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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 절반이 환갑 넘었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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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6월 23일 오전 11시쯤 서울 송파구 오금동 S빌딩 앞. 왕복 8차선 도로 옆 인도를 지나던 행인들은 아찔한 경험을 했다. 4차로에서 달리던 택시가 갑자기 오른쪽 인도로 돌진한 것이다. 미처 피하지 못한 보행자 1명이 사망했다. 운전자 이모(67)씨는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경찰 관계자는 “심근경색을 앓던 고령의 운전자가 갑자기 가슴 통증이 오자 정신을 잃고 사고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6월 사고 낸 택시 중 65세 이상 24%
“나이 많아도 운전 잘 하는 분 많아
버스처럼 정밀검사로 자격 판단을”

부산 해운대 뇌전증 운전자 사고 등 대형 교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고령의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의 안전관리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은퇴자들이 대거 운전대를 잡으면서 택시 기사의 연령대가 크게 높아졌지만 안전운행 체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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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65세 이상 택시 기사는 6만2404명으로 전체(27만8936명)의 22.4%였다. 2011년 26.4%였던 60세 이상 택시 기사는 올해 47.1%로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고령의 택시 기사가 많아지면서 이들이 내는 사고도 늘고 있다.

서울에서 택시 기사가 낸 교통사고 중 65세 이상 기사에 의한 비율은 2011년 11.9%에서 지난해 21.7%로 급증했다. 지난 6월 한 달간 발생한 전국의 택시 교통사고 중 65세 이상 기사가 낸 건은 24.1%였다. 지난 5월엔 경남 거창군의 한 교차로에서 택시 기사 김모(69)씨가 마주 오던 차량과 충돌한 뒤 미끄러지면서 보행자를 쳐 숨지게 했다. 신호등이 황색으로 바뀐 걸 모르고 주행하다 낸 사고였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 운전자는 도로 위 긴급 상황에 대한 반응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택시 기사의 고령화 대비책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버스의 경우 올해부터 65세 이상 운전자들은 3년마다 ‘운전적성 정밀 자격유지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고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사업자도 과징금 180만원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65세 이상 일반 운전면허 소지자와 동일하게 5년 단위로 정기적성검사를 받는 게 전부다.

또 통상 65세를 정년으로 정하고 있는 법인택시와 달리 개인택시는 관련 규정이 없다. 65세 이상 고령 기사의 비율이 법인택시(12%)보다 개인택시(29%)가 높은 이유다. 김충식 오케이택시(법인택시) 대표는 “정년을 넘긴 경우 건강검진을 매년 받게 하고 촉탁직으로 고용한다”며 “개별 사업자인 개인택시는 그마저도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생계가 달린 문제인 만큼 일률적으로 자격을 제한하기보다 자격유지검사를 정밀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65세 이상의 운전자는 개인택시 양수권을 못 갖게 하는 일본과 같은 조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봐서다. 박계동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은 “나이가 많아도 운전에 문제없는 사람도 많다. 정밀한 검진을 통해 자격유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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