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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내비게이션] 설계에서 완공까지 전 과정 교육, 가장 인문학적인 이공계 학과 ‘건축학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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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관심 있는 학과에 대해 소개합니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늘면서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에 대한 탐구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여전히 대학의 명성이나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합니다. ‘열려라 공부’에서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돕기 위해 학과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관련 진로가 무엇이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8회는 건축학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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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는 건물을 매개체로 대중과 소통하는 직업입니다.” 노승범 한양대 건축학과장의 말이다. 노 학과장은 "하나의 건물이 들어서면 그 지역의 외형은 물론, 오가는 사람들의 생활도 바뀐다”며 "건물을 짓는 기술뿐 아니라, 건물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과 가치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제대로 된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하·수학은 기본, 디자인·역사·철학도 배워
공대·예술대·도시과학대 등 소속 단과대 다양
70여 개 대학에 5년제 건축사 자격인증 과정

건축학과는 건축가를 길러내는 학과다.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는 건축의 특성에 따라 건물 설계와 디자인은 물론, 역사·철학 등 인문학, 예술과 사회학까지 다양한 과목을 가르친다. 다양한 학문 영역을 넘나드는 건축학과의 특성 때문에 건축학과의 소속 단과대학도 학교마다 공과대학, 예술대학, 도시과학대학 등 다양하다. 4년으로 구성된 여느 학과와 달리 5년제로 구성된 건축학과의 교육과정, 졸업 후 진로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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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건축학과 학생들의 `설계 스튜디오` 수업 모습. 스튜디오 수업은 10명 남짓한 학생이 교수에게 개별 지도를 받으며 각자의 건축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교수님께 일대일 피드백을 받으며 부족한 점을 바로 수정할 수 있는 데다,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얘기했다.

"왜”라는 질문에 답 찾는 ‘설계 스튜디오’ 수업

건축학과의 특징은 건축공학과와 비교할 때 보다 이해하기 쉽다. 김소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학과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양성한다면, 건축공학과는 각 악기별 특징을 정확히 알고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악사를 길러내는 학과”라고 설명했다. 즉 건축학과의 교육과정은 하나의 건축물을 설계부터 완공까지 전 단계를 총괄하는 리더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배우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음악 전체를 이해하고 소리의 조화를 이끌어내야 하듯 건축학과가 양성하려는 건축가도 전축의 전반을 이해하고 각 분야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건축학과의 수업 구성도 건축공학과와는 다르다. 건축공학과는 수학·물리·화학 등 이공계 기초학문으로 이론을 다지고, 건물을 이루는 구조와 설비 등을 완성하는 기술을 익힌다. 이에 반해 건축학과는 기하학·수학 같은 기초 학문은 물론, 디자인과 예술, 세계 건축의 역사와 문화, 인간 행태 등 사람과 사회에 대해 연구도 병행한다.

김소라 교수는 "건축공학자가 건물을 어떻게 지을까를 배운다면, 건축가는 건물을 왜 지어야하는 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며 "건축가는 공학에 대한 기본 지식 뿐 아니라 윤리와 사회적 공공성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조한 홍익대 건축학과장은 "건축학과 수업 중에 끊임없이 던지는 ‘왜’라는 질문은 정답이 없고, 학생이 스스로 고민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수업이 소규모로 이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건축학과의 주요 수업은 ‘설계 스튜디오’다. 스튜디오당 10명 남짓한 학생이 교수에게 일일이 교습을 받으며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저학년 때는 ‘단독 주택의 내외부를 설계하라’는 게 일반적이다. 자신이 설계한 공간이 가족 구성원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통찰해보는 게 목적이다. 노승범 한양대 교수는 "단순히 미학적으로 예쁘고 보기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한 학기 내내 시뮬레이션해보며 건축가의 사고력을 만들어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학년이 올라가면 다세대 주택, 아파트 단지와 같은 집합 주택을 설계하거나 병원이나 도서관·체육관 등의 복합 건물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강민구(홍익대 건축학과 5)씨는 "설계 스튜디오 수업을 듣다보면 ‘사람을 위한 설계’‘가치있는 설계’에 대한 고민을 밤새워 하게 된다”며 "힘들고 고되지만, 이런 고민을 통해 나온 건축물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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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130점 들어야 졸업 … 커리큘럼 거의 같아

