 아나운서(배성재)와 해설자(조진웅)의 경기 해설. 아이스하키 경기의 흐름과 규칙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역할뿐 아니라, 찰떡궁합 같은 만담을 선보여 극에 재치를 더한다. SBS 배성재 아나운서와 배우 조진웅의 촬영은 ‘국가대표2’의 후반 작업 단계에서 진행했다.

아시안게임 경기 장면의 현장편집본을 보며 경기 내용의 흐름을 파악한 뒤, 마치 경기장 전광판을 보듯 허공을 바라보며 연기한 것이다. 네 경기의 해설 장면 대사만 전부 70쪽 분량이었는데, 두 사람은 내리 열 시간의 촬영으로 이를 한 번에 마무리했다. 촬영을 거듭할수록 두 사람이 마치 미리 짠 듯한 애드리브를 주고받으며 촬영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시안게임 경기장 외부 전경과 경기장 내부를 가득 메운 관중 일부는 CG(컴퓨터 그래픽)로 완성했다.

“아이스하키가 위험한 스포츠라 촬영 내내 부상이 없기를 바랐는데, 다행히 아무도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촬영을 마쳐 정말 다행이다.” 김 감독의 말이다. 그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인다. “이 영화의 결말에서 관객이 ‘주인공들에게 박수쳐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좋겠다. 승패를 떠나 힘들게 싸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 실제보다 빠르고 격렬하게! 전쟁영화 찍는 마음으로 경기 장면 포착했다


‘국가대표2’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일등 공신이 있다. 바로 전투 장면을 방불케 할 만큼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빚어낸 홍경표(54) 촬영감독이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마더’(2009) ‘설국열차’(2013)를 촬영한 그는, 최근 ‘곡성(哭聲)’(5월 12일 개봉, 나홍진 감독, 이하 ‘곡성’)에서도 강렬하고 무시무시한 미장센을 선보인 바 있다. 이와 같은 활약 덕분에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촬영감독으로 손꼽힌다. 홍 촬영감독은 촬영팀·조명팀·그립팀(크레인·스테디캠 등 카메라 움직임에 관련된 특수 장비를 담당하는 팀)이 한 유닛으로 움직이는 할리우드의 DP(Director of Photography) 시스템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국가대표2’ 개봉 전 후반 작업에 한창인 그를,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시각 특수효과 전문 업체 덱스터의 DI(DIgital Intermediate·색 보정 후반 작업)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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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표 촬영감독 사진=라희찬(studio 706)


-촬영 제안을 많이 받았을 텐데, ‘국가대표2’를 선택한 이유는.

“‘곡성’ 막바지 촬영 때, ‘태풍’(2005, 곽경택 감독)을 함께한 오성일 프로듀서로부터 ‘국가대표2’ 촬영을 제안받았다. 당시 ‘해무’(2014, 심성보 감독) ‘곡성’ 등 잔혹한 스릴러를 연달아 찍어 심신이 지쳐 있었는데, ‘여자 아이스하키’라는 소재에 솔깃하더라.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감동적이되 과장 없이 다루는 영화 톤도 마음에 들었다. 나도 따뜻한 스포츠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뜻 승낙했지(웃음).”

-스포츠영화 촬영은 ‘반칙왕’(2000, 김지운 감독) ‘챔피언’(2002, 곽경택 감독)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팀 스포츠인 아이스하키는, 프로 레슬링이나 권투보다 촬영하기 어려운 종목인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도전하고픈 욕심이 솟구쳤다. 촬영 전에는 아이스하키에 대해 전혀 몰랐다. NHL 영상을 보고 실제 경기도 관람해 보니, 무척 빠르고 격렬한 원시적 매력으로 가득 찬 스포츠더라. 경기 장면만 실감 나게 촬영한다면, 후반부 드라마가 주는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았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 강제규 감독) 같은 전쟁영화를 한 편 더 찍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여자 배우들을 예쁘게 담아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경기 장면 촬영에 앞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아이스하키의 속도감을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 워크에 가장 많이 신경 썼다. 스포츠 중계방송처럼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경기를 보여 주려 했다. 단, 너무 사실적으로 찍으면 재미가 없지 않나. 그래서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보기 힘든 보디 체크 등 실제보다 격렬하고 극적인 그림을 담아내고 싶었다.”

-극 중 열리는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에선 아이스하키 경기 장면이 모두 네 번 등장한다. 각각의 경기 장면을 어떻게 차별화했나.

“첫 번째 시합인 중국전에서는 관객에게 아이스하키 규칙을 간단히 소개하려 했다. 축구와 달리 골대 뒤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카자흐스탄전에서는 경기의 빠른 호흡을 하이라이트로 압축해 보여 주려 했다. 일본전은 양국 선수 및 해설자의 신경전을 코믹하게 녹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가장 공들인 매치는 이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북한전이다. 핸드헬드 촬영으로 현장감을 살렸고, 화려한 고속 촬영 장면도 있다. 앞서 세 번의 경기를 지켜본 관객들이 경기 규칙과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전에서는 오롯이 캐릭터의 감정과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명적인 숏은 배제했다.”

-경기 장면에 동원된 카메라는 몇 대인가.

“아시안게임 경기 장면을 촬영할 때는 레드 에픽 드래곤·아리 알렉사 M·블랙 매직 시네마 등 카메라 다섯 대를 사용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쓰이는 고프로 소형 카메라도 대역 선수들 몸에 부착해 촬영해 봤지만, 카메라가 워낙 가벼워 아이스하키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더라. 아이스링크 천장에는 카메라를 매달 수 없어서, 실내에 드론을 띄워 부감 숏을 촬영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위해 특별히 촬영용 썰매도 제작했다고.

