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칠레 민주화 압력 서서히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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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이티의 「뒤발리에」와 필리핀의 「마르코스」를 축출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해온 「레이건」 미 행정부가 이제는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피노체트」(70) 정권에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칠레의 인권탄압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 국제기구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면 줄곧 기권, 또는 반대입장을 표명해오던 미국은 지난 13일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에 찬성해 대칠레정책의 분명한 변화를 보였다.
이는 미 행정부가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통해 칠레의 민주화를 꾀하려 했으나 효과가 없자 공개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한 첫번째 비난이 되는 것이다.
73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집권2년만에 4만명의 반정부인사를 체포했고 80년까지 20만명 이상을 국외로 추방했다.
또 그는 80년 신헌법을 제정, 89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했다.
이러한 칠레에 대해 미행정부는 민주화를 열망하면서도 「피노체트」의 급격한 몰락보다는 어느 정도의 명분은 주어 하야시켜야 한다는 고민에 빠져있다.
칠레의 민주세력을 돕는 한편 좌익세력의 준동울 막기 위해서는 「피노체트」의 힘도 이용하면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아르헨티나·우루과이·브라질등에서 이룩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이다.
「옐리어트·에이브럼즈」미 국무성 중남미담당차관보가 최근 『아이티나 필리핀 사태가 칠레의 민정회복에 도움이 되길 원하나 미 행정부는 「피노체트」정부와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민주주의로 전환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이 미 행정부의 이런 의도를 시사해주고 있다.
미국은 「카터」전 대통령때인 지난 76년 인권탄압을 이유로 칠레에 무기금수 조치를 취했고 같은 해 칠레국가정보국요원이 워싱턴에서 망명 반체제 인사를 암살하자 대칠레차관을 정지시켰으나 「레이건」의 등장이후 경제제재조치를 완화했었다.
그러나 칠레의 인권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지난해 8월말 「환·프레스노」추기경이 이끄는 야당연합체가 「완전한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위한 국민협정」을 발표 ,범국민저항 운동을 전개했고 「레이건」행정부도 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대칠레 차관을 다시 보류했다.
경제면에서도 외채는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73년보다 4배이상 늘어난 2백20억달러를 기록하고 있고 실럽률은 30%나 되는 등 악화되어왔다.
사태가 더 악화되어 파국이 닥치기전에 민정을 회복시키려는 미국의 입장에는 그러나 분명한 한계가 있다. 즉 미국의 내정간섭과 이에 대한 「피노체트」의 반발등으로 야기될 정치·사회적 혼란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의 대칠레 민주화압력은 서두름 없이, 그러나 필리핀에서와 같이 지속적으로 계속될 것이며 「피노체트」가 더이상 아무런 명분도 갖지 못할 정도까지 기다렸다가 「마르코스」나 「뒤발리에」처럼 국외탈출을 도왔던 방식읕 택할 것이라는게 미 국무성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입장에서 본 칠레 민주화의 구도다. 칠레의 민주화는 결국 칠레국민 스스로의 손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고 많은 칠레국민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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