주요 대학 건축학과는 거의 5년제로 짜여져 있다. 김소라 교수는 "우리나라가 WTO(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이 되면서 의사·변호사와 같은 전문 자격증을 국제적으로 통용할 수 있게 했고, 건축사 자격증과 관련 교육과정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5년제로 개편됐다”고 설명했다. 2002년 서울대·서울시립대·명지대 등 3개 대학에서 처음으로 건축학과 교육과정을 5년제로 바꾸고 교육 내용도 국제 기준에 맞춰 개편했다. 건축학교육인증원의 심사를 거친 5년제 건축학과는 현재 전국 70여 곳에 이른다. 건축학교육인증원에서 인증받은 대학의 건축학과에서 5년간 공부한 뒤 실무 경력 3년을 쌓아야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정재용 홍익대 건축대학장은 "국제 기준에 맞춰 커리큘럼을 짜다보니 인증 받은 대학들의 건축학과 수업들은 대체로 유사하다”고 말했다. 전공 과목의 비중도 다른 학과에 비해 높은 편이다. 홍익대 건축학과의 경우 졸업시까지 170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이중 전공이 130학점에 이른다. 노한수(홍익대 실내건축학과 4)씨는 "4년만 다니는 학과는 전체 졸업 학점이 130점인 걸 감안하면 건축학과가 전공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공 과목은 다양하다. 전공 안에 인문학, 예술 분야의 학문이 있고, 다른 학과·전공과의 융합 수업도 전공으로 개설됐다. 홍익대는 건축학과와 예술대학 간의 연계가 탄탄하다. 5학년 강민구씨는 "신입생 때 전공 필수 과목으로 ‘미술실기’ 과목을 들으면서 혼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술실기는 데생, 스케치 등을 미대 교수에게 직접 배우는 수업이다. 강씨는 "처음으로 누드 크로키 같은 걸 하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게 건축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며 "학년이 올라가면서 건축가에게 선을 그리는 감각이나 비율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돼 다양한 수업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대 수업을 복수 전공, 부전공으로 삼는 경우도 흔하다. 오성률(홍익대 건축학과 3)씨는 "목조형가구학과, 조소학과, 예술학과 수업은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도 1학년을 대상으로 스케치와 드로잉을 가르친다. 한미옥(한양대 건축학과 4)씨는 "한양대에선 건축학과가 공과대학으로 분류되지만, 다른 공대 학생들이 1학년 때 도서관에서 수학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 때 건축학과는 스케치북을 들고 나가 건물을 스케치한다. 전시회를 연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박신영(서울시립대 건축학과 4)씨는 "건축학과에서 그림을 배우는 이유는 머릿 속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적인 그림 솜씨를 익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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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건축학과 학생들이 `재생`을 주제로 만든 설치물. 건축학과는 친환경이나 재생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건축을 통해 해결하기 위한 공부를 한다.

서울시립대는 건축학과가 도시과학대학에 속해있다. 도시과학대학 안에는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를 포함해 조경학과, 도시사회학과 등이 속해있다. 김소라 교수는 "건축을 단순히 건물 하나를 완공하느냐의 의미로 보는 게 아니라, 도시의 모습과 환경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바라보자는 게 도시과학대학의 설립 취지”라고 설명했다. 사회과학 계열인 도시사회학과와 공대인 건축공학과, 자연과학 계열인 조경학과 등 다양한 영역의 학문을 ‘도시’라는 주제로 묶은 거다. 학과 간 융합 수업도 다수 개설됐다. 3학년 하가영씨는 "3학년 2학기에 진행하는 ‘융합 스튜디오’ 수업은 여러 전공 학생이 같이 건축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팀플레이 형태의 수업”이라며 "같은 프로젝트도 전공에 따라 접근법부터 달라 서로에게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공학보다 철학이나 사회학과 가까운 학문

배동주(한양대 건축학과 3)씨는 건축에 대해 "이공계 학생이 진출할 수 있는 가장 인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분야”라고 말했다. 그는 "공부를 할수록 건축 기술이나 지식을 익히는 것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시각을 바로세우는 데 관심을 갖게 된다. 공학보다 철학이나 사회학에 더 가까운 학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소라 서울시립대 교수는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바로 윤리성과 공공성, 그리고 책무성”이라며 "도시가 발전하고 인간의 삶이 복잡해질수록 건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이고, 이를 담당하게 될 건축가의 인성적 자질은 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노승범 한양대 건축학과장은 "건축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역사와 사회의 흐름 속에서 무슨 기여를 하고 싶은지를 정립한 뒤 건축을 통해 이를 실현하는 사람”이라며 "역사·문화·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공부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보 탐색을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계 실습이라 할 수 있는 스튜디오 수업 외에도 건축사와 주거 문화에 대한 인문학 관련 과목 역시 전공 필수로 들어야 한다.

