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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빛을 뿌린 등잔, 요즘 아이들 배웠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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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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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관장은 “등잔에 대해 공부하면서 온돌이 우리 고유의 문화임을 알려주는 자료들도 수집했다”며 “박물관 개관 20주년인 내년에는 온돌 문화와 관련한 책도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 김춘식 기자]

경기도 용인에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박물관이 하나 있다. 내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는 ‘한국등잔박물관’이다. 김형구(75) 관장이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 조부와 함께 평생 수집한 등잔·등잔대(받침대)를 모아 세웠다. 지난 4일 둘러본 박물관의 1, 2층 전시장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의 등잔·등잔대·촛대 400여 점이 놓여있었다. 토기·청동기·백자·나무·철·유기·종이 등 소재와 모양도 다양했다. 등잔은 기름을 담고 심지를 넣어 불을 켜는 그릇으로,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 이전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등잔박물관 김형구 관장
부친·조부 함께 ‘민족 혼’ 평생 수집
염주·대나무 무늬 등 등잔대 다양
등잔 만들기 등 교육 프로그램도

“등잔은 예로부터 우리 삶의 동반자였어요. 등잔불 아래서 선비들은 책을 읽고, 여인들은 바느질을 했지요. 아이들은 꿈을 꿨고요. 신분의 차별 없이 빛을 뿌려 밤을 밝혀주었지요.”

김 관장은 “등잔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됐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발전했다. 그 이유는 ‘온돌’이란 독특한 주거문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자를 쓰는 나라는 등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면 됐어요. 하지만 바닥에 앉아서 생활한 우리는 불의 높이가 눈높이에 와야 했지요. 그래서 생겨난 게 등잔을 받치는 등잔대였어요. 이로 인해 등잔에는 시대의 예술성이 반영됐지요.”

불교가 지배한 고려의 등잔대는 염주 모양을, 대나무의 절개를 숭상한 조선시대의 등잔대는 죽절(竹節) 무늬를 본떠 만든 것이 많다. 그는 “조상의 지혜도 엿볼 수 있다”며 “인화성이 강한 석유가 수입된 조선후기엔 뚜껑이 있는 ‘호형 등잔’이 등장해 널리 쓰였다”고 소개했다.

삼부자(三父子)의 등잔 수집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도자기나 그림과 달리 값이 오를 것 같지도 않은 등잔은 왜 모으느냐”고 핀잔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삼부자는 “돈이 아니라 민족의 혼을 모으자”고 의견을 모았고, 박물관을 차릴 만큼 많은 등잔을 모았다. 김 관장의 부친은 산부인과 의사였다. 1969년 부친이 수원에서 운영하던 병원 2층에 ‘등잔 전시장’을 만든 게 박물관의 시초였다. 1남4녀의 장남이었던 김 관장은 젊은 시절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97년 부친과 함께 국내 최초의 등잔박물관을 세웠다. 99년에는 박물관을 재단법인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김 관장은 “우리의 역할은 흩어져있던 민족의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으로 다했다. 그 유산을 사회에 돌려줘 후손들이 100년, 200년이 지나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의 부친은 2004년, 김형구 관장은 2013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박물관에선 초·중생을 대상으로 등잔 만들기, 등잔 동화 짓기 등으로 구성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등잔은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고, 자신을 희생해 인류에게 빛을 전해줬어요. 요즘 아이들에게도 이런 등잔의 정신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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