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탕문화의 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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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새봄을 맞이하니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활기가 퍼져나는 것같다. 벌써부터 집에 쌓이는 많은 전시회 팸플릿등을 보면 올해는 문화계의 열기가 대단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다양하고 폭넓은 제반 문화활동을 보면서 나는 감히 외람되게도 잡다히 널린 음식상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음식은 요리법에 따라 순서를 밟아야 제맛이 나고, 모든 예술도 그것으로 익어야 제맛이 난다는 점, 음식을 누구에게 강요할 수 없듯이 예술도 강요할 수 없는 점이 비슷하다는 생각에서다. 배고픈 사회에서는 밥한그릇, 김치 하나로도 감지덕지 해야 하듯이 폐쇄된 사회에서는 예술도 다양성을 잃고 밥한그릇 같은 꼴이 된다.
그러나 지극히 다행스럽게도 우리사회는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있는 수많은 음식을 차려준 것인가. 어찌보면 다양한 것이 지나쳐 간다하다고 할만큼 문화의 제반양상이 널려져 있다. 미술계의 경우만 생각해도 이것은 일식, 양식, 중국식, 한식, 프랑스식 궁중요리, 미국식 햄버거, 튜브에 든 우주음식까지 동시에 차려졌다는 느낌이 든다.
요새같은 세상에 한국사람은 한국음식만 먹자고 주장한다면 도저히 먹혀들지 않을터이고 실제로 우리가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과정이 너무 갑작스러워 이제는 누가 무엇을 먹든 먹지 말라고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닌것같다.
이제 바라기는 무슨 음식이든 입맛에 따라 먹는 것을 자유로 하고 다만 요리법만은 철저히 배워서 적어도 날음식을 차려내지는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혹시라도 지금껏 쏟아져 들어온 서양음식에 물려서 한국사람은 보리밥을 먹어야 제격이라고 강요한다면 그것도 억지일 뿐이다. 잘익은 보리숭늉이 구수하지만 그것도 뜸이 들어 익어야 제맛이나지 날보리는 보리밥이 아닌 것이다.
음식을 처지에 따라 바꾸어 먹는 것은 모든 사람의 자유의사이지만 갑자기 이것저것 주워먹고 체하지나 않을까 염려되고 어쩌면 동시에 이렇듯 차려진 잡다한 음식이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기야 다큰 사람은 음식을 알아서 먹는 법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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