“빙판에서 카메라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장비에 대해 고민하다가, 강상협 그립실장과 함께 촬영용 썰매를 만들었다. 카메라와 내가 올라타는 스케이트 날이 달린 대형 썰매(사진)뿐 아니라, 대역 선수들이 직접 카트처럼 밀어 역동적인 화면을 촬영할 수 있도록, 퍽과 같은 폴리우레탄 소재를 사용해 소형 카메라용 썰매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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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2 촬영 현장 [중앙포토]

-빙판이 미끄러워 촬영하는 데 고생도 많았겠다.

“신발 위에 항상 덧신과 스파이크 슈즈를 함께 신어야 했다. 조금만 긴장을 놓으면 배우·스태프 할 것 없이 빙판에 엉덩방아를 찧더라(웃음). 게다가 경기 장면을 몇 번 촬영하고 나면, 대역 선수들의 스케이트 날에 빙판이 긁혀 얼음 가루가 수북이 쌓인다. 아이스링크 대관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매번 얼음을 치우고 촬영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부족해서 혼났다.”

-‘국가대표2’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내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현장이었다. ‘매번 독하고 센 영화만 찍는다’는 이미지가 있기에, 이 영화의 촬영을 맡았다니까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미쳤어요?’라고 하더라(웃음). ‘곡성’ 못지않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내가 일하면서 재미를 느낄 만한 작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우등’(1999, 김시언 감독)의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지 18년째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 부드러워질 만도 한데, 여전히 촬영 현장에서는 엄하고 무서운 촬영감독으로 악명이 높다.

“촬영장에서는 누군가 악역을 맡아야 한다. 변수에 따라 매번 대책을 세우고 시간을 관리하면서 원활하게 촬영하려면, 촬영 현장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출자의 성격과 스타일이 각각 다르기에, 감독이 직접 악역을 맡기도 하고 촬영감독인 내가 나설 때도 있다. ‘국가대표2’에서는 내가 악역이었지(웃음). 반면 ‘곡성’ 때는 나홍진 감독이 악역을 도맡았고, 내가 뒤에서 배우나 스태프를 달래곤 했다(웃음).”

-지금까지 보아 온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촬영을 꼽는다면.

“‘소이 쿠바’(1964,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의 오프닝을 꼽겠다. 1964년 쿠바혁명 당시 제작된 선전영화인데, 옥상 파티 장면으로 시작해 아래층 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가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이 탁월하다. 최근 영화 중에서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1월 14일 개봉,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가 압도적인 장관을 보여 줬다.”

-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촬영 기술이 있나.

“아이맥스와 65㎜ 필름 촬영이다. 3D·스크린엑스와 같은 기술보다 2D 스크린의 화질과 디테일을 아이맥스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것이 관객에게 더 생생한 현장감을 안겨 주는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도 ‘덩케르크’(2017년 개봉 예정)를 아이맥스 65㎜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잖나. 봉준호 감독과 ‘옥자’(2017년 개봉 예정) 이후 차기작을 이야기 중인데, 국내 최초로 65㎜ 필름 촬영을 고려하고 있다.”

-차기작은.

“이창동 감독과 작업하는 ‘버닝’(개봉 미정)이다. 최근 연달아 상업영화만 찍다 보니, 부쩍 예술영화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웃음). 이 감독의 전작들만큼 밀도와 울림이 있는 영화가 나올 것 같다. ‘마더’와 ‘곡성’처럼 진득하게 미장센을 파고드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홍경표 촬영감독이 꼽은 최고의 장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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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라스트신 마치 그리스 신화 속 무녀들처럼, 여인들과 함께 관광버스에서 춤추는 엄마(김혜자)의 실루엣. 당시 짧디짧은 일몰 시간대에 흔들리는 버스를 찍어야 했다. 봉 감독도 홍 촬영감독도 불가능한 촬영이라 생각했던 이 마지막 장면은, 그에게 “영화도 명장면도 운이 좋아야 잘 찍을 수 있다”는 뜻밖의 교훈을 안겼다. 20년 가까이 촬영감독으로 살아온 그가 단연 “최고의 숏”으로 꼽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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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의 안개 속 선상 장면 여수 바다를 항해하는 낡은 어선 ‘전진호’에서 벌어진 참극을 다룬 ‘해무’. 선원들이 밀항자들의 시체를 토막 내는 장면은, 푸른색과 붉은색에 희뿌연 안개가 묘하게 뒤섞인 무시무시한 풍경이었다. 홍 촬영감독은 “한 폭의 지옥도처럼 끔찍하기 그지없는 장면”이라면서도 “그것 또한 사람이 살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이기에 이상한 기분을 금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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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의 새벽 장면 홍 촬영감독은 ‘곡성’을 “빛에 대해 끝까지 가 본 작품”이라 평한다. 그는 비 내리는 새벽, 무속인 일광(황정민)이 종구(곽도원)의 집 앞을 서성이는 숏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았다. 맑은 날 새벽에만 보이는 푸르스름한 하늘빛에 살수차로 비를 뿌려 완성한 명장면이다. 이 장면의 분위기는 기이하면서도 쓸쓸한 시나리오의 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홍 촬영감독은 “내가 촬영한 영화 중 가장 색감이 빼어나다”고 말했다.

글=장성란, 고석희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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