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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개막식, 소박하지만 흥겨운 무대 연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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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3 면

기수 구본길(오른쪽)을 앞세운 대한민국 선수단이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 입장하고 있다. 리우 올림픽은 전 세계 206개국에서 온 1만5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17일간의 열전을 펼친다. [리우 로이터=뉴스1]

올림픽 최초로 남미 대륙에서 열리는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여름올림픽이 6일(현지시간 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전 세계 206개국을 대표해 출전한 1만1000여 명의 선수가 17일간 28개 종목에서 306개의 금메달을 놓고 겨룬다.


이날 개막식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축사로 시작했다. “봉 지아(안녕하세요), 반기문입니다.”


마라카낭 스타디움의 천장에 걸린 스크린 네 곳에서 반 총장의 인사말이 울려 퍼졌다. 3분가량의 축사 끝머리에 반 총장은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하길, 오브리가두(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7만8000명의 관중은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파도타기로 올림픽 개막의 흥을 돋웠다.


오후 8시(현지시간)가 가까워 오면서 ‘트레스(3), 도스(2), 운(1)’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경기장 바닥엔 시원한 파도가 몰아쳤다. 미디어 파사드 기법이었다. 파란색과 은색이 섞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은색 천을 펄럭이자 출렁이는 파도가 생겨났다. 웅장하고 몽환적인 음악이 신비로움을 더했다. 브라질 국기는 하얀 배의 형상 위에 게양됐다. 이후 세리머니는 한 문명의 발달을 보여주는 듯했다. 가는 고무줄에 초록빛을 쏘아 만든 정글이 사라지자 흙을 일궈 작물을 키워내는 농경시대가 등장했다. 이어 건물이 솟아 오르며 현대화하는 도시로 변모했다.


“키 큰 갈색 피부의 젊고 사랑스러운 소녀, 이파네마의 소녀가 걸어오네…”로 시작하는 감미로운 보사노바 노래 ‘이파네마의 소녀’가 연주되는 동안 브라질 출신 모델 지젤 번천(36)은 금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번천은 당당하면서도 우아한 캣워크로 개막식의 격을 한 차원 높였다. 개막 세리머니는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이후 그리스를 시작으로 206개국의 국가대표 선수단과 난민 대표팀이 등장했다. 감색 양복에 흰색 하의를 입은 한국 선수단은 52번째로 스타디움에 등장했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성화 점화는 브라질의 마라토너 반데를레이 지 리마(47)가 맡았다. 지난 4월 2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리우 올림픽 성화는 브라질 327개 도시를 잇는 2만㎞ 구간을 돈 뒤 이날 마라카낭으로 들어왔다. 프랑스 오픈 3회 우승에 빛나는 구스타보 쿠에르텐(40)이 성화를 들고 입장했고, 경기장에서 대기 중이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 올텐시아 마카리(57)가 성화를 이어받았다. 마카리는 올림픽 성화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마에게 성화봉을 건넸다. 리마는 성큼성큼 성화대를 향해 달려가 불을 붙이며 리우 올림픽 개막을 알렸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마라톤 동메달리스트인 그는 당시 37㎞ 지점까지 선두를 질주했다. 그러나 식수대 부근에서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을 입은 아일랜드 출신 종말론 추종자가 주로에 뛰어들면서 리마를 밀쳤다. 페이스가 흐트러진 리마는 결국 선두를 내주고 3위로 처졌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고, 미소를 지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 후 그는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메달을 따고 오겠다던 약속을 지켰고 위대한 올림픽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나를 밀친 관중도 용서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리마에게 스포츠맨십을 상징하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했다.


브라질은 경제 위기 탓에 리우 올림픽과 패럴림픽 개·폐막식에 기존 1억1390만 달러(약 1264억원)보다 절반이나 줄어든 5590만 달러(약 620억원)를 썼다. 영화 ‘시티 오브 갓’을 만든 거장 페르난두 메이렐르스(61)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예산의 12분의 1,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20분의 1에 불과한 예산으로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흥겨운 무대를 연출해냈다.


이번 개막식에서 메이렐르스 감독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담아냈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해 스크린을 통해 세계 주요 도시가 물에 잠기는 장면도 넣었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열대우림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각국 선수단은 식물의 씨앗을 통에 넣었고,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을 모두 초록색 원으로 만들었다. 브라질의 열정을 상징하는 삼바 공연은 마라카낭을 축제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남미에서 최초로 열리는 올림픽임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리우=윤호진·김원 기자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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