실제로 건축학의 주요 이슈는 사회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신세열(홍익대 건축학과 5)씨는 "층간 소음이나 빛 공해의 해결, 자원 고갈에 따른 친환경 주택 건설 등 당대의 고민을 해결하는 게 건축가의 할 일”이라며 "항상 사회 이슈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어야 제대로 된 건축 주제를 잡아낼 수 있다”고 했다.

건축학과는 학부만 5년을 공부하기 때문에 졸업 후 곧장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다. 노 학과장은 "현장에서 실무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한 뒤, 진짜 깊이 파고들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발견하면 그때 대학원에 진학하는 편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학부 5년을 마치고 나면 현장에서 일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정보를 모두 습득하게 된다. 일단 실무 경험을 통해 건축가로서 어떤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은지 구체화한 뒤에 학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졸업 후 진로
실무 3년 거쳐야 자격시험 응시
건축사 외 방송·영화계 진출도

건축학과는 건축사를 배출하기 위한 교육 과정이다. 건축학교육인증원의 인증을 받은 5년제 커리큘럼을 이수한 뒤 3년의 실무 경험을 쌓으면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의학과에서 6년간 공부하고 의사고시에 합격하면 의사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건축학과를 졸업한 학생 중 건축사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도 적지 않다. 건축사 외의 다른 진로를 개척하는 이들이다. 조한 홍익대 건축대학과장은 “50% 정도가 건축사로, 나머지는 창업을 하거나 문화예술공연 기획자, 기자, PD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다”고 말했다.

건축 현장의 리더, 건축가

건축가는 건물 설계의 기획부터 완공까지 관리하는 총 책임자다. 조 학과장은 “건축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역량으로 완성하는 게 아니라 협업의 산물”이라며 “건축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소통”이라고 말했다. 건축가는 건축물에 대한 컨셉과 주제로 큰 그림을 그린 뒤 설비부터 조경, 실내 디자인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의미다.

김소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가의 역할이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뀐 것”이라며 “과거의 건축가는 소통과 협업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결정점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건축의 개념도 달랐다. 여러 전문가와의 협업이 아닌, 건축가가 자신의 세계를 설계해놓은 뒤 이를 실행만 할 수 있는 하도급자를 부리는 식이었다. 정재용 홍익대 건축학장은 “과거 잠실이나 강남처럼 허허벌판에 건물을 세우고 도시를 구축하는 시기에는 권위적인 건축가가 필요했겠지만, 요즘처럼 완성된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에는 소통과 협업에 능한 건축가가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학생들이 건축가라는 직업에 주목하는 것도 최근의 일이다. 김 교수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은 남자의 전유물처럼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여성 특유의 감성과 공감 능력이 건축가에게 필요한 자질로 각광받으며 여학생의 지원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건축가 자격 시험은 실무 경력을 3년 이상 쌓아야 응시할 수 있다.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는 곳은 삼우·희림·간삼 등 건축설계사무소나 대기업의 시공사다. 일반적으로 시공사는 건축공학과 졸업생이 취업한다고 알려졌지만, 건축학과 학생들도 건축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 취업이 가능하다. 노승범 한양대 건축학과장은 “최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이 설계사무소보다 시공업체로 가는 일이 흔해졌다”며 “설계사무소의 초봉이 1000만원 가량 낮은 데다, 대기업 시공사에서 설계도 겸하는 경우가 많아 건축학과 학생들이 몰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문화예술 기획자나 기자, PD로 취업하기도

광고·영화·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의 기획자로 진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신문 기자나 방송PD로 취업하는 졸업생도 적지 않다. 신세열(홍익대 건축학과5)씨는 “얼핏 보면 건축학과와 관련없는 분야인 것 같지만,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실물로 내놓아야 하는 모든 분야는 건축과 연관된다”고 말했다. 건물을 세우기 위해 장소에 대한 역사와 문화 등 다양한 정보를 조사하고,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해 건물을 설계한 뒤 상대를 설득하는 건축의 전 과정이 ‘기획’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건축의 과정이 기획과 비슷하다면, 여러 사람과 협업을 통해 최상의 성과물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 과정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건축가의 업무 특성은 방송PD나 영화 감독과 닮았다. 신씨는 “꽤 많은 선배들이 방송·영화·광고의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학과에서 배운 노하우로 유형적인 ‘건물’뿐 아니라 무형의 콘텐트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라 서울시립대 교수는 “건축학과에서 다루는 분야가 워낙 넓어 학생들이 다양한 영역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다”며 “그만큼 진로 선택의 폭도 넓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건축학과 졸업생은 어느 분야에